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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내내 얼음이 녹지 않는 곳 - 유럽기행(5)/스위스, 알프스 등정 편

淸山에 2012. 7. 6. 17:39

 

 

 

 

 

1년 내내 얼음이 녹지 않는 곳

 

유럽기행(5)/스위스, 알프스 정 편

조약돌(회원)

 

유럽 여행기 5편(스위스 & 알프스 등정)


5. 영세중립국[Permanently Neutralized State , 永世中立國]



스위스는 오스트리아, 라오스, 로마 교황청(특수 국가)과 더불어 영세중립국이다. 벨기에, 룩셈부르크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영세중립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받아서 국토가 유린되었다가 연합군에 의하여 해방되자, 침략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는 영세중립국 지위를 포기하고 종전 후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였다. 반면 오스트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영세중립국이 아니었으나, 대전 중 나치의 침공으로 독일의 지배를 받게 되자 종전 후인 1955년도에 外侵(외침)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기 위하여 영세중립국이 되었다. 라오스 역시 1962년도에 인도차이나반도 戰火(전화)를 피하기 위하여 영세중립국이 된 경우이다.

영세중립국에는 스위스처럼 주변 국가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주변 당사국들이 조약으로 특정 국가에 영세중립국 지위를 부여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오스트리아처럼 국가 자신이 영세중립국이 되기로 하고 이를 선포함과 동시에 관련국들에게 통보를 하여 그 지위를 인정받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스위스는 1815년 비엔나 회의에서 영세중립국으로 지정되었고, 그 후 파리회의에서 재확인되었는데 이를 보장한 나라로는 영국·프랑스·오스트리아·프로이센(독일)·러시아(소련)·스페인(에스파냐)·포르투갈·스웨덴 등 8개국이다. 영세중립국이라고 해서 자국이 침략 당했을 경우 전쟁능력 자체가 박탈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스위스는 영세중립국이지만 상비군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6. 유럽의 靈山(영산) 융프라우(JUNG FRAU) 등정

 

우리 일행은 알프스 산의 융프라우를 등정하기 위하여 로잔 역에서 버스로 인터라켄으로 이동을 하는데, 중간에 버스 기사가 잠시 볼 일이 있다고 휴게소에 들르는 바람에 우리 일행도 하차를 하게 되었다. 대부분 따라 내렸지만 버스 안에 그냥 남아있기로 했다. 그런데 운전기사는 버스에 남은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동을 꺼버렸다. 후덥지근한 날씨 탓으로 꽤나 더웠다. 그러나 이 나라는 주정차 중 공회전을 법으로 금지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누구 한 사람 불평을 하는 사람은 없고 그 후로 웬만해서는 중간에 멈춰선 버스에 그냥 남아 있는 사람은 없게 되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그린델발트로 다시 이동하여 여장을 풀었다. 이 마을은 알프스 자락에 위치하여 주변 환경은 동화에서나 나옴직한 표현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초원과 산악이 어우러져 있다. 만년설로 덮여있는 융프라우는 우리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이튿날 아침, 이른 식사를 마친 우리 일행은 그린델발트 역으로 이동하여 인터라켄 산악 열차에 몸을 싣고 융프라우 등정에 나섰다. 쾌청한 날씨 속에 30도 경사의 비탈길을 충직한 기차는 톱니바퀴 레일을 따라 굉음 소리를 내면서 묵묵히 잘도 올라갔다. 산 정상까지는 출발지에서 9.3km라고 이정표가 나와 있다. 완만한 경사를 따라 50여 분을 달려온 기차가 멈춰 섰다.

