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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외모에 근성까지… 한국 최초로 ABT(아메리칸발레시어터) 수석무용수된 서희

淸山에 2012. 7. 9. 08:52

 

 

 

 

타고난 외모에 근성까지… 한국 최초로 ABT(아메리칸발레시어터) 수석무용수된 서희
뉴욕=신정선 기자
이메일violet@chosun.com

 

 

 

[발레리나 서희, 한국인 첫 영광… 기자와 뉴욕 인터뷰中 통보받아]
'세계 3대' 꼽히는 美 국립발레단, 솔로이스트 2년도 안돼 승급…
6학년 때 취미로 시작한 늦깎이… 18일 '지젤' 내한공연 앞두고 경사
"희가 수석 무용수가 됐어요! 방금 통보받았어요!" 인터뷰 시작 5분 전이었다.

 

지난 6일(현지시각) 오전 12시 미국 뉴욕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사무실에서 발레리나 서희(26)를 기다리던 기자에게 흥분한 홍보 담당자가 달려왔다. 한국인 최초의 ABT 수석무용수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놀란 기자와 홍보 담당자 앞에 나타난 서희는 차분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10분 전에 예술감독 케빈 맥킨지가 부르기에 스케줄 얘긴 줄 알았어요. 지금은 놀랍기만 하고, 기쁜 건 조금 있어야 알 거 같아요."

 

오는 18~22일 ABT의 '지젤' 내한 공연을 앞두고 마련한 인터뷰는 갑자기 '한국 발레의 새 역사'를 쓰는 자리로 바뀌었다. ABT는 이견이 없는 세계 최정상의 발레단으로, 2006년 미 의회가 승인한 미국 국립발레단이다. 파리 오페라발레단·영국 로열발레단과 함께 세계 3대 발레단으로 꼽힌다.

 


 타고난 외모에 남다른 성실함과 근성으로 세계 최정상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수석 무용수가 된 서희. ABT측은 "ABT의 동양인 수석 무용수는 20년 만에 처음"이라고 밝혔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2005년 5월 입단한 서희는 2010년 8월 솔로이스트가 된 후 2년이 안 돼 승급한 것이다. 수석 승급은 따로 시기가 없다. 예술감독이 '때가 됐다'고 판단할 때 통보한다. 그 '때'는 대부분의 무용수에게는 영영 안 오고, 선택받은 소수에게만 벼락처럼 온다. 7월 현재 ABT 단원은 91명. 수석무용수(principal)는 여성 11명, 남성 10명이다.

 

◇늦깎이 발레리나

 

서희는 발레를 늦게 시작했다. 애초 발레를 하려던 것도 아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학생회장이던 서희는 '애들하고 뛰놀고 싶어서' 배드민턴반에 지원했다. 정원이 꽉 차 어쩔 수 없이 들어간 게 발레반이었다. 방과 후 수업으로 석 달쯤 배웠는데, 교장선생님이 불렀다. "선화예중에서 학생을 보내라고 공문이 왔다. 회장인 네가 가보라"고 했다. 콩쿠르 성적이 필요했다. 겁 없이 나갔는데, 덜컥 장려상을 받았다. 선화 측에서 장학금을 제의했다. "가기 싫었어요. 친구들은 일반 중학교 가는데 저만 따로 가야 했으니까요." 일단 해보자는 모친의 권유에 들어간 학교에서 그는 외톨이였다. "저만 빼고 다들 학원에서부터 친해온 아이들이었어요. 게다가 취미반에서 배운 발레니 제 실력이 오죽했겠어요. 선생님이 지나가면 창피해서 얼굴이 빨개졌어요."

 

죽자사자 연습하게 만든 것은 떡볶이였다. 방과 후 아이들은 학교 앞 포장마차에서 삼삼오오 떡볶이를 먹었다. 끼고 싶었지만 친구가 없었다. 결국 실기시험 날 찾아온 엄마하고 처음으로 그 떡볶이를 먹어봤다. 친구가 그립고, 칭찬에 목말랐던 서희는 '죽도록, 피나도록' 연습에 매달렸다. 입학 6개월 후 첫 실기시험에서 1등을 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서희는 "그 무렵에는 발레가 좋았다기보다는 인정받고 싶어서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이듬해 워싱턴 키로프발레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독일 슈투트가르트 존크랑코발레학교를 거쳐 ABT로 옮겼다.

 

◇근성이 다르다

 

긴 팔과 다리, 긴 목 등 타고난 외모도 뛰어나지만, 오늘의 서희를 만든 것은 남다른 근성이다. "어릴 때도 눈빛부터 달랐다"고 발레 관계자들은 기억한다. 15세 때 한 무용책의 사진 모델로 뽑혔다. 어른도 지쳐 나가떨어질 정도로 반복되는 촬영이었으나, 어린 서희는 "잘 나올 때까지 하겠다"고 자청해 현장 사람들이 놀랐다.

 

발레리나로 사는 건 스트레스를 어마어마하게 받는다는 것과 동의어다. "항상 누군가에게 평가받아야 하니까요. 제 숙소가 ABT 스튜디오(65가)에서 가까운 75가인데, 주변에 무용수가 많이 살아요. 마트에만 나가도 '공연 잘 봤다'고 말을 거는 분이 꼭 있어요. 이제는 그런 부분도 발레하는 행복의 일부로 받아들이죠."

 


 순진한 시골 처녀의 가슴 아픈 사랑을 담은 발레‘지젤’(2011)에서 주역을 맡았던 서희.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제공

 

'오늘은 반드시 그만둔다' 싶은 날도 있다. 그럴 때는 엄마한테 전화해서 울고 잊어버린다. 가장 중시하는 것은 동료의 평가다. "연초에 한 동료가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희가 하는 공연을 제일 좋아한다'고 했어요. 이제까지 들은 말 중에 최고였어요."

 

'지젤' 내한 공연의 주역(3회)을 맡은 그는 "지젤 무대를 아버지께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교사인) 아버지께서 일 때문에 뉴욕에 오지 못해 제가 속한 ABT 발레단 공연을 본 적이 없거든요. 이번에 아버지께 최고의 지젤을 선물하고 싶어요."

[수석무용수가 되면] 대부분 주연, 4인 군무 안춰… 개인 분장실과 전담 의상 담당

 

어느 발레단이나 수석무용수는 얼굴이자 자존심. 수석은 대부분 공연의 주역을 맡으며 4인 이상의 군무는 추지 않는다. 발레단의 외부 행사 시 대표로 참석하고, 매체 인터뷰도 수석 위주로 배정된다. 실질 대접도 달라진다. 경제적 보상은 올라가고, 근무 시간은 줄어든다. 서희는 "아메리칸발레시어터의 경우 수석무용수는 개별 계약하기 때문에 정확한 조건은 누구도 모른다"며 "연차가 올라가면 근무 시간 등 본인이 정한 조건에 따라 계약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발레단별로 차이가 있으나, 개인별 분장실이 주어지고 메이크업 담당자나 의상 담당자가 수석을 위해 따로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부득이 솔로이스트들과 함께 화장을 하게 되면 메이크업 담당자 중 가장 연장자가 수석을 맡는다. 이에 반해 코르 드 발레(군무진)는 단체로 한 분장실에서 직접 화장하고,

의상 담당 한 명이 여러 발레리나를 입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