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예술/소설&드라마

닭 쫓던 개

淸山에 2012. 6. 29. 14:54

 

 

 

 

 

쫓던 개

 

 

앞 안경가게에 젊은 남자가 종업원으로 오던 날부터 남편과 나는 그의 생김새에 대해 입씨름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액자처럼 네모 반듯한 얼굴에다 벌름거리는 코가 우뚝 솟아있었다. 게다가 머리까지 스포츠형으로 깎아 매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런 남자를 두고 실랑이를 벌인다는 게 어쩌면 싱겁기 짝이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남편의 주장은 비록 얼굴이 네모지기는 했지만 대학 출신이고 팔을 함부로 내두르며 걷지 않는 걸로 보아 점잖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남자가 워낙 못생겼기 때문에 남편은 은근히 안심을 하는 눈치였다. 남편이 그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가 남자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매력이라고는 젊다는 것뿐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점수를 야박하게 줄 수밖에 없었다. 그 남자가 전문대 출신이라는 걸 곧 알게 되었을 때는 솔직히 경멸하고 싶기까지 했다. 그런 남자를 두 장의 투명한 유리를 사이에 두고 싫증나도록 바라봐야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짜증나는 일이었다


 남편은 내가 자신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에 대해 두렵게 생각하고 있었다. 내 얼굴이 미인형의 기준인 달걀형이며 이목구비가 또렷하다는 건 은근히 긍지를 가지면서도 내심 불안해하는 눈치였다.
 
손님 중에도 내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많았다. 동네 유지이면서도 아직 사십이 채 안 되고 인물이 훤한 김 사장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어느 날 김 사장이 내 허리에서 엉덩이로 흐르는 선이 고려자기를 연상시킨다고 하자 남편의 얼굴빛은 서리맞은 배추처럼 퍼렇게 변했다. 그날은 차가 자주 뒤바뀌어 나오는 바람에 손님에게 몇 번씩이나 사과를 해야했다. 그날 밤 나는 남편을 새벽까지 들볶았다.
 
내가 보기에도 나는 아직 귀밑에서 턱으로 흐르는 선이 아름다웠다. 광대뼈가 툭 불거져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남편과 나를 부부로 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손님들은 남편을 주방장이라고 했지 사장이라는 호칭은 절대 쓰지 않았다. 남편과 내가 이곳에 동시에 취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기거하는 집주인이 이 가게의 주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앞 가게의 그 남자가 끈적한 눈으로 나를 종종 엿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시선이 나의 목 언저리에서부터 가슴을 슬쩍 탐하다가 엉덩이 곡선을 타고 다리로 미끄러져 내리는 걸 훤히 알 수 있었다. 그 남자는 안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곁눈질을 해도 잘 표시가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쩌다 남편과 함께 일찍 퇴근하는 나와 눈이 마주치면 예의 점잖은 얼굴로 남편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바쁜 척 가게의 물건을 꺼내서 닦곤 했다. 이때는 나도 딴 데를 보는 척하며 그 사람의 뒤통수를 흘깃 훔쳐보았는데 네모지고 편편한 얼굴에 맞게 아예 절벽이었다. 그 사람의 머리 모양은 어느 고찰의 마당 한 쪽에 서 있는 돌을 대충 깎아 만든 부처처럼 앞에서 보면 넓적하고 옆에서 보면 뒤통수에 커다란 코가 붙어 있는 격이었다.
 
“당신, 앞을 잘 봐야지, 넘어지면 어쩌려구.”
 
잠깐 앞 가게를 보느라고 한눈을 팔았던 모양이었다. 남편이 그 말을 하면서 어깨를 감싸안자 나는 눈을 흘기면서 뿌리쳤다. 앞 집 남자가 코가 좀 별나서 쳐다보고 있었는데 눈치 없는 남편이 나를 끌어안으니 창피했다. 그 남자도 비껴 가는 듯한 시선으로 나와 남편을 훑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낳지 않으려다 남편이 죽네 사네 하는 바람에 아들 하나를 낳았다. 목욕을 할 때마다 거울을 보면 뱃가죽이 눈밭을 싸리 비질해 놓은 것처럼 허옇게 튼 게 보였다. 다행히 아이를 우유로 길러서 젖가슴은 팽팽했다. 남편은 나를 신주단지 보다 귀히 여겼다. 하긴 우리 가게에 오는 손님들 중 나를 아줌마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남편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앞집 남자가 온 지 한달 쯤 되었을까. 남편과 나는 한가한 시간이 되자 그 남자를 염두에 두고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했다.
 
“앞집 총각은 보면 볼수록 괜찮다. 그치?”
 
그런 말에 호락호락 속을 보여줄 내가 아니었다.
 
“자기도, 참... 각진 턱은 그렇다치고 대패로 밀어버린 것 같은 뒤통수 아직 못 봤어?”
 
나는 일부러 그 남자를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과장되게 말했다.
 
“얼굴이 네모진 게 더 남자답잖아? 그런 데다 대학 출신이지, 교양있지.”
 
남편은 은근히 나를 떠보고 있었다. 나의 뇌리에는 노동판을 떠돌아 쉽게 늙어버린 아버지를 소 닭 보듯 하던 젊은 어머니가 점유하고 있었다. 아직 뽀얗고 탱탱하던 얼굴에 화장품을 천박하게 찍어 바르고는 너덧 시간씩 싸돌아다니다 아버지 귀가 시간 직전에 귀신처럼 들어오는 것을 어린 시절 보아 온 나였다. 아버지에게 단 한 번도 고자질한 적이 없는 영악한 나였다. 하긴 늙은 아버지를 따라 사는 어머니가 측은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리 무딘 남편이라지만 그 남자와 나 사이에 눈길이 오간다는 걸 느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칫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을 수도 있었다.
 
