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 지금 남(南)으로 가라.
남쪽 큰 대문이 오늘 열린다. 닫힌 성문 밖에서 문 열리기를 기다리던
나무꾼이 아니다. 더는 추워서 떨지 말고 이제는 혼자라고
외로워하지 말라. 불탄 잿속에서 주작(朱雀)이 날개를 펴듯 다시 솟아난
600년의 기억. 그러나 이것은 과거를 위해 세운 달빛의 문이 아니다.
앞으로 600년 자유와 행복의 열매가 태양처럼 열리는
너희들을 위한 미래의 문이다.
나치가 무너지던 날 프랑스의 젊은이들은 개선문으로 달려갔고
동서의 벽이 사라진 날 독일 젊은이들은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갔다 하더라.
그러나 너희들은 아니다.
오늘이 아니라 내일, 내일이 아니면 모레, 그보다 더 먼 글피와
그글피라 할지라도 좋다. 그날이 올 때까지 이 문을 향해서 뛰어라.
너희들 지금 남으로 가라.
하늬바람 부는 서쪽 돈의문(敦義門)에서는 의(義)를 배우고
북쪽 홍지문(弘智門) 뒷바람한테는 지(智)를 익혔다.
동트는 새벽 흥인지문(興仁之門) 새 바람이 불 때 너희들은
함께 아파하는 법, 기쁨을 나누는 마음 어질 인(仁)을 행했다.
그러나 오늘은 남쪽 문 마파람 부는 숭례문(崇禮門) 새 문 앞이다.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흩어진 옷깃을 여미고
무릎 꿇어 역사 앞에 큰절을 하라. 그동안 의롭다고 무례한 적 없었는가.
무엇을 안다 건방지고 남에게 베풀었다 버릇없이 굴지 않았는가.
거듭 태어난 숭례문처럼 예로써 몸을 씻고 다시 태어나 젊음의 지혜와 열정을
갑옷으로 싸라. 큰 대문 열리는 오늘 마파람 부는 날,
등뼈를 꼿꼿이 세우고 일어서면 너희 옷자락은 깃발처럼 나부끼고,
떠나는 배의 돛처럼 태양길이 열린다.
너희들 지금 남으로 가라.
여름 소낙비처럼 태양빛이 쏟아지는 남쪽 큰 대문이 빗장을 따고 활짝 열렸다.
뒤로 600년, 앞으로 600년 보아라. 대한민국 국보 제1호. 숭례문
너희들이 어릴 적 남대문이라 부르던 자랑스러운 문
이제는 너희들 차례가 된 숭례문이다. 이어령 본사 고문
숭례문 복구 기념식이 4일 오후 2시 숭례문 현장에서 열린다. 화마(火魔)에 쓰러진 지 5년3개월 만이다. 세종로·광화문 일대에선 축제마당도 펼쳐진다. 새 숭례문은 5일부터 매일(월요일 제외) 오전 9시~오후 6시 일반에 개방된다. 기사 속 홍지문은 숙정문(肅靖門)이라고도 했다.
사진=강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