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절대 공개하지 않는 단군 신화의 증거…환웅의 정체
by milhoon on 12월 3, 2012 in 철저분석 국방정보
며칠 전 아주 유명한 병원에 직원으로 근무하는 분이 전화를 걸어왔다.
“기자님-. 홍산문화(요하문명)와 고조선사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취재하시는 것 같은데, 홍산 옥기(玉器)가 세계적으로 유명하잖아요? 국내에 홍산문화의 옥기를 오랫동안 전문으로 수집해온 분이 계십니다. 국내 최대의 입시 미술학원인 ‘창조의 아침’ 공동 설립자 박문원(朴文元, 52) 선생입니다. 박 선생은 사재는 물론이고 창조의 아침 대표인 형님(박정원)의 도움을 받아 홍산 옥기를 수집 소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뿌리인 홍산문화 옥기를 국민에 소개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는 이어 박문원 씨가 수집한 옥기를 설명하는 긴 PPT 자료를 보내왔다. 홍산옥기에 대해 상당히 자세하게 그리고 화려하게 편집한 PPT였다. 홍산문화의 옥기보다 큰 개념인 중국의 옥기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삼국시대의 한국은 금(金)의 나라였다. 신라를 비롯한 백제 고구려의 왕릉에서는 금관이 발견됐다. 13대 미추 이사금 이후 신라의 왕들은 금과 같은 ‘김(金)’을 성으로 썼고, 수도는 금성(金城)으로 불렀다. 백제와 고구려의 유적에서도 신라보다 적지만 많은 금붙이가 발견됐다.
중국은 많은 왕조가 명멸했지만 금관이 발견된 왕릉이 없다. 하지만 옥기는 정말 많이 발굴됐다. 루브르박물관과 대영박물관, 대만의 고궁박물관 등 세계적 박물관들은
홍산옥기를 대표하는 대형 옥저룡 앞에서 선 박문원씨
별도의 방에 중국 옥기를 전시하고 있다.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중국은 옥기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중국 옥기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 홍산 옥기다. 삼국시대 우리는 금의 나라를 이뤘지만 옥도 사용했다. 신라 금관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 중엔 굽은 옥인 곡옥(曲玉)이 달려 있다. 신라 금관의 옥은 경옥(硬玉)인 비취가 많다.
홍산 옥기는 요녕성을 관통해 발해로 흘러가는 요하(遼河) 일대에서 많이 출토된다. 요하에서 일어난 신석기-청동기 문명은 중국이 아닌 한반도로 흘러 들어오니, 홍산문화는 한국 문명의 뿌리로 이해되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중국만큼 옥이 많이 나지 않는다. 현재는 춘천이 연옥(軟玉)산지로 유명한 정도다. 그래서 인지 한반도에서는 인조 옥이라고 할 수 있는 유리를 제작해 유리구슬을 많이 패용했다. 그러나 일부 치장재에는 옥기가 사용됐다. 신라 금관의 곡옥이 그런 경우다.
내몽골자치구 적봉시에는 붉은 기운이 되는 홍산이 있다. 이 곳을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지역에서 옥기가 발견돼 홍산옥기라는 이름이 생겼다
기자는 여러 차례 내몽골과 요녕성에 있는 박물관에 가봤기에 홍산 옥기에 대해서는 꽤 알고 있었다. 홍산문화의 옥기 진품은 대단한 가치를 갖는다. 국내에서는 생소해도 세계적으로는 아주 유명한 홍산 옥기를 다량 수집한 사람이 한국에 있다는 것이었다.
홍산옥기와 유사하면서 제작방법이 약간 다른 옥기가, 같은 요하지역에서 발굴되는 흑피옥(黑皮玉)이다. 흑피옥은 일반 옥에 갖가지 조각을 한 후 검은 염료를 칠해 완전히 까맣게 만든 것이다. 흑피옥은 홍산옥기에 이어 발견돼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흑피옥은 한국인 김 모 씨가 장기간 수집한 바 있었다. 전화를 걸어온 병원 관계자는 “박문원 씨는 흑피옥기도 초대형 기물에서부터 다양하게 소장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옥기에는 가짜도 많다. 홍산 옥기 전문가가 아니면, 무덤에서 나오는 것을 직접 확인하지 않는 이상 진위를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중국에는 진위를 감별할 수 있는 홍산옥기 전문가가 있다. 무덤에서 바로 발굴한 것이 아니면 그들의 의견을 들어야 진위를 판별할 수 있다. 그는 “박문원 씨는 중국 전문가들보다 홍산옥기를 더 잘 감별한다. 그는 진품을 진짜 많이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옥기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풀어가 보자.
