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정치.사회/파헤친 歷史

워싱턴 공사관 사진 속 미스터리 풀렸다

淸山에 2013. 4. 26. 04:54

 

 

 

 

 

워싱턴 공사관 사진 속 미스터리 풀렸다
[중앙일보]
지난해 되찾은 건물 … 기록엔 1891년 매입, 알렌 사진엔 1889년
건물 매입 3년 전부터 임대한 듯
문화재청, 미 국무부 문서 찾아내
초대 전권공사 사무실 위치도 확인

 

 


연세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주미대한제국공사관 사진. 원본 사진은 사라지고 현재 파일로만 보관중이다.

원 안 인물은 이채연, 이하영, 이완용, 알렌(왼쪽부터)이다. 건물 위 ‘국긔(국기)’라고 쓰인 부분에는 태극기가 게양돼 있다.

 [사진 연세대박물관]


 한 장의 흑백사진이 있다. 고풍스런 느낌의 건물 앞에 커다란 나무가 서 있고, 정문 앞에는 두루마기 차림에 갓을 쓴 세 남자와 정장차림의 서양인이 서 있다.

 

 사진 아래에는 ‘재미국화성돈조선공사관지도(在美國華盛頓朝鮮公使館之圖)’라는 메모가, 위에는 ‘개국 사백구십팔년 사월초구일’(양력 1889년 5월 8일)이 적혀 있다.

 

 15년 전, 연세대가 세브란스 병원 설립자인 알렌(Horace Newton Allen· 1858~1932) 박사의 자료를 모으던 중 입수한 사진이다. 오랜 기간 어떤 의미를 담은 사진인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조선 말기 고종이 대미외교를 위해 워싱턴(화성돈) 공사관을 매입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사진 속 건물의 정체는 드러났지만, 의문은 지금껏 풀리지 않았다. 워싱턴 시정부 기록에 따르면 조선정부가 이 건물을 매입한 것은 1891년(고종 28년) 12월 1일. 그러나 사진에 적힌 날짜는 그보다 2년 7개월 전인 1889년 5월이었기 때문이다.

 

 고종이 이 건물을 산 것은 1891년이었지만, 실제로는 1889년 초부터 이 건물을 임대해 공사관으로 운영해왔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하 재단)은 최근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소 자료에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25일 밝혔다.

 

사진은 조선 정부가 워싱턴 로건서클의 공사관 건물을 임대하기 전에 공사관 업무를 봤던 사무실 자리.

 [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새로 공개된 문서에는 미국 법무부가 1889년 2월 13일부로 조선공사관의 주소를 ‘1500 13th street N,W’(주미대한제국공사관의 당시 주소)로 공식 확정한다고 적혀 있다. 당시 서리전권공사였던 이하영이 미국 국무부에 조선공사관의 개설 및 주소를 통지했으며, 미 국무부가 이를 확인하고 인정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연세대가 보관 중이던 사진 속 날짜의 비밀도 풀렸다. 사진은 조선 정부가 이 건물을 공사관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지 3개월 후인 5월에 찍은 것이다. 사진 뒷면에는 사진 속 인물들의 이름도 적혀 있다. 이채연(당시 서기관), 이하영, 이완용(당시 참무관), 고종의 어의(御醫) 알렌(당시 참찬관·參贊官)이다. 재단 측은 국무부 문서와 더불어 이하영·이완용 등의 출입국 자료를 조사해 사진의 날짜가 정확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기간 동안 공사관에서는 당시 미국 대통령 그로버 클리브랜드(1837~1908)의 부인인 프랜시스 클리브랜드 여사를 비롯해 현지 관료와 외교관들을 초청한 연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미국 신문에는 이 파티가 “워싱턴 외교가의 큰 화제거리”였다고 보도됐다. 조선 정부가 외교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워싱턴 공사관을 적극 활용했음을 보여준다.

 

 이번 조사에서는 1889년 워싱턴 공사관으로 이전을 하기 전, 조선 정부가 1년 여간 공사관으로 활용했던 사무실의 위치가 처음 밝혀지기도 했다.