“우리가 저 남자를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해야하는 이유가 있어? 자기는 밥 먹고 할 일도 없나부다.”
 
“무료하니까 해본 소리야.”
 
남편의 모과 같은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만족스럽게 웃을수록 광대뼈가 살을 비집고 나올 듯 툭 불거졌다. 웃는 남편을 바라보니 내 인생이 처참하게 느껴졌다.
 
우리 커피숍은 원래 배달하는 가게가 아니었다. 하지만 가까운 상가에는 한가 할 때만 배달을 했다. 앞 가게에서도 간혹 커피를 시켰다. 그 가게 주인과 젊은 남자가 친척간이어서 가게를 그 남자에게 아예 맡겨놓는 모양이었다. 그 남자는 순전히 나를 보기 위해 커피를 배달시키는 것 같았다.
 
남편은 내가 그 가게에서 좀 늦어진다 싶으면 홀에서 안경점을 흘깃거리며 오락가락했다. 강동한 흰 작업복이 거무스름한 커피 물과 불그레한 칵테일로 얼룩져 있어 남편은 더욱 못나 보였다. 내가 상기된 볼에 미소를 머금고 가게로 돌아오면 남편은 화가 난 표정이긴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남편은 주제파악을 잘하는 편이었다.
 
안경점에 커피를 배달하면서 그 남자의 이름도 알게 되었다. 때로는 농담도 주고받으며 조금씩 가까워졌다. 그 남자는 나를 예쁜 누나라고 불렀고 나는 그 남자를 민수씨라고 불렀다.
 
그 남자와 첫 번째 몰래 데이트를 할 때 나는 조금 비싸게 굴었다. 내 무릎 위로 다가온 손을 슬쩍 밀어내었고 입술이 나를 막 덮칠 무렵엔 슬픈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돌렸다. 역시 그는 쩔쩔매더니 내 모습이 아름다워서 자기도 모르게 그랬노라고 변명하였다.
 
두 번째의 몰래 데이트 때 입술만은 허락을 했다. 그 남자의 서툰 표정을 보며 솟구치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면서.
 
세 번 째 노래방에서의 데이트는 아슬아슬했다. 그가 입술로 내 몸을 더듬을 때 정말 갈등을 했다. 장소가 지하 창고 같은 노래방이라서 내 몸의 은밀한 부분까지 허락할 수는 없었다. 물론 서너 번 정도는 거절해야 그 남자가 완전히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레이스 커튼과 샹드리에가 있는 호텔에서 그 남자와 첫밤을 맞이하고 싶었다. 그 남자의 아쉬워하는 표정에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 남자의 가슴엔 내가 들이부은 인화물질로 가득 차있다. 나는 성냥불을 당기기만 하면 된다. 아마 그는 내게서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부풀어 터질 것만 같았다. 커피숍에서 옷자락을 펄럭이며 다니는 나를 쫓는 남자의 눈은 충혈 되어있었다.
 


어스름이 골목길을 슬슬 덮어 가고 간판의 글씨가 형광 불빛 가운데서 제 모습을 진하게 드러내며 사람들에게 손짓을 하는 시간이었다. 그 남자가 문을 비죽이 열고 내게 씽긋 웃음을 보내더니 커피숍으로 들어와 냉큼 의자에 앉는 것이었다. 손이 열 개라도 모자라는 시간이라 쟁반에 잔을 받쳐들고 종종걸음을 치고는 있었지만 마음은 온통 그 남자에게 쏠려 있었다. 마당에서 애들에게 몰리는 거위모양 허둥대는 내 꼴을 그 남자는 능청스런 웃음을 담은 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남자의 시선 때문에 두 볼에 따끈따끈한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아가씨 셋이서 재잘거리며 들어왔다. 아가씨들은 자리를 잡으려다 말고 마침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그 남자를 보더니 우르르 몰려왔다.
 
스물 너덧쯤 되어 보이는 아가씨들이 그 남자와 한 테이블을 두고 앉자 나는 본능적으로 기둥에 붙어 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 곳에서 나는 한낮의 태양 볕에 시달리다가 어스름해지자 풀기 없는 얼굴을 화장으로 포장하고 있는 듯한 중년 여인을 보았다.
 
“이 집에 분위기가 별론데 민수씨, 여기 자주 와요?”
 
미니스커트 밑으로 드러난 굵은 다리를 까닥거리던 단발머리 아가씨가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아뇨, 앞집이지만 올 일이 있어야죠.”
 
그 남자는 약간 멈칫하는 듯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아니오’ 에 유난히 힘을 주면서 당당하게 말했다. 야시시한 몸매에 얼굴이 해사한 아가씨가 옆에 앉은 그 남자의 코끝에 얼굴을 비비며 나직이 속삭였다.
 
“엄마가 우리 사주를 봤는데 찰떡 궁합이래. 호호호.”
 
옆 탁자를 훔치던 내 손에 잠깐 떨렸다. 그 순간 꽃무늬의 화려한 커피 잔이 시멘트 바닥에 떨어져 산산 조각나고 말았다.
 
“내 참 더러워서...”
 
다소 신경질적인 내 목소리에 그 남자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
 
“이 아주머니가 정말... 주제에 지금 시비 거는 거요?”
 

 


* 출처 : 김은숙의 창작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