석기를 ‘뗀 석기(타제석기, 打製石器)’와 ‘간 석기(마제석기, 磨製石器)’로 나누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바위에서 칼처럼 날카로운 면이 생기도록 떼어낸 ‘뗀 석기’를 사용한 시기를 구석기 시대라고 한다. 돌을, 같은 돌이나 나무 등으로 갈아서 원하는 도구로 만든 ‘간 석기’를 사용한 시기를 신석기 시대라 하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석기 시대라고 해서 돌만 도구로 사용했다고 보면 큰 오해다. 돌보다는 나무를 더 많이 사용했다. 그러나 돌은 지금까지 전해지지만 나무는 썩어 없어지니, 그 시절을 ‘석기(石器)시대’로 부를 뿐이다. 나무와 함께 흙도 많이 사용했다. 흙을 이용해 다양한 그릇(토기)과 조형물, 집 등을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그 시절은 목기(木器)시대, 토기(土器)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외 짐승의 가죽이나 뼈, 풀 등도 도구나 도구의 재료로 사용됐다.
이러한 도구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매우 중요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도구가 아닌 것도 매우 소중히 여겼다. 예쁜 것, 반짝이는 것, 보기 좋은 것이 있으면 먼저 소장한 것이다. 지금도 사람들은 예쁜 것을 좋아한다. 남녀를 막론하고 귀금속이나 명품으로 치장을 한다. 시공(時空)을 초월해 사람은 똑 같다. 석기 시대 최고의 치장물 중 하나는 ‘예쁜 돌’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보석이다.
박문원씨 손 안에 있는 해골 모양의 옥기. 홍산인들이 옥기를 만든 기술은 정말 대단하다
석기 시대 사람들은 인구도 적고 지금처럼 많은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됐으며 먹을 것은 도처에 널려 있었으니 상당히 여유롭게 살았을 것이다. 남은 것은 시간이니 자기 몸을 치장하는데 상당한 공을 들였을 수 있다. 그들은 예쁜 조개로도 치장했을 것이다. 일부 남성들은 동물의 이빨을 실로 엮어 목걸이를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까지도 아프리카나 태평양 오지에 사는 종족의 남성들은 이빨 목걸이를 패용했다.
이렇게 예쁜 것으로 치장을 했는데 그중 최고는 빤짝이는 돌, 예쁜 돌이었을 것이다. 지금 사람들처럼 보석을 좋아한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돌이 그곳에 있느냐이다. 아프가니스탄에는 청금석(靑金石)으로 번역되는 ‘라피즈 라즐리’라는 보석이 생산된다. 라피즈 라즐리는 아주 단단하기에 석기시대 사람들은 가공할 수가 없었다. 자연상태로 있는 것을 보고 즐겨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금속기 시대로 진입하자 라피즈 라즐리를 잘라내고 가공해 다양한 치장을 했다.
라피즈 라즐리는 이집트 등으로도 수출됐다. 아프가니스탄에서만 나는 라피즈 라즐 리가 이집트에서 치장품으로 발견되는 것은 그때도 예쁜 돌은 거래가 이뤄졌다는 뜻이다.
중국은 옥이 많다. 옥에는 단단한 경옥(硬玉)과 부드러운 연옥(軟玉)이 있다. 경옥은 ‘비취’로 불리는데 비치는 다이몬드와 어깨를 견줄 정도로 단단하기에 신석기 시대의 기술로는 자르거나 가공할 수가 없다. 그러나 연옥은 훨씬 물러서 돌이나 나무를 문질러 원하는 모양으로 가공할 수가 있다. 중국은 연옥을 갖고 갖가지 귀중품을 만들었다. 세계 유명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중국 옥기는 대부분이 연옥으로 제작된 것이다. 이러한 중국 옥기의 선두에 홍산옥기가 있다.
