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팔기(十八技)는 조선 국기의 정명(正命)이다
- 십팔기의 전승과 복원에 따른 시비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생각 없이 십팔기를 ‘18기’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분명 틀린 표기로서 자기 역사와 문화에 대한 모독이다. ‘십팔기(十八技)’가 열여덟 가지 기예를 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정조에 의해 정명(定名)된 고유명사다. 조선 국기(國技)의 정명(正名)이다. 사람 이름에 ‘三’이 들었다 해서 ‘3순’이나 ‘3식’이라고 쓰지 않고 삼성전자를 ‘3성전자’라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나 ‘6기’ ‘22기’ ‘24기’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수사이니 그게 맞다. 아무렴 필자가 ‘18기’ ‘24기’ 구분할 줄 몰라서 ‘십팔기’를 고집할까. 왕명으로 정해진 제 나라 국기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도 표기하지도 못하면서 ‘전통’이니 ‘무예’니 운운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고 난감한 일이다.
의심(疑心)이 없으면 진리도 학문도 없다 간혹 학문을 ‘學文’으로 알고 있는 이들도 있다. 물론 틀린 건 아니지만 그건 사서삼경이나 육예 등 글자그대로 글을 익히는 것을 말하고 일반적으로 우리가 쓰는 학문이란 말은 한자로 ‘學問’이라 한다. 사전 상으로는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워서 익히는 일. 또는 사물을 탐구하여 이론적으로 체계화된 지식을 세우는 일. 일정한 분야에서 어떤 이론을 토대로 하여 체계화한 지식의 영역을 의미한다.
간단히 말해서 학문(學問)이란 글만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이치를 배우고 묻는 일이다. 혹은 묻는 법을 배운다고 해도 무방하리라. 물으려면 배워야 하고, 생각을 하고, 의문을 가져야 한다. 가르쳐 주는 대로 외우거나 익히기만 하고, 스스로 의문을 가져 묻고 추구하지 않는다면 그건 학문(學問)이 아니라, 그냥 학문(學文)에 해당한다 하겠다. 아무튼 이 학문이나 기술을 익히는 행위를 우리는 ‘공부(工夫)’한다고 한다. 중국말로 ‘쿵푸’다. 요즘 학교에서나 기업 혹은 소모임에 나가 강의할 기회가 많다. 헌데 강의가 끝난 다음 질문을 받을라치면 한참 어색한 정적이 감돈다. 질문 받기 참 어려운 세상이다. 여간 강제하지 않으면 질문이 안 나온다. “궁금한 것 있으면 나중에 인터넷 뒤져보지 뭐!”라는 식이다. 이러니 강사가 중간 중간에 질문을 강요하면 십중팔구 강의평점 형편없이 나온다. 허니 어쩔 수 없이 질문을 던졌다가도 아차, 잠깐 곧바로 강사가 설명으로 답을 대신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어떤 때에는 그 사람들이 도무지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헷갈린다.
학계에서도 치열한 비판과 논쟁이 일어나는 경우가 참으로 드물다. 이 나라에선 매사가 좋은 게 좋다는 식이다. 논문 표절은 습관성이고, 황우석 소동에서도 보듯 도무지 중간에 잘못이 걸러지지 않는다. 괜히 지적했다가는 고맙다는 말은커녕 되레 평생 원수가 되어 언제 뒤통수 맞을지 모른다는 관습적인 생각이 팽배하다. 해서 막가파식으로 우기면 갈 데까지 가는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되었다. 공동체의 건강성이 그래서 상실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질문도 못 하는 그런 사람들이 나중에 보면 세상이나 조직에다 대고 소통이 되니 마니 하는 뒷말은 도맡아서 한다.
‘택견이란 무엇인가?’ 필자는 앞서의 글에서 택견에 대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열거하였다.(택견 무예인인가? 놀이인가?) 아무렴 그런다고 택견인들의 굳은 생각이 바뀔 리 없고, 그에 대한 반론다운 반론, 비판다운 비판이 나올 성 싶지도 않다. 글을 쓰고 나면 인터넷에 이런 저런 비난(?)글이 떠다니는데, 실망스럽게도 대부분 그 글 주제에 대한 논리적인 반박이나 비평이 아닌 필자에 대한 흠집내기 내지는 화풀이 낙서들이다.
