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야청청 일천년 神木, 사람들에 화두 던지다…울진 대왕소나무
기자가 대왕소나무를 한 번 안아봤다. 양팔을 펼쳐 세 번을 두를 정도로 컸다. 대왕소나무 옆에 반려자처럼 보이는 소나무가 있다.
◆울진 대왕소나무, 다섯 가지 미스터리
이틀(이달 2~3일)을 헤맨 끝에 찾은 대왕소나무. 그 나무를 보는 순간 말문이 멎어버렸다. 경북 울진군 소광리 안일왕산성 인근 산속을 헤매다 마주친 수령 500년 정도의 소나무는 '야! 대단하네!' '기품이 우러나네!' 등 감탄사를 연발하게 했다. 그런데 대왕소나무는 수령이 750년∼1천 년 정도로 추정된다.
나무 높이는 10m 정도, 밑둥치는 성인 세 사람이 안아야 할 정도이다. 자리잡은 위치도 놀랍다. 산꼭대기 능선 부근에 자리잡아 주변 산들을 굽어보고 있었다. 보통 소나무 크기만한 가지들은 능선에서 맞은 온갖 풍상 때문인지 용틀임을 하듯 틀어져 있었다. 40여 개의 가지 중 일부 가지는 고사하고 20여 개의 큰 가지가 아직도 건강하게 앞쪽과 왼쪽으로 왕성하게 뻗어 있었다.
나무의 상단부는 껍질들이 비바람에 벗겨져 마치 금관처럼 햇볕 아래 광채를 뿜고 있었다. 나무 덩치로 봐서는 키가 더 자랐을 법 하지만 산 정상 부근에 있는 탓에 9∼10m 지점은 마치 작은 분재 소나무 2개를 올려놓은 듯하다. 주변의 나무들은 감히 이 대왕소나무에 고개를 들 수 조차 없을 정도다. 다행스럽게도 오른쪽에는 4∼5m 정도 떨어진 곳에는 대왕소나무가 외로움을 덜어주는 또다른 소나무 한그루가 있다. 사진작가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대왕소나무에 대한 5가지 미스터리를 풀어봤다.
1. 천연기념물 지정 왜 안 됐을까?…본 사람 몇 없어 공론화 못 해
왜 이런 희귀하고 웅장하고 오래 된 나무가 천연기념물이 되지 못하고 있을까? 이유를 추정하자면 이렇다.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서 혼자 고고하게 커 온데다 산림청 등 국가기관에서도 이 나무의 소중함과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 고위 관료들이 대왕소나무 앞에 선다면 이 나무를 보호해야겠다는 의무감이 들 것이다. 하지만 울진군이나 남부지방산림청 소속 울진국유림관리소도 대왕소나무에 대해 어떤 국가적 조치를 해야 할 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왕소나무를 봤다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몇몇 숲해설가나 약초꾼들이 대왕소나무 목격담을 들려줄 뿐이다. 그리고 울진군이나 산림청 공무원 몇 명만이 대왕소나무를 직접 봤다고 한다. 대왕소나무를 직접 본 사람들은 "그냥 방치할 나무가 아니다. '영험한 신목(神木)'으로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2. 왜 이리 찾기 힘들까?…아는길 놓치기 일쑤 "대왕송이 사람 꺼려서…"
기자가 대왕소나무를 찾기 위해 이 나무를 세상에 알린 사진작가에게 안내를 부탁했다. 하지만 이 사진작가는 '1박 2일'이 걸릴 것이며, 바쁜 일정 때문에 안내를 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수소문을 거듭한 끝에 울진군 기획실 김광대 홍보팀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때마침 김 팀장이 울진군 소속 등산모임 회장인데다 두 번이나 대왕소나무를 봤다고 해서 안내를 청했고, 그는 기꺼이 응해줬다.
하루면 충분할 것이라는 생각은 첫날 산을 헤매면서 무너졌다. 김 팀장은 분명 지리를 기억하고 갔지만 길을 잘못 들어서 대왕소나무를 찾지 못했다. 설마했지만 '1박 2일'은 현실이 되어 버렸다. 인근 구수곡자연휴양림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일찍 반대편 하산길을 올라고 대왕소나무를 만나게 됐다.
김 팀장은 "분명 표시된 노란색과 빨간색 리본을 따라서 갔는데 첫날 뭔가에 홀린 듯 했다"며 "대왕소나무가 그 날은 기자를 동반한 일행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자신의 실수를 농담반 진담반으로 해명했다.
