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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늦은' 正義 구현이 남긴 숙제[아침논단]

淸山에 2013. 4. 1. 03:53

 

 

 

 

 

 

[아침논단]

 '때늦은' 正義 구현이 남긴 숙제
양삼승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영산대 석좌교수

 

 

 

긴급조치 위헌 결정 나왔는데… 현행 헌법 잣대 삼은 건 핵심 회피
민주화 후 26년 지난 결정은 비겁… 대법원·헌재 다툼 떳떳하지 않아
유신헌법 제정 과정 명백히 하고 헌법 수호 몸바친 분들 顯彰해야

 


 양삼승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영산대 석좌교수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던 50여년 전 우리나라는 뒤에서 몇째로 꼽힐 만큼 국민소득이 낮은 나라였다. 그리고 유신헌법과 이에 따른 대통령 긴급조치가 시행되던 40여년 전 우리나라는 유신헌법을 비판하고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하기만 해도 법관의 영장 없이 구속되고, 군법회의에서 재판받는 나라였다. 하나는 경제적 최후진국이었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 최후진국이었다.

 

그런데 지난 3월 21일 헌법재판소에서 이러한 긴급조치 규정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침해하여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실로 4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뒤에야 유신헌법과 이에 따른 긴급조치에 대한 법률적 차원의 역사 청산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결정으로 그동안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처벌받은 585건, 1140명이 재심을 거쳐 무죄판결을 받고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언뜻 보면 위 결정은 헌재가 고심 끝에 소장이 빠진 8명의 전원 일치로 역사적 결단을 내린 것이고, 위헌적인 긴급조치의 피해자들 역시 명예 회복과 함께 금전적 보상까지 받게 되어 모두에게 행복한 결론인 듯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우리가, 특히 의식 있는 법조인이라면 놓쳐서는 아니되는 몇 가지 중요한 점이 연관되어 있다.

 

첫째, 이 사건에서 진정한 핵심 쟁점은 '유신헌법을 비판하면 그 자체로 군사 법정에서 처벌받는다'는 규정이 위헌이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누구나 상식적으로 보아도 위헌이다. 이 판단을 받기 위하여 힘들여 헌재까지 끌고 간 것이 아니다. 답을 듣고 싶어하는 부분은 유신헌법 53조가 규정한 '국가 긴급사태라는 명분으로 대통령이 헌법을 넘는 긴급조치를 할 수 있느냐' 그리고 '1972년 당시 상황이 이러한 긴급사태에 해당하느냐'에 있었던 것이다. 이는 영원한 쟁점으로 현재 잣대로 볼 것이냐, 당시 잣대로 볼 것이냐 하는 문제로 돌아간다. 헌재의 위 결정은 '원칙적으로' 현행 헌법을 기준으로 한다고 하여 문제의 핵심을 회피하고 근본 문제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태도는 스스로가 곤란한 입장에 빠지는 것을 모면하는 영리함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정의가 무엇인지를 최종적으로 밝히는 법 선언 기관으로서 자신 있고 의연한 모습은 결코 아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라"고 법조 후배들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둘째는 '때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든가 '정의는 이를 말해야 할 때에 말해야 한다'는 경구의 가르침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의문이다. 긴급조치가 시행된 것은 거의 40년 전인 1974년이고, 그 이후 수많은 사람이 이로 인하여 고난을 겪었으며, 그 성과로 1987년에 6·29 민주화 선언이 있었는데, 강산이 두 번도 더 바뀐 26년이 지난 이제 와서야 그 위헌성을 따지는 것은 용기 있는 모습은 아니다. 권위주의 정권 당시 직·간접으로 관직에 관여했던 인사들이 현직에서 모두 물러날 때까지 기다려온 속마음이 있을 수 있으나, 용기와 만용이 종이 한 장 차이인 만큼 현명과 비겁 역시 종이 한 장 차이일 수 있다.

 

셋째는 대법원과 헌재 사이의 떳떳해 보이지 않는 권한 확대 다툼이다. 대법원은 3년 전인 2010년에 긴급조치는 '국회를 통과한 법률이 아니므로' 대법원에 위헌 심판권이 있다고 하였고, 헌재는 이번에 긴급조치는 '법률과 동일한 효력이 있으므로' 자기네가 위헌 심사를 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국민의 눈에서 보면 말해야 할 때가 한참 지난 이제야 이러한 주장을 하는 두 기관이 곱게 보일 리가 없다.

 

끝으로 과거사 정리 방식이다. 훌륭하신 분 소수를 제외하고는 우리 법조인 대부분은 유신과 그 이후의 권위주의 시절에 국민의 기본권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원죄(原罪)를 안고 있다. 과거를 샅샅이 뒤져 잘못을 찾아내기는 쉽지만, 후사경(後寫鏡)으로 뒤만 보다가는 자칫 앞의 도랑에 빠질 수도 있다. 그리하여 해결 방안으로 '진실은 밝히되 처벌은 않는다'든가 지난날의 나쁜 기억은 모두 잊어버리자는 '망각 협약'을 맺는 예도 있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가 좀 더 현명해지고, 인간사가 복잡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 이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두 가지 작업은 마무리해두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최소한 의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나는 과거 유신헌법과 긴급명령을 만들고 시행할 당시 그 핵심적인 과정을 명백히 밝혀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려웠던 시절 헌법을 수호하고자 용기를 내 정의를 외치고, 이 때문에 불이익을 당한 분들을 찾아내어 현창하는 일일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우리나라에 앞으로 정의가 살아 숨 쉬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역사 발전은 결코 값싸게 얻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