‘십팔기가 왜 전통무예인가’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이전에 필자가 쓴 <바른 역사여야 정신이 바로 선다>라는 글에서 답을 찾기 바란다. 지난번 글을 읽고도 택견이 민속놀이가 아니라 전통무예라고 고집한다면 그건 그 분의 신념이 그렇다는 것이니 달리 설명해줄 길이 없다. 이미 자신이 알고 있는 것, 그렇게 마음먹은 것을 번복하기 싫은 게다. 한국인들은 지식을 지식으로 여기지 않고 불변의 진리, 확고부동한 생각으로 여기기 때문에 번복하거나 수정하기를 꺼려하는 고루한 습관이 있다. 그런 걸 굴욕스럽게 여겨 끝까지 우기는 것이 미덕(美德) 혹은 무덕(武德)이라도 되는 양 착각한 때문이다. 과거 외침과 식민지배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으로 인해 승복과 굴복을 구분 못하는 한국인에게 자기부정 내지 수정이란 그만큼 어렵다. 그걸 강요하면 감정적으로 반발하는 졸렬함을 드러낸다. 귀가 얇아 남의 말에 부화뇌동도 잘 하지만, 한 번 그렇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고집하는 습관도 강하다. 선악(善惡)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에 푹 젖어있어 항상 자기가 옳고, 습관적으로 약자나 피해자가 선하다고 생각한다. 학교 교육에서 까칠하고 고집스런 유교적 선비정신을 지조인양 떠받들도록 지나치게 강조한 때문이다. 문화의 다양성, 그리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능력부터 먼저 길러주었어야 했다. 무엇보다 <택견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는 분명 택견의 연원과 원래의 위치를 찾아줬다고 필자는 믿는다. 그걸 인정하기 싫다면 무턱대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반론을 제기하든가, 달리 택견의 족보를 찾아내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그 글은 택견을 폄훼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필자 나름대로 택견에 대한 애정을 쏟아 그 연원을 유추해내었다. 다만 역사적 사실을 유추하다보니 냉정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의 택견인들이 그 역사를 제대로 찾아보지도 않고, 그 연원을 두리뭉실 미화시키는 과정에서 그나마 남아 있는 역사의 흔적을 은폐 혹은 왜곡,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을 나무란 것뿐이다.
왜냐하면 택견은 택견인들만의 것이 아니라, 전통의 민속놀이로서 이 땅에 살아가는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역사적 사실을 넘어서는 과도한 국수주의적 비호는 곤란하다. 누구라도 그걸 바르게 알릴 의무가 있다. 택견인들이 지금의 택견을 가지고 앞으로 어떻게 가공 발전 변형시켜 나갈지는 전적으로 자유다. 허지만 지난 역사 속의 택견을 왜곡시키거나 영업상의 이득을 위해 견강부회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바른 역사 위에 당당하게 택견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필자 나름으로 택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 사이사이에 그에 대한 대안과 방향도 제시했다고 자신한다. 다만 택견인들이 필자가 고의적으로 택견을 비하시킨다는 선입견 혹은 자격지심에서 불편한 감정으로 글을 읽는 바람에 그 행간에 숨겨진 의도를 간과했을 뿐이다. 당연히 이 주장에 대해서 다시 불평할 것이다. 그럼 그 대안을 제시하면 되지 뭣 하러 행간 속에 감춰놓았냐고! 건방지게시리! 허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필자가 질문하고 답하는 꼴이니 말이다. 아무리 필자가 택견을 위해 건전한 대안과 발전적인 방향을 제시해봤자, 잘 하고 있는데 무슨 참견? 너나 잘해라! 오히려 건방지다며 반발할 것은 불문가지. 아무려나 택견계의 지도자들이 진정성을 가지고 토론하잘 리도 없을 터, 택견인 스스로 그걸 찾았으면 한다.
필자가 그동안 무예에 대한 글을 발표하면서 온갖 질문 같지 않은 질문, 비판 같지 않은 비판, 그러니까 거의 비난, 반발, 질투성 항의를 받았다. 정식으로 반론과 비평을 받고 싶지만 그렇질 못했다. 유치한 비판에 대해 차마 일일이 대꾸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지만, 혹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해 전통무예, 십팔기에 대한 오해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비록 구차스럽지만 설명을 하나씩 해나가고자 한다. 무예와 체육, 놀이와 호신용권술을 구분도 못하는 무도체육인들에게 무예를 설명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당장은 이해 못한다 하더라도 언젠가 그들도 무예를 익히고 공부하게 될 것을 염두에 두고 설명하겠다.
용렬함은 무(武)의 정신이 아니다 우선 가장 많은 비판은 필자와 필자의 스승인 해범(海帆) 선생이 과거에 중국무술을 했었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사실이다. 해범 선생이 한 때 중국무술, 아니 중국권법을 가르쳤었다. 헌데 어디 그뿐이랴? 아니다 더 있다. 해범 선생은 중국의 당랑권 소림권은 말 할 것도 없고, 일본의 체술 등 여타 권술이나 기예들도 섭렵했거나 관심을 가졌었다. 허나 그전에 해범 선생은 소싯적부터 문중에서 십팔기를 비롯한 무예일반에 대해 익혔었고 그걸 기반으로 시중의 이런 저런 무술들을 두루 훑었었다. 무예인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는 일이다. 그럼 왜 처음부터 십팔기만을 가르치지 않았는가? 재미있게도 그때는 필자 뿐 아니라 그 누구도 십팔기가 한국 무예라면 배우려 하지 않았다. 그 자세한 과정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함께 별도로 설명할 것이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은 대부분 기억하지 못할 정도지만, 1970년 해범 선생 문하에 들어 한동안 중국권법 10여 개를 익혔었다. 떠벌여 자랑할 일이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부끄러워 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리고 한참 후 철이 좀 들고서야 본격적으로 무기술인 십팔기를 배웠고 또 기공체조를 비롯해 한약학적 지식도 배웠다. 그 외에도 필자 나름으로 간단하지만 무예인으로서 꼭 필요한 침구학, 경락학, 명상, 도인법을 익혔다. 그리고 지금도 다른 무예계 원로들과 교유하며 기예에 대한 담론을 주고받고 있다. 애써 뭘 배우고 가르친다기보다 탐구하는 재미다.
