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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突厥)의 후예 '아슈케나지' 유태인유태민족의 분류, 아슈케나지-세파라딤-팔랴샤

淸山에 2013. 2. 26. 06:24

 

 

 

 

 

투르크(突厥)의 후예 '아슈케나지' 유태인유태민족의 분류,

아슈케나지-세파라딤-팔랴샤

金泌材     

 

 


 
아슈케나지는 옛날 카자르(Khazar) 왕국을 세웠던 터키(돌궐족)계 카자르인의 후손이다. 따라서 현재 유럽과 미국에 퍼져 있는 유태인들은 대개 투르크계라 할 수 있다.


  현재 전 세계 유태인의 숫자는 약 1,500만~1,80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오늘날의 유태인들을 크게 ‘아쉬케나지’(Ashkenazim)와 ‘세파라딤’(Sepharadim), 그리고 이디오피아계인 ‘팔라샤’(Falasha) 등 세 부류로 나눈다.
 
  이 가운데 순수 셈족으로 알려져 있는 세파라딤 유태인은 과거 유럽으로 이산한 유태인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거주했던 사람들과 그 자손들을 말한다. 이베리아 반도에 이주한 세파라딤은 중세시대 전 세계 유태인의 절반을 차지했고 라디노어(유대스페인어)를 사용했다.
 
  일례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주 경기장이 위치한 몬주익(Montjuic) 일대는 과거 유태인들의 집단 거주지였다(몬주익은 '유태인의 언덕'을 의미).
 
  그러나 1492년 페르디난드와 이사벨라, 두 가톨릭 왕들이 마지막 남은 이슬람 지배 지역인 그라나다에 입성 합으로써 스페인에 대한 아랍의 지배는 종식됐다.
 
  유태인들은 가톨릭으로 개종하라는 압력을 받았으며 만약 개종하지 않으면 스페인에서 떠나야만 했다. 당시 이베리아 반도 전체에는 약 50여만 명의 유태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5만 명이 1500년 가까이 살아온 고장을 떠나기 싫어 부득이 스페인에 잔류했으며 나머지 유태인들은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오스만 제국으로 이주했다.
 
  반면 아슈케나지 유태인들은 북동 유럽계 유대인으로 옛날 카자르(Khazar) 왕국을 세웠던 터키계 카자르인의 후손이다. 카자르 지방은 현재의 남러시아의 평원으로 8세기경 이 광대한 초원에서는 터키계의 사람들, 즉 카자르 족은 상인, 직인, 무사로 살았다. 이 무렵 카자르 왕국은 비잔틴의 기독교와 이슬람교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았다.
 
  이에 740년경 불란(Bulan)왕은 양쪽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유태교를 국교로 정하고 국민 대다수를 유태교로 집단 개종시켰다. 카자르 왕국은 9세기부터 국세가 기울기 시작하여 슬라브족의 침략을 받게 되었으며, 급기야 956년 우크라이나 왕국의 스비아토스라프 왕의 침략을 받고 몰락했다.
 
  그 후 아시아로부터 온 몽골군이 유럽으로 원정을 오자 카자르인 들은 몽골을 피해 북쪽으로 이동했다. 따라서 매부리코로 유명한 동부 유럽의 아쉬케나지 유태인들이 실제로는 터키계인 카자르 족의 후손인 셈이다.
 
  현재 아쉬케나지는 미국, 이스라엘, 유럽, 남아공에 약 1,200만 명(전세계 유대 인구의 70%차지), 세파라딤은 이스라엘,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 약 450만 명, 팔라샤는 이스라엘, 이디오피아, 예멘 지역을 합쳐 약 2만 명 정도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2007년 10월29일 작성)
 
  조갑제닷컴 김필재 spooner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