 

 1888년 초대 전권공사였던 박정양이 개설한 이 사무실은 알렌의 지인이었던 피셔(V S Fisher)가 소유했던 건물이어서 ‘피서옥(皮瑞屋)’으로 불렸다. 로건서클의 공사관 건물에서 남서쪽으로 두 블록 가량 떨어진 곳이지만 지금은 원래 건물이 헐리고 아파트가 들어선 상태다.

 

 재단 측은 “지난해 한국정부의 공사관 매입 후 새로운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며 “오는 10월 공사관 매입 1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관련 사실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영희 기자

 

◆주미대한제국공사관=미국 워싱턴 D C 로건서클에 있는 빅토리아 양식의 건물. 고종이 1891년 왕실자금 2만 5000달러를 들여 구입했다. 1897년 대한제국 선포 후 대한제국공사관으로 활용됐으나 1910년 국권상실과 함께 일본에 5달러에 강제 매각됐다. 지난해 10월 한국정부가 건물 주인에게 350만 달러를 주고 되찾았다. 현재 활용방안을 모색 중이다.

 

 

 

 

 

 

 

“주미대한제국 공관 1891년 아닌 1889년 개설”
美 국립기록보관소 문헌 확인
  
  

목록 메일 인쇄 글씨크기   외교관으로 두 번째 미국에 간(1888년 11월) 이완용 참무관은 1889년 4월(양력 5월 8일) 미국 워싱턴DC 로간서클의 공사관 건물 옥상에 태극기를 게양한 뒤 이하영 서리전권공사와 이채연 서기관, 고종의 어의였던 호레이스 앨런 참찬관과 건물 입구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개국 사백구십팔년 사월초구월’ ‘대됴션쥬미국대사관’이란 글자가 선명하게 기록된 그 사진은 누렇게 빛바랜 채 연세대박물관에 ‘재미국화성돈조선공사관지도’(在美國華盛頓朝鮮公使館之圖)로 남아 있다. 그러나 문화재청이 지난해 매입한 주미대한제국 공사관의 개설시점을 1891년 12월 1일이라고 밝혔던 터라, 그 사진은 ‘의문의 사진’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의문이 풀렸다.

 

 
▲ 1889년 양력 5월 8일 주미대한제국공사관 전경.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 미 국무장관 T F 베이어드가 1889년 2월 15일에 주미공사 이하영에게 보낸 편지로,

1889년 2월 13일자로 옮긴 새 공사관의 주소를 확인한다는 내용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안휘준·이하 재단)은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소가 소장한 문헌을 발굴한 결과 이 공사관의 개설시점이 당초 알려진 것보다 2년 10개월 앞선 1889년 2월 13일이었다고 25일 밝혔다.

 

1889년 2월 15일 당시 미 국무장관 T F 베이어드는 이하영 공사에게 보낸 공문서에서 “오늘 이후 이곳 수도(워싱턴DC)의 조선(Corea)공사관 공식주소를 ‘1500 13th street N,W’로 정하겠습니다. 지난 (2월)13일자 공문에 대해 (인정하고) 통지하게 됨을 기쁘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재단은 또한 이하영, 이완용의 여권 출입국 자료 조사 등을 통해 의문의 사진이 ‘2차 공사관’으로 이사한 지 석 달 뒤에 촬영됐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2차 공사관은 제24대 미국 대통령 그로버 클리블랜드의 부인 프랜시스 클리블랜드를 초청해 성대한 연회를 열기도 해 현지 신문에 대서특필됐다.

 

재단은 또 1881년 1월 19일 최초로 개설된 조선의 1차 공사관 ‘피서옥’(皮瑞屋)의 위치도 밝혀냈다. 조선 정부가 임대해 입주한 피서옥은 앨런의 지인이었던 피셔가 소유했던 건물로 ‘앨런일기’와 ‘박정양 전집’ 권4에도 적혀 있다. 2차 공사관에서 남서쪽으로 두 블록가량 떨어진 지점에 위치로 ‘1513 O street, Washington D.C.’다. 지금은 헐리고 고급아파트가 들어섰다고 재단은 설명했다. 박정양은 조선 최초의 주미전권공사로 1887년 8월에 임명됐고, 미국에는 그 다음 해 1월 1일 상륙했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