행운이 따랐는지 필자도 이제는 굳이 누구를 스승으로 삼아 직접 배우지 않아도 웬만한 기예는 서너 번 보고도 나름으로 그 원리를 파악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필요한 것은 내 식으로 재해석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하루 저녁이면 권법이든 검법이든 기예 하나쯤은 만들어낼 수도 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무예의 기본적인 이치를 꿰뚫고 나면 반드시 그리 된다. 헌데 필자는 해범 선생 문하에 들기 전에 이미 검도와 합기도를 배웠었다. 그렇다면 필자는 누구인가? 한국인들의 답답한 사고가 하나 있는데, 한 임금을 섬기고, 한 길로만 고집하는 것을 무슨 열녀나 선비의 지조인양 신봉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학문이나 기술을 익히는 것도 오직 한 스승으로부터 하나만 익히고 일생을 바쳐야 그걸 정통파인양 받드는 버릇이 있다. 그것 외에 다른 것을 익히거나 배우는 것을 무작정 경원시하거나 두려워한다. 예로 재야 학자들 중에는 평생을 오직 <주역>만 공부하고서는 자신이 최고라 자부하는 사람이 있다. 그에게 다른 학문은 모조리 하찮은 것일 뿐이다. 판소리를 하는 사람은 오직 판소리를 해야지 다른 대중가요나 클래식 등 다른 노래나 여타 기예를 익혔다간 당장 버린 자식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가령 한번 태권도를 배웠으면 평생 태권도만 익히고, 태권도만을 최고로 알고, 태권도만을 사랑하고, 태권도만을 위해 살되 다른 것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아야 한다는 신념. 오직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살겠다는 지고지순한 일편단심. 이 갸륵하고 기특하고 숭고한 의리. 선비의 나라, 춘향의 후손답다 하겠다. 이런 외골수적이고 결벽증적인 사고가 각 분야에서 만연해 있는데 특히 예능분야가 심하다. 한국인의 이러한 기질을 미덕이라 자랑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만 달리 보면 지극히 옹졸하고 협량한 생각일 수도 있다. 한 가지 기예를 익혔으면 평생 그것만 해야 한다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기나 하던가? 자신이 몸 담았거나 배운 것에 애정과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일이다. 그렇다한들 그 잘못된 혹은 꾸미거나 속인 역사까지도 무턱대고 맹종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기예를 배우러 갔지 굴종하러 간 건 아니지 않은가? 의심도 못하고 배신도 못하는 무슨 깡패조직 같은 건가? 아무렴 무엇을 전공하든 틈나는 대로 사해를 물어 주변 학문과 기예를 두루 배우고 살필 수 있다면 그 아니 좋은 일인가? 그게 권장해야 할 일이지 어찌 금기시할 일이던가? 반대로 남이 자신의 영역에 들어와 허락(?)없이 공부하거나 왈가왈부하게 되면 마치 제 땅 침범당한 양 쌍심지를 켜거나 송곳니를 드러낸다. 기실 남들이 관심 가져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임을 알지 못한다. 뭔가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일이 있는가? 건전한 비판조차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다보니 발전이 어렵고 담장 안에서 자기만족 자아도취에 빠져 저들만의 잔치, 소꿉놀이를 즐기는 게다. 학문의 범위가 넓다고 전공의 깊이가 얕아진다는 착각 고대에도 선비는 육예(六藝)를 고루 배웠다. 지금도 학교에 가면 국어, 영어, 수학, 역사, 과학, 예술, 체육 등등 두루 배운다. 영어선생이라 하여 평생 영어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렇게 많은 과목을 배우고서야 그 중 하나를 잡고 전공을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하나로 성에 차지 않아 부전공을 하기도 하고, 중도에 다른 전공으로 바꾸기도 한다. 국사를 전공한 사람이 일본사, 중국사, 세계사를 공부하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던가? 국사밖에 모르는 선생과 일본사, 중국사, 세계사까지 두루 아는 선생이 있다면 과연 어느 선생에게서 배우고 싶은가? 나아가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 문화나 철학을 공부하면 그의 역사관이 오염되기라도 한단 말인가? 동영철학 전공자가 서양철학을 공부하면 학문이 망가지는가? 한국인이니까 학교에서 국어, 국사, 국악만 배우면 된다는 건가? 필자가 십팔기를 익히기 전후에 검도나 합기도, 중국권법 등등을 익혔다 해서 십팔기를 중국식 혹은 일본식으로 재현했을 거라고 단정하는 것은 한참 모자라고 심지어 가련하기까지 한 착각이다. 그게 십팔기 재현과 수련에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어찌 방해가 되겠는가? 《무예도보통지》를 제대로 한 번 읽어보기라도 했다면 이런 시비가 얼마나 비논리적인 일인지 알 것이다. 그 책에는 십팔기예만 수록한 것이 아니다. 정형화된 열여덟 종목 외에 안(案)편에 소림사 곤법(棍法)을 포함하여 통비권(通臂拳), 육로(六路), 십단금(十段錦) 등 여타 수많은 기예들을 망라해놓았다. 이 역시 세계사에 전례가 없던 일로 동양무예의 백과전서라 해도 손색이 없다. 십팔기만 설명하면 되었지 뭣 하러 쓸데없이 당장 써먹지도 않을 기예들을 주워모았나? 아무렴 조정에서 책값 비싸게 받으려고 그 고생하며 두툼하게 만들었겠나?