앞으로의 여정은 경사각이 너무나 가팔라서 이 기차로는 더 이상 못 올라간다고 열차를 갈아타야 한다고 했다. 이번에 갈아탄 기차의 톱니는 앞서 기차보다 톱니가 더 깊은 무려 5cm라고 했다. 이 기차는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에 스위스인들이 세계 최초로 천신만고 끝에 성공한 산악 열차라고 했다. 그 때 우리 조상님들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한일합방 노예 문서에 도장을 찍고 계셨을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눈사태가 발생하는 알프스 자락에서 기차가 운행 중에 눈사태에 매몰되는 사고(실제로 발생하여 100여 명 희생)를 방지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인공 차양과 터널을 지나면서, 혹시라도 저 기관사가 세상 살기 싫다고 여기서 이 기차의 시동을 꺼버리면 이 기차가 지구 반대편 한국까지 굴러 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어디를 가나 유별난 한국 아주머니 관광객은 있게 마련이다. 기차가 멈춰선 와중에 스위스 알프스 산자락까지 와서 산나물 곰치를 캐겠다고 호텔에서 비닐봉지를 얻어서 갖고 온 그 奇行(기행)에 입이 벌어질 수밖에…. 인천 공항 여행객 안내문에는 해외에서 동식물을 무단 반입해서는 아니 되고 신고하라고 되어있던데 캐고 가서 신고를 할 것인가? 아니면 몰래 슬쩍 밀반입이라도 하려는 것인가!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기에 푸른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어 먹고 있는 저 소는 한국에선 대관령 목장에나 가야 볼 수 있고, 한우들은 주인을 닮아서 그런지 바빠서 식사도 인스턴트식품인 사료를 먹는데, 스위스는 어디를 가나 방목되어 입맛에 맞는 초식을 하면서 한가롭게 노는 목가적 풍경이 우리의 옛날 농촌 마을을 떠올리게 했다.

 

알프스 산을 오르면서 기차에서 창밖을 보니 아주 높은 곳까지 사람이 사는 주택들이 지어진 마을이 보인다. 달동네도 아닌데 전원주택을 고생고생하며 올라와야 하는 저 높은 곳에 지었는지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평지에도 얼마든지 지을 땅이 있는데 그 곳을 마다하고 말이다. 스위스 사람들도 머리가 나쁘지도 않은데 왜 그럴까? 꼭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직까지도 그 답을 찾지 못했다.

 

함께 온 일행 중에 칠순을 맞은 노부부가 있었다. 자식들이 칠순 기념으로 돈을 모아서 보내줬다고 자식 자랑을 그렇게 하더니 오늘은 풀이 죽었다. 왜 그런가 사연을 들어보니 그럴 만도 했다. 관광 보내줘서 고맙고 아름다운 이국의 풍광을 노부부만 즐기게 되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고 수신자 부담으로 아들에게 전화를 했더니 전화비까지 부담시킨다고 자식 놈이 전화를 끊어버렸다는 것이었다.

 

기차가 숨 가쁘게 올라가는데 정상 관광을 마차고 하산하는 기차가 스쳐 지나가기를 너덧 대. ‘너는 하행선 나는 상행선’ 유행가 가사처럼 상대편 기차에 탄 서양 승객들이 환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자 우리도 마찬가지로 흔들었다. 흐뭇한 풍경이다.

 

올라가는 기차에서 갑자기 아내가 내 손을 꼭 붙잡더니 내년에 어디로 여행을 데리고 갈 것이냐고 묻는다. 아내는 여행해서 좋겠지만 은퇴한 남편은 순간 고민에 빠진다. 연금 외에 달리 나올 돈이 없다는 것을 아내인들 왜 모르겠는가만 하여간 내 아내는 남편을 아직도 능력 있는 청춘으로 봐 주는 것 같다. 하긴 남자 능력은 돈을 잘 버느냐 여부로 판가름 나는 세태가 조금은 야속하다는 생각이다.

 

알프스 고산 중턱에 유명한 얼음 궁전(알레치 빙하 얼음 동굴)이 있었다. 천정과 벽, 바닥이 온통 얼음으로 되어 있다. 인공적으로 얼린 얼음이 아니라 고산지대 극저온에 의하여 수만 년 전부터 자연적으로 형성된 얼음에 굴을 판 것이라고 했다. 차가운 냉기가 얼굴을 때린다. 얼마나 추우면 1년 365일 얼음이 녹지 않을까? 알프스 산 정상에는 인간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은 깊은 적설층이 형성되어 있었다. 전망대 앞으로 펼쳐진 저 눈이 태고 적부터 쌓여있던 만년설이다. 유럽의 최고봉 융프라우에서 가장 높은 곳은 3158m라고 전망대에 적혀 있다. 너무 높아서 외부는 기압 차가 느껴질 정도다. 공기가 희박하니 머리가 띵하다. 가방 속에 넣고 올라간 과자 봉지가 처녀 젖가슴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것을 보면 왜 머리가 아픈지 알만 하다.

