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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국전 참전 용사들이 老年에 행복한 이유

淸山에 2013. 5. 10. 04:43

 

 

 

 

 

 

미국의 한국전 참전 용사들이 老年에 행복한 이유

 

 

한국의 발전이 그들을 자랑스럽게 만들었다.


趙甲濟   

 
 
   미국의 유명한 수사식 보도 전문기자 데이비드 핼버스탐이 쓴 '가장 추운 겨울'('The Coldest Winter')는 한국전을 다룬 大作이다. 핼버스탐은 뉴욕타임스의 사이공 특파원 시절 월남전을 수행하는 미국과 월남정부의 자세를 비판적으로 보도하여 퓰리처상도 받고 유명해졌다. 그가 쓴 '최고의 엘리트들(The Best and Brightest)'은 케네디, 존슨 행정부의 엘리트 관료들이 어떻게 월남전을 誤判(오판)했는가를 추적한 걸작이다.


   그는 2008년 봄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는데, 그 직전에 완성한 것이 '가장 추운 겨울'이었다. 미국의 월남전 개입을 비판적으로 다뤘던 그는 韓國戰에 참여한 미군과 한국군의 역할을 호의적으로 그렸다. 그는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돌아온 미군들이 좌절하고 실망하여 당당하게 자신의 과거를 밝히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고 썼다. 전쟁이 미군의 승리가 아니라 무승부로 끝났기 때문이었다. 한국전 참전은 자랑스런 과거가 아니라 '부끄러운 과거'로 치부되기도 했었다. 그래서 미국 언론은 한국전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불렀다. 잊어버리고싶은 전쟁이란 뜻이다.


   冷戰(냉전)에서 서방세계가 이긴 후 한국전의 역사적 평가가 긍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한국전 참전용사들도 자신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원인은 한국의 발전이었다. 한국전에 참전했던 미국 병사들은 대체로 한국을 좋아하지 않았다. 분뇨 냄새 나고, 춥고 더웠던 전선의 기억에다가 절망적인 나라 꼴이 한국을 뒤돌아보기 싫은 나라로 만들었다. 그 한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민주화까지 되더니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반면 북한은 전쟁 때보다 더 못 살게 되었다. 미국의 참전용사들은 '우리가 피를 흘려 자유를 지켜준 덕분이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의 발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老年의 참전용사들은 한국으로 관광을 많이 온다. 낙동강 戰線, 휴전선, 판문점을 둘러 보곤 감동의 눈물을 흘렸고 그들이 만난 한국인들은 미군에 감사했다. 미국에서 받아보지 못한 환영을 한국에서 받았다. 이런 소문이 미국에 전해지자 더 많은 참전용사들이 한국을 찾고 있다.


   쓰레기더미 같았던 부산과 서울이 세계적 대도시로 바뀌고 거지 같았던 한국인들이 미국인들보다 더 오래 사는 신사 숙녀로 바뀌었다. 미국의 참전용사들은 이런 한국의 성공에 자신들의 기여가 있었다고 자부하기 시작했다. 미군은 한국전에서 5만명의 전사자, 10만 명의 부상자를 냈다. 그 희생으로도 승리를 쟁취하지 못했다고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는데, 한국에 와 보고는 희생의 결과물이 번영하는 자유의 나라임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핼버스탐은 '가장 추운 겨울'에서 한국의 성공은, 유럽을 살린 마셜플랜을 능가하는 트루먼의 업적이었다고 칭송했다. 한국인의 성공 덕분에 미국의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얼굴을 들고 살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국의 反美운동 때문에 갖지 않을 수 없었던 미안한 생각이 다소 누그러졌다. 
  

 


 댓글

 

 

  손자병법   2013-05-08 오후 11:54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 가장 잘못 알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바로 "미국
이 자기네들 이익을 위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는 것이다. 좌파와 종북세력들은 이런
인식을 더욱 확대 증폭시켜 미국이 한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분단은 물론 전쟁까지 유
발시켰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수 보수우파 성향의
사람들조차 미국이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6.25때 한국을 도와주었다는 생각을 갖고 있
다. 지식인들까지 이런 인식을 아주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전혀 다르다. 한반도가 미국의 이해관계에 그렇게 중요했거나 전략
적으로 가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면, 무엇보다 도서방위선에서 남한이 제외되지도 않았
을 것이고, 1949년의 미군 철수도 없었을 것이다. 해방 직후 미 행정부의 문서들을 살
펴보면 한반도 자체가 미군이 주둔하기에는 군사전략적으로 가치가 별로 없다는 것으로
나온다. 동북아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에 직접적으로 관련있는 국가는 일본 하나밖에 없
었다. 미국의 입장에선 이것이 지극히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판단이었다. 해방정국 무렵
아무것도 없던 대한민국이 구미 열강의 입맛을 당길만한 매력적인 요인은 눈 씻고 찾
아봐도 없었다.

그래서 소위 지식인들에게 미국이 자기네들 이익을 위해 전쟁 때 한국을 도와주었다는
데, 도대체 그 이익이 무엇이냐고 질문하면 제대로 대답을 못하는 것이다. 1953년 체결
된 한미방위조약도 미 행정부의 온갖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이 미국 정부와 결사적
으로 투쟁하면서 얻어낸 결과물이지, 절대 미국이 순순히 체결해준 게 아니다. 미국 입
장에선 폐허나 다름없는 대한민국에 어느정도 생색용 원조나 하고 물러날 생각이었던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그게 당연했다. 한반도는 군사전략적으로 인적 물적 자원
을 투입하여 주둔시키기에 용이한 곳이 아닌데다, 남한은 경제적으로 생산지로도, 소
비지로도 아무 능력이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대한민국에 챙겨먹을만한 어떤 특별한 이득거리가 있어서 그 많은 희생을 치르
면서까지 6.25 전쟁에 참여한게 아니다. 공산주의 봉쇄전략을 최고의 국정과제로 설정
한 이른바 트루먼 독트린에 입각하여 김일성의 침략을 단순히 북한의 남침이 아니라,
소련이 주도하는 팽창주의의 일환으로 보고 참전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당시 트루먼
행정부는 김일성의 남침을 민주진영에 대한 공산진영의 도발로 보았다. 전쟁 발발 두
어달 전에 수립된 미국의 냉전 기본전략이자 대소련 봉쇄론을 골자로하는 NSC 68 전
략에 의거하여 과감하고 신속하게 전쟁 참여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당시 트루먼은 북한의 침공을 1939년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으로 보았다고 한다. 단순
한 내전이 아닌, 소련 공산주의를 등에 업고 세계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중대한 도발
로 인식한 것이다. 미국이 즉각 출동하지 않으면 소련이 중동이나 다른 지역에서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트루먼 미 행정부는 한국을 지키는 것이 다른
지역에서 추가적인 공산주의 팽창을 막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6.25 전쟁에 참여한 이유다. 그것은 단순히 한반도라는 특정 지역에서의 이득
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의 팽창을 막아 자유진영을 수호해야 한다는 미국
의 세계전략과 자유민주주의적 가치관이 가져온 결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미국은 자신들의 '정책' 때문에 6.25 전쟁에 참여하게 된 것이지,
'이득'때문에 참여한 게 아니다. 정책과 이익은 구별해야 한다.
 
 

  naidn   2013-05-08 오후 10:14
미국은 우리의 恩人이다.
지금의 풍요와 번영 행복은 미국 덕분이다.
미국보다 정의로운 나라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