왜, 박제가, 이덕무 등 당시 조선 최고의 실학자들이 십팔기 이외의 중국의 기예들을 《무예도보통지》에 잔뜩 실어놓았을까? 임란 때 선조가 평양성에서 대승을 거둔 이여송을 치하하는 연회에서 중국 척계광의 병서 《기효신서》를 보여 달라고 애걸해도 비밀이라며 보여주지 않는다. 해서 몰래 역관을 시켜 빼내어왔는데, 아뿔사! 조선에는 그 책에 실린 기예를 해독해낼 줄 아는 인물이 없었다. 하여 어찌어찌 부탁해서 중국군 참장 낙상지 휘하에 날랜 조선 군사 70명을 들여보내 직접 전습해 나와 조선군에 그 기예를 보급했었다. 이런 부끄러운 이야기까지 《무예도보통지》 <병기총서(兵技總敍)>편에 하나도 빠짐없이 고스란히 기록해 놓았다. 그게 학문하는 올바른 자세다. 무학(武學)이란 나라를 지키는 과학이지, 고루하게 어느 개인이나 가문의 지조나 체면을 지키고자 하는 현학(玄學)이 아니다. 임란 당시 조선에서도 나름의 전통적인 무예와 그것을 다루는 장수들이 없었을 리 만무하지만 무학(武學)에 조예가 있는 학자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당시 조정은 천하의 기예에 두루 능통해야 함을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해서 기왕지사 한, 중, 일 기예에 대한 온갖 자료들도 모아 함께 집대성한 것이다. 그게 바로 세계 유일의 종합병장무예서 《무예도보통지》이다. 그런 것들을 그만큼 귀중하게 여겨 참고했었다는 뜻이다.
정해진 열여덟 종목 외에 다른 기예들도 할 수만 있다면 익혀서 십팔기 구현 발전에 도움이 되라고 실어놓은 것이다. 따라서 십팔기를 재현하는 데에 있어 중국 및 일본의 기예에 밝은 것이 도움이 될 일이지 어찌 그로 인해 왜곡될 것이라고만 단정하는가? 그게 얼마나 시야 좁은 부끄러운 질문인지 알기나 하는가? 책을 보면서 그 행간에 숨겨져 있는 의미(의도)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면 헛공부한 거다.
‘무예’를 입에 담기 전에 역사의식부터 바로 가져야 다시 철없는 항변이 이어질 것이다. 어쨌든 해범 선생이 전승이 아니라 중국무술로 십팔기를 복원한 것 아니냐? 오공(晤空) 선생이 해범 선생에게 십팔기 전 종목을 《무예도보통지》를 펼쳐놓고 하나하나 가르친 건 아니다. 당시에는 그런 책이 있는 줄도 몰랐었단다. 그렇지만 창, 검, 권법 등 주요 종목을 가르치면서 십팔기라 하였고, 기예와 수행 전반의 원리적인 이치를 가르쳐 주었다. 물론 어렸을 적 일인 데다가 열악한 환경에서 너무 많은 것을 전습하는 바람에 상당 부분 정확히 기억해내지 못했던 것도 있었다. 훗날 《무예도보통지》를 구해 보고서야 그때 배웠던 십팔기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 어렵사리 재현해내었고, 일부 종목은 오공선생으로부터 배우지 않았지만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니어서 그동안 축적된 무학(武學)으로 쉬이 복원하기도 했다. 어렸을 적 일을 백 프로 다 기억할 수는 없었지만, 일평생 무예를 연구하다보니 더 많은 무학(武學)이 보태어져 십팔기를 재현하는 데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당연히 어떤 부분은 그때 배운 것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재현해 놓기기도 했다. 전승이든 복원이든 십팔기 재현에서 어느 수준까지 끌어올리는가 하는 문제는 초보 무학자의 상상으로는 가늠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똑같은 기예를 복원한다 해도 그 사람의 무학(武學)의 수준에 따라 천양지차가 나게 마련이다. 이는 사소한 일 같지만 무학의 세계에서는 지대하게 중요한 일이다. 종이 한 장의 차이라도 사람의 목숨과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수와 고수의 차이처럼 무학 역시 천차만별. 단언컨대 해범 선생이 전승 복원하여 재현해 놓은 작금의 십팔기는 최상의 수준이라 장담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제대로 이해할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무예의 이치를 깨달을 수준이 되면 남의 무예를 익힌다 하여 자기 것을 훼손시키는 일은 없다. 음악을 예로 들면, 어떤 가락이 있으면 때로는 다른 가사를 대입시켜 부를 수도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똑같은 노래도 얼마든지 다른 풍으로 부를 수 있는 것처럼. 같은 소고기를 가지고 각 나라 요리사들이 자신의 고유한 방식으로 요리하는 것과도 같은 이치이다. 혹여 한식 요리사가 중국식이나 양식 요리법을 배웠다고 해서 한식과 그것들을 구분 못하는 바보는 없다. 발레리나나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태극권을 익히면 큰일이라도 난다던가? 그럴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사람이 진짜 바보다. 해범 선생의 제자들이 중국 당랑권법을 익히고 십팔기를 재현하고 있으니, 당연히 지금 십팔기는 중국 당랑식일 것이다? 허나 십팔기에는 권법이 하나 밖에 없다. 나머지 17 가지 무기 종목은 어찌 설명해야 하는가? 당랑권법이 무슨 신비한 권술이기에 그런 온갖 무기술까지 다 복원해낸다던가? 무기술은 차치하고라도 중국의 당랑권 고수들이 《무예도보통지》를 보고 십팔기의 <권법>만이라도 복원해낼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동작이 지금 해범식과 똑 같을까? 장담컨대 직접 가르쳐도 소화해내지 못한다. 그만큼 그 원리와 특징이 다르다.
