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희미한 탁본 놓고 쩔쩔매는 동안… 中, 지안 고구려碑 연구서적 이미 출간 유석재 기자
논문 10여편으로 다각도 분석, 장수왕 15년인 427년 건립결론… 2월말 출간, 이제서야 알게 돼
중국이 지난 1월 공개한 지안 고구려비의 탁본 일부.
지난해 7월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集安)에서 발견된 '지안 고구려비'에 대해 중국 학계가 "이 비석이 현전 최고(最古) 고구려비가 아니다"는 내용을 담은 첫 연구서를 지난 2월 말 출간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안시박물관이 편저하고 지린대출판사가 출간한 연구서 '지안고구려비'는 비(碑) 출토 경위와 조사, 해독 등 논문 10여편과 도판 43점을 실었다. 국내 학계가 제대로 된 탁본을 구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동안, 중국에선 상당한 수준의 연구를 진척시킨 것이다.
중국 학계가 지안 고구려비 연구서를 출간한 것은 이 연구에 참여한 장푸여우(張福有) 지린성 사회과학원 부원장이 10일 중국 국가문물국(문화재청에 해당) 홈페이지에 올린 보고서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지안 마셴(麻線) 고구려비 비문 보충 해석' 보고서는 "중국 연구팀이 지안 고구려비의 건립 연도를 427년(장수왕 15년) 정묘(丁卯)년이라고 결론지었다"고 썼다. 비석에서 판독된 '정묘세간석(丁卯歲刊石·정묘년에 비문을 새기다)'이라는 글자가 그 근거다. 427년은 장수왕이 국내성(지안)에서 평양으로 천도한 해다.
국내 학계에선 비석 건립 연대에 대해 388년(광개토대왕 즉위 전인 고국양왕 5년)이거나 418년(장수왕 6년)일 것이라고 봐 왔다. 지안 고구려비가 414년에 세워진 광개토대왕비를 뛰어넘는 현전 최고 고구려비(388년)라는 국내 일부의 주장을 중국 측이 반박한 것이다. 중국 연구팀은 '무자(戊子·388년)'와 '무오(戊午·418년)'를 놓고 해석이 엇갈리던 비문 왼쪽에서 넷째 줄의 두 글자에 대해서는 '무신(戊申)'이라 판독했다. 이는 408년(광개토대왕 18년)이 되지만 율(律)을 정한 해일 뿐 비석을 세운 해는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 연구팀은 또 지난 1월 첫 발표에서 판독하지 못한 16글자를 추가로 판독했으며, 이를 토대로 비석의 218자 중 190자를 해독했다. 장 부원장은 이 비가 도연명(陶淵明)과 '주례(周禮)' 등에서 유래된 부분이 보인다며 중국 왕조와의 문화적 연결성을 강조했다. 지안 고구려비는 다음 달 1일 개관 예정인 지안박물관 신관 로비에 해석문 및 탁본과 함께 전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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