대왕소나무에 영험한 기운이 있는 것일까? 한두 번 찾아간 이들이 다시 찾아갈 때는 길을 헤매기 일쑤고, 하룻만에 대왕소나무를 찾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곳은 국가가 지정한 산림유전자원보호지역이기 때문에 산림청 허가가 없으면 찾아갈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큰 마음을 먹고 찾아간 사람들 중 대부분은 하루 종일 산길을 헤매다가 발길을 돌리는 사례도 적지 않다.
3. 멧돼지가 나무를 지킨다?…야생동물 튀어 나올듯…실제로 멧돼지 만나
첫날 대왕소나무를 찾는데 실패하고 이튿날 김 팀장이 확신한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었다. 30분 정도 올라간 지점에서 6마리의 멧돼지 가족을 발견했다. 일행도 깜짝 놀랐고, 멧돼지들도 오랜만에 나타난 침입자(?)들로 인해 화들짝 놀라 '킁킁' 거리며 위협을 했다. 하지만 다행히 대왕소나무를 보러 온 손님들을 향해 돌진하지 않았고,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반대편 산쪽으로 사라졌다. 실제 멧돼지들을 가까이서 보니, 정신이 혼미했다. 겁도 났다.
울진군 소광리 안일왕 산성 능선 끝에 위치한 대왕소나무를 온갖 동식물들이 호위하고 있는 것 같다. 어딘가에서 곰같은 큰 동물이 튀어나올 듯한 기운도 느껴졌다. 등산로 역시 순탄치 않았다. 조금 올라가다 보면 양쪽으로 갈리는 길이 나와 한 번만 잘못 방향을 잡아도 하루 종일 산을 헤매기 딱 좋은 깊은 산속이었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대왕소나무는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꼭꼭 숨어있기 때문에 1천 년 가까이 고고하게 클 수 있었겠구나!'
4. 어떻게 이런 곳에 이런 나무가?…능선 쪽에 위치, 주변 다스리는 듯
대왕소나무가 자리잡은 곳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청와대 윗쪽 북한산 정상 능선에 비유할 수 있다. 울진군 소광리 깊은 산속 800∼900m에 이르는 높이에서 동북쪽으로 주변의 모든 산들을 다스리는 듯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대왕소나무를 마주한 뒤, 그 뒤로 펼쳐지는 풍광은 보기만 해도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절로 길러질 듯하다.
이 절묘한 위치에 압도적으로 우뚝 선 이 대왕소나무. 보기만 해도 신기하기 그지 없다. 주변에 잡목들은 감히 범접하지도 못한다. 그 어떤 이성적인 과학자도 대왕소나무 앞에서 '영혼이 담겨있는 위대한 나무'라는 표현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넓게 뻗은 가지들은 더 놀랍다. 그 중 앞쪽으로 뻗은 가지 하나는 용 한 마리가 소나무에서 나와 승천하는 듯하다. 다른 가지들 역시 세상을 다스릴 듯 사방으로 힘차게 뻗어있다.
5. '아내(?) 나무'와 잘린 가지는? …큰가지 두 개 잘려…'영험' 가지려 했을까
대왕소나무 주변에는 이렇다 할 나무가 없다. 다만 오른편에 아내 역할을 하는 듯 서 있는 제법 큰 둥치를 가진 소나무가 대왕소나무를 지켜보고 있다. 만약 대왕소나무가 없었다면 이 나무 역시 예사롭지 자태로 인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5∼6m의 키에 지붕처럼 펼쳐진 윗 부분이 마음좋은 어머니를 연상케 한다. 이 나무 역시 산 능선에서 모진 비바람을 이겨내기 위해 윗 부분이 옆으로 자란 것인데 능선에서 보면 반려자인듯 보인다.
대왕소나무의 뿌리는 등산로 쪽으로 하나 뻗어있고, 또 능선 비탈 쪽으로도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다.
의문점이 하나 있었다. '누가 이 신목(神木)의 큰 가지 두 개를 잘랐을까?' 잘린 단면으로 볼 때 누군가 톱으로 자른 것으로 추정된다. 첫 번째 추측은 누군가 주변 정리를 하면서 고사된 가지를 잘랐을 것이란 점이다. 두 번째 추측은 대왕소나무를 보러 온 이가 나무의 영험을 소유하고 싶어 가지를 잘라 가져갔을 것이란 점이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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