무학(武學)을 겸한 고수라면 똑같은 권법 하나를 두고도 당랑식, 팔쾌장식, 소림식, 태극권식, 태권도식, 절권도식, 십팔기식으로 풀어낼 줄도 알아야 한다. 당연히 각 문파의 특징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 이치도 모르고 무턱대고 남을 따라하다간 이도저도 아닌 것이 되고 말아 아까운 재료만 낭비하고 만다. 예전에 해범 선생이 똑같은 중국권법을 가르쳤어도 다른 중국무술인들의 그것과 모양새가 전혀 달랐던 이유가 바로 그 권법들을 해범식, 즉 십팔기식으로 풀어 가르쳤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중국무술을 익혔기 때문에 그걸로 십팔기를 복원한 것이 아니라, 십팔기를 익혔기 때문에 여타 다른 기예들을 아무 어려움 없이 소화해 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십팔기 자체가 종합병장무예이기 때문이다. 하여 해범 선생의 제자들이 소림권, 당랑권, 태극권은 물론 온갖 기예들을 몇 번 보기만 해도 똑같이 해내는 것이다. 그러지 못한다면 아직 십팔기 제대로 배웠다고 할 수 없다. 헌데 그 반대로 다른 기예를 익힌 사람들은 십팔기를 소화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훗날 보다 근원적인 이치를 논할 기회가 오면 설명하겠지만, 여기까지 이해가 안 되는 분들은 당장 부정하지 말고, 이해 안 되는 그대로 두길 바란다. 나중에 무예 공부가 좀 성취되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 가능성까지 미리 차단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중국무술로 십팔기를 복원할 수 있나? 얼마 전 무도계의 원로와 검법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는 자리에서 몇 가지 이치를 설명한 적이 있다. 도무지 칼자루에서 한 손 떼는 것조차 벌벌 떠니 설명해주는 것조차 답답했었다. 그 나이 되도록 칼은 두 손으로 꼭 쥐어야지 한 손이라도 놓으면 큰일 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안쓰러울 수밖에. 평생 기역 니은 디귿만 긋다가 문장 한 줄, 시(詩) 한 수 외워서 베껴 써본 적이 없으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노래 배운다면서 평생 발성법만 연습한 꼴이다. 원래 체육무도가 그런 것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역시나 그 분도 해범 선생이 십팔기 검법을 자기식대로 복원한 것 아니냐고 했었다. 평생을 검법을 익혔다는 원로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을 보고 하물며 다른 사람들이야 오죽 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이에 대해 설명한다. 해범 선생이 중국권법 몇 개로 십팔기를 복원했을 것이다? 천만에! 만약 그랬다면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더 위대하다고 추앙받을 일이지 비난받을 일이 아니지 않은가? 한국에 시집온 외국인 며느리가 빚은 송편은 우리 떡이 아닌가? 또 수입산 쌀로 만들었다 해서 가짜 송편이라 할 텐가? 누가 어디에서 만들든 송편은 송편인 게다. 어느 나라 누가 복원한다 해도 십팔기는 십팔기인 게다. 그렇다한들 쌀만 가지고 온갖 떡을 다 만들어낼 수는 없는 일. 아무리 권법이 입예(入藝)의 문이라 해도 그것만으로 모든 병장무예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식혜, 엿, 한과, 막걸리도 빚으려면 다른 수많은 재료와 그에 따른 전승 기술이 보태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비록 무예에 비할 바 없는 성취를 이룬 해범 선생이지만 하늘에서 떨어진 천재는 아니다. 인류 역사에 그런 천재는 단 한 번도 나온 적 없다. 그게 가능하다면 《무예도보통지》를 지금의 중국의 권법 대가들도 당장 그 자리에서 복원, 재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 그동안 해범 선생 외에도 중국무술을 익힌 무술인들이 많았다. 그들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십팔기를 복원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대단히 미안하지만 천하의 무술인들을 한 자리에 모아 십팔기를 복원시킨다한들 절반도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이라 필자가 감히 장담할 수 있다. 한국 검도계에서 십팔기 중 <예도>와 <조선세법>, <본국검>을 복원해내겠다고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아무튼 1987년 해범 선생이 민속학자 심우성 선생의 성화로 《무예도보통지 실기해제》를 펴내고서야 너도 나도 십팔기를 복원했다고 나서기 시작했다. 그동안 어디서 뭘 하다가 갑자기 나타난 것일까? 너무 깊은 산골짜기에 숨어 있다가 해방된 줄도 몰랐었던가? 그전에 십팔기가 우리 무예인 줄 알기나 했던가? 중국무술에 달통하면 누구나 십팔기를 복원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럴 것 같으면 그냥 계속해서 중국무술 익히면 그만이지 굳이 십팔기를 복원한다고 애쓸 필요가 없지 않은가? 전승 없이 혼자 십팔기를 제대로 복원해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얘기지만, 그래서는 열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단 한 종목도 제대로 복원하지 못한다.