 

이 높은 곳에 전망대, 조난 구조 대피소, 식당, 매점, 화장실도 갖춰져 있으니 산 정상에서 커피는 물론 라면도 시켜 먹을 수 있다. 여기에서 쓰는 전력은 기름을 어떻게 조달하여 발전기를 가동하고 화장실 오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가 제일 궁금했다. 태양열 발전으로 전기를 얻으니 기름은 필요 없고, 오물은 3.5km 중간 저지대까지 연결된 배수구를 통하여 처리한다고 했다. 스위스인들의 지혜로움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벌써 여름의 문턱인 5월 중순임에도 융프라우는 절기를 잊은 듯, 햇볕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사방의 하얀 설경은 아름답기 이전에 장엄함으로 우리 일행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저 멀리 뾰족한 봉우리에 유럽 연합 국기와 더불어 태극기도 힘차게 나부끼는 것이 보인다. 게다가 한글 안내 방송까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전 세계 국기가 모두 게양되어 있는 것도 아닌데 불과 몇 나라 국기들 중에 태극기가 있다니 이것이 바로 우리의 國力(국력)이 아닐까 하고 유리한 방향으로 추측해본다.

 

나는 좀 더 가까운 곳에서 하느님 얼굴을 보았다. 가이드가, 여기서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귀띔을 하는 것이었다. 교회나 절에 평생 한 번도 나간 적이 없을 법한 한국인 일행들이 눈을 감고 중얼거리며 뭔가를 간구하고 있다. 한국말을 모르는 서양 산신령께서 한국말로 하는 우리 소원을 과연 알아듣고 들어주실지 순간적으로 엉뚱한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최소한 산신령님께서 내 말을 알아들으실 수 있도록 머릿속으로나마 영어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비나이다. 산신령님, 우리 큰 딸 아이가 아들을 낳은 지 10년째인데 더 이상 낳지를 않습니다. 예쁜 손녀딸을 점지하여 주십시오.’


로또에 당첨되어 내 아내에게 능력 있는 남편이 되도록 해달라고 빌고 싶었지만, 로또 기도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하기 때문에 안 들어주신다는 말을 누군가에서 들은 기억이 나서 이 욕심은 솔직히 접었다. 그런데 내 꿈은 잠시 후에 깨지고 말았다.

 

가이드 왈, 결혼한 지 10년이 되어도 출산을 못한 어떤 여성이 와서, 이혼 당하게 생겼으니 아기를 점지해달라고 기도를 했는데, 산신령이 이르기를 “아녀자여, 그대는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융프라우는 처녀봉이라서 님을 품어본 경험이 없으니, 내 앞가림도 못하면서 어떻게 그대에게 아이를 점지해 줄 수 있겠느뇨? 그런 문제라면 몽블랑으로 가서 알아 보거라. 그 년은 혹시 처녀인 척 하면서도 뒷구멍으로 호박씨를 좀 깐 경험이 있을지 누가 아느냐? 불쌍한 지고!”

세파에 멍든 가슴이 융프라우라는 靈山(영산)에 올라 뻥 뚫린 것처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하산했다. 가슴속의 공허함이 씻겨 나갔는지는 모르지만 기압 차로 멍멍하던 귀가 뻥 뚫린 것만은 분명했다. 이제 언제 다시 살아생전에 이 산을 오를 기회가 있을까 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인터라켄 오스트 역에 도착하여 한식으로 점심을 마친 후 우리는 다음 여행지인 이탈리아의 밀라노로 출발하였다.


(6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