홍산 옥기를 만드는데 쓰인 옥은 요동반도에 있는 수암(岫岩)이라는 곳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홍산의 신석기인들은 수백 km 떨어진 수암 등지에서 연옥을 구해와 다양한 방법으로 갈아서 다량의 조형물을 만들었다. 간 석기를 만들던 기술을 적용해 예쁜 연옥으로 귀한 형상을 만든 것이다. 옥은 보기에도 좋은 뿐 아니라 건강에도 좋다. 원적외선 등이 나오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옥이 건강에 좋다는 것도 발견했을 터이니 이를 패용하게 된다.
가면 모양의 흑피옥. 화회탈과 비슷하다. 얇은 옥판에 새겼다
목걸이 귀고리(연옥으로 만든 것은 무겁기에 지금과 같은 귀걸이로 사용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귓바퀴에 거는 귀고리로 사용했을 것이다), 팔찌 기타 조형물 등등. 그리고 일부는 검은 색을 칠해 흑피옥기를 만들었다. 당시 사람들은 죽은 이를 매장했으니 죽은 조상이나 신을 모시는 제기(祭器)를 옥으로 제작했다. 죽은 이를 위한 부장품으로도 멋지게 다듬은 옥기를 넣어주었다.
홍산에 있었던 신석기 문명은 청동기시대를 일으킨 다음 한반도로 문화를 전수했기에, 그들은 우리 민족의 뿌리로 강력히 추정된다. 간단히 말하면 홍산옥기를 만든 세력은 고조선의 원류인 것이다. 금속기 시대인 삼국시대 삼국은 금 문화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옥도 살아남았다. 신라 금관을 보면 작은 굽은 옥(曲玉)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데, 곡옥은 홍산옥기의 상징인 C자 모양의 옥저용(玉猪龍)과 비슷하다.
박문원씨가 보여준 새 모양의 정교한 옥기.
삼국유사는 발달된 문명을 가진 환웅족이 이동해 와, 그 지역에서 후기 신석기 문명을 이루고 잇던 곰족(웅녀족)과 결혼 동맹을 맺어 단군이 이끄는 고조선을 만들었음을 보여준다. 오랫동안 우리는 이를 사실로 보지 못해 단군 이야기를 설화나 신화로 여겨왔었다. 그런데 홍산문명이 발견되면서 환웅족과 곰족의 실존 가능성은 매우 높아졌다.
환웅족과 곰족은 각자의 영역에서 간 석기와 옥기를 만들며 존재했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 불을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인류는 구석기 시대부터 불을 사용했으니 신석기시대에 불을 다룬 것은 당연지사다. 신석기인들은 흙으로 빚은 조형물을 불에 구우면 단단해지고, 물을 담아도 물이 흙에 스며들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정도로 불을 많이 다뤘으니 옥기를 제작할 때도 불을 사용했다. 그들은 불에 넣었던 옥이 그냥 옥보다 가공하기 쉽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때 이미 ‘불처리’를 하며 옥기를 만든 것이다.
그들은 다양한 돌을 불에 넣어 보았는데 그중 일부 돌에서 녹아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녹아 나온 물질은 식으면 단단하게 굳어졌다. 금속이었다. 불에는 녹고 식으면 단단해지는 돌을 발견함으로써 이들은 서서히 금속기 시대로 들어간다. 그때의 금속은 많은 불순물이 섞여 있었다. 금속은 불순물을 제거하거나 잘 섞어주면 단단해진다. 청동기는 구리와 아연 등을 섞어 구리나 아연보다 단단하게 만든 합금속이다. 그러한 발견을 통해 인류를 청동기를 시작으로 한 금속기 시대로 들어갔다.
환웅족은 청동기를 만드는 배합법을 일찍 발견한 종족일 것이다. 이들이 당시 최대의 종족이지만 신석기 단계에 있는 곰족과 결합하면서 최대 강자가 되었다. 삼국유사의 단군 이야기는 이를 단순화해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청동기를 개발한 환웅족이 이동해 와 최대 종족인 곰족과 결혼동맹을 맺은 것이 고조선이다. 고조선과 고조선의 선조가 다양한 옥기를 제작했다.
박문원 씨는 그러한 옥기를 장고한 세월에 걸쳐 수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병원에 근무하는 직원이 왜 그러한 사실을 알려온 것일까? 그리보 박문원 씨가 소장한 홍산옥기는 어느 수준일까.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