문화엔 종주국도 없고 독점도 없다 십팔기가 이 땅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중 명군이 가져온 척계광의 절강병법 《기효신서》에 실린 <권법>을 포함한 7가지의 기예들에서부터였다. 비록 그렇다 해도 그 후 2백여 년에 걸쳐 조선군의 기예로 체계화 되는 과정에서 우리 실정에 맞게 다듬어졌다. 하여 차츰 중국의 그것과는 다른 지금의 총보(總譜) 형태로 발전되었고, 그 외에도 전래의 우리 무예와 여타의 중국, 일본 기법(技法)들이 녹아들어가거나 참고 되어 최종적으로 18개의 기예로 완성되었다. 여기에는 <기창(旗槍)>과 같이 다른 나라에선 유례가 없는 십팔기만의 독창적인 기예들도 있다.
당연히 중국 일본 천지를 다 뒤져도 십팔기의 그것과 똑같은 기예는 단 한 종목도 찾을 수 없다. 그러니 척계광이나 명군(明軍)이 다시 온다 해도 지금의 십팔기를 재현해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현재의 중국무술가들이 《기효신서》의 7가지 기예들만을 복원한다 해도 십팔기의 그것과 똑같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마저도 십팔기의 도움 없이는 예전대로 복원해내었다고 자신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비록 《기효신서》가 남아있다하나 그 실기가 중국에서는 이미 실전된 지 오래고, 오직 십팔기에만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창이나 칼 등 병장무기들을 휘두르면 무조건 중국무술이라는 잘못된 선입관 때문에 십팔기를 허접한 중국무술로 단정해버리는 것이다. 그런 논리라면 한자(漢字)로 지은 조상들의 한시(漢詩)는 한시(韓詩)가 아니라 모조리 중국시(中國詩)라 해야 하지 않은가? 비록 외래의 기예가 들어있다 한들 그조차도 우리 것이 아닐 수는 없다. 더구나 십팔기에는 <본국검>과 같은 천년 전래의 기예들까지 모조리 체계화시켜 편입시켰다. 호신용이 아닌 하나같이 피를 바쳐 만들어진 나라를 지키던 실전기예들이다.
이게 전통무예가 아니면 이 땅에 그 무엇이 전통문화이든가? 그러고도 팔만대장경, 동의보감, 종묘제례, 강릉단오제를 한국의 전통문화라 할 수 있는가? 부끄럽게도 사대사관 내지는 식민사관이 아직 곳곳에 만연해 있지만 가장 심한 곳이 바로 무예계가 아닌가 한다. 세계 유일할 뿐 아니라 동양무예의 정화로서 가장 완벽한 고대종합병장무예를 가지고도 그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으니 이런 한심한 민족이 어디 또 있을까? 역사에서 자신의 무예가 있었음을 가르치지 못한 탓이다.
기록만으론 완벽한 전승 어려워 물론 십팔기 각각의 세명(勢名) 중에는 중국무술에서도 그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세명을 찾을 수 있는 것들이 꽤 있다. 하여 무학(武學)에 밝은 사람이면 그를 참조하여 비슷한 동작을 유추해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도무지 중국의 그 어떤 기예에서도 나오지 않는 십팔기에서만의 독특한 세명들이 적지 않은데, 특히 <조선세법 24세>와 <본국검>에 그러한 세(勢)가 많다. 이런 세법들은 중국의 무술 대가들 다 모아도 재현 못해낸다. 전승이 아니면 재현 불가능한 세법들이다. 그걸 누가 어떻게 증명하느냐? 다 방법이 있다. 나중에 달리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해서 십팔기를 나름대로 복원했다거나 그걸 배운 상당수의 무예인들이 처음에는 자기들 식대로 해보다가 차츰 해범 선생이 재현해 놓은 법식을 따르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실제 해보니 해범식이 맞으니까 그런 것이다. 물론 직접 듣고 배우질 않고 해범 선생이 지은 책과 십팔기보존회 시범단의 공연 영상을 보고 복원(?)했기 때문에 동작은 거의 유사하게 따라 하지만 그 이치는 제대로 알 턱이 없다. 십팔기를 제대로 배운 고수라면 척 보면 안다. 그런 차이점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아직 각 세(勢)의 의미도 모르고 흉내만 내는 하수다. 직접 설명 들으며 이치를 배우지 않으면 평생을 익혀도 그런 안목이 안 생긴다. 그 이유 또한 나중 기회에 설명할 것이다. 당연히 해범식을 흉내 내고서도 스스로 복원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허나 본인이 아무리 주장해도 어림없는 거짓이다. 직접 대면해서 한 세만 설명해줘도 그 자리에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왜냐? 《무예도보통지》의 몇 글자 되지 않는 간단한 동작설명만으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움직임이 부지기수이고, 특히 세(勢)와 세(勢)를 연결하는 무기의 동선은 《무예도보통지》에도 자세한 설명이 없을뿐더러 그 길이 꼭 하나만 있는 게 아니고 여러 갈래가 있음도 알지 못하고 무턱대고 해범식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자리에서 당사자의 무학(武學) 수준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기도 한다.
같은 세(勢), 같은 동선이라도 각 문파마다 그 수준과 맵시[風]가 다르기 때문에 금방 드러난다. 이치를 모르고 흉내 내다보니 굳이 따라하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말이다. 하여 집안에서 비전되어왔다거나 스스로 복원했다고 주장하지만 흉내 내었음을 감추진 못한다. 하긴 그 같은 따라하기도 따지고 보면 전승이라 할 수 있겠다. 비록 간접 전승이긴 하지만 엉터리로 복원한 이들보다는 훨씬 잘 하고 있다. 그렇게라도 열심히 익히다보면 언젠가는 스스로 물리를 틀 날이 올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직접 전습 받았는지 아니면 간접적으로 전습 받았는지는 숨기질 못한다. 물론 그 이유를 본인들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다. 사실 《무예도보통지》가 아무리 글과 그림으로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문외한이나 여타 무술 고수라 해도 실제 그 기예를 익히지 않은 채 책만 보고서 재현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기효신서》 등 다른 무예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그 문중에서 그 기예를 익혔던 사람들이라면 설사 너무 오래되어 잊어먹었다 해도 그 가결이나 책을 보면 금방 기억이 나서 재현해내는 것이 어렵지 않다. 몸으로 전해지는 기예의 전승이란 그런 것이다. 전승이냐 복원이냐는 그처럼 엄청난 차이를 가진다. 송편을 먹어본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이 빚은 송편이 비록 모양은 같을 수 있어도 그 맛까지 같을 것이라고는 장담 못하는 것처럼. 구전심수(口傳心授)가 아니면 그 정수(精髓)를 전하기 불가한 것이 무예다. 스포츠적 발상으론 무예를 이해하기 힘들다 현대의 스포츠(무도체육)는 고대 무예의 일부 기술을 놀이[戱]화한 것들이 많다. 하여 일정한 규칙 아래 살상의 위험이 없는 제한된 동작으로 겨루고 즐기게 된다. 해서 규정 외에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 있다 해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때문에 자연히 다른 기예나 종목에 대해 배타성 내지는 차별성을 지니려 하게 되고, 자기 방식만을 고집하는 버릇이 생기게 된다. 바로 그것이 무예와 다른 점이다. 양궁과 국궁, 공놀이라 해도 배구, 축구, 농구가 서로 같이 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렇다한들 군인이라고 총만 쏘고, 양궁선수가 활만 쏘며, 수영선수가 허구한 날 물속에서만 연습하고, 골프선수 역시 공만 치는 것이 아니다. 달리기, 웨이트 트레이닝, 체조, 스트레칭 등등 실전과 상관없는 온갖 신체단련을 한다. 어떤 것들은 종목에 상관없이 만국의 운동선수들이 공통적으로 하고 있다. 이런 보조적인 단련은 하루도 빠지지 않는다. 거기에는 전래의 방법도 많지만 새로 개발된 기술들도 수없이 많다. 과거에 해범 선생이 중국권법과 그 기본동작을 가르쳤고 지금도 십팔기인들이 그것들을 수용하고 있다하여 십팔기를 중국무술식으로 복원한 것 아니냐는 주장은 무예는 고사하고 체육의 기본도 모르는 유아기적 발상이다.
어찌 그 몇 가지 중국권법 뿐이겠는가? 북창(北窓) 선생의 오금희, 더하여 해법 선생이 직접 창안한 도인법, 권법, 곤법, 도법 등 더 많은 것들을 기초적으로 익히고 있다. 중국권법이든 십팔기 권법이든 공히 병장기예를 위한 입예지문(入藝之門)일 뿐이다. 기본적인 자세와 발차기, 주먹 찌르기가 두 발, 두 손 달린 인간으로서 굳이 서로 다를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어떤 운용 방식이 더 과학적이며 자신의 무예 숙련에 보탬이 되는가 하는 것이 문제다. 그런 것을 무조건 마다하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 것들은 오히려 명가(名家)의 필수조건에 해당된다. 이런 기초적인 법식들은 십팔기뿐 아니라 여타 중국무술이나 호신체육에서 가져가더라도 엄청난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그 기본동작이란 게 반드시 중국무술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십팔기 <권법> 을 한 세씩 세세하게 분해하면 현재 중국무술가에서 익히는 기본자세와 단권(單券)이 다 나온다. 기본 줄기는 결국 대동소이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물론 그 단권을 따로 익히지 않는다 하여 십팔기를 재현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효율성과 수준에서 상당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 수준에 따라 십팔기예에 내포된 기능을 십분 발휘해내느냐, 그렇지 못하고 사분 내지는 오분 정도밖에 못해내느냐의 차이가 난다. 직접 전습 받지 못했거나 기본을 갖추지 못한 자가 혼자 일생을 바친다 해도 그 일분만큼도 끌어올리기 어렵다. 그게 무예다.
오랜 세월동안 동양의 수많은 무인들이 수련하다보니 그것들이 가장 기본적이고 정석이 되는 것으로 증명된 것이기에 어느 문파를 막론하고 기초 체력 훈련하듯 공통적으로 익히는 것뿐이다. 이를 굳이 국수적으로 해석하여 달리 하겠다면 말릴 이유는 없겠으나 참으로 어리석다 하겠다. 이미 미사일을 개발해놓은 기술이 있는데도 우리 기술이 아니라 하여 이를 버리고, 재래식 방식을 고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못난 짓이다. 한국축구가 외국의 새로 개발된 효과적인 보조훈련법을 마다하고 예전 한국식으로만 훈련하겠다고 고집하는 꼴이다. 육상이 모든 스포츠의 기본이듯 권법 역시 무예의 기본에 해당된다. 누천년 선인들의 경험적 지혜를 애써 모른 척하는 것이야말로 무지거나 가식이다. 어떤 방법이든 자신의 기예 수준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면 옛것이든 새것이든 마다할 이유 없지 않은가. 그만 일로 자신의 기예를 잃거나 변질될 걸로 염려된다면 그는 아직 무예 일반은 고사하고 자신의 기예에 대한 원리조차 제대로 깨치지 못했다고 보면 틀림없다. 본국검 한 종목을 전습하더라도 그 대상에 따라 배우고 가르치는 수준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일반병졸, 무과시험, 장교급, 별기군 등 그 수준이 똑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스스로를 무예인으로 자처한다면 그 수준을 가늠할 줄 아는 안목 또한 생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무예 전반에 대한 많은 지식을 쌓아 그것들을 비교분석해나가야 한다. 그게 전문가다. 술(術), 기(技)를 넘어 예(藝), 학(學)의 길로 《홍루몽》에 “한 가지 일을 경험하지 않으면, 한 가지 지혜가 늘지 않는다(不經一事 不長一智)”고 했다. 하나만 익혀 하나밖에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그것이 최고인줄 안다. 해서 둘, 혹은 셋을 익힌 사람더러 엉터리라 한다. 결국 넓은 세상에 태어났으면서도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좁은 식견으로 살다간다. 평생 우물 밖을 나가본 적이 없으니 산이니, 강이니, 바다니 말해줘 봐야 무슨 소린지 알 턱이 없다. 무예세계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스포츠화 된 체육무도 단일 종목만을 익힌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런 경향이 심하다.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우월한 기예는 없다. 무기든 그 기예든 상대적 우월만 있을 뿐이다. 활만 잘 쏘면 나라 지킬 수 있는 줄 착각했던 조선이 임진왜란 때 왜놈들에게 그토록 당하고서야 종합적인 병장무예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다. 이후 조선 군제는 포수(砲手), 사수(射手), 살수(殺手)의 삼수병제로 운용된다. 그 살수가 바로 십팔기군이다. 다시 십팔기에 능숙해지면 능기군(能技軍)이라 불려지고, 별나게 잘하면 별기군(別技軍)에 들어갈 수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별기군이 아닌 다음에야 일반 병사들이 십팔기 전 종목을 다 익힐 수 없었을 뿐더러 굳이 그럴 이유도 없었다. <권법> <곤봉> <쌍수도> 등 기본적인 것이야 누구나 익혔겠지만, 그 후에는 <장창> <월도> <등패> 등등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것을 주 종목으로 익혀 전투를 준비했었다.
지금 세상에는 수많은 무예, 호신술, 놀이(스포츠)가 널려 있다. 그렇다한들 모두가 그 중 가장 뛰어난 종목을 선택할 일만은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고르면 된다. 다만 그렇다고 그것이 최고라거나 그 이상은 필요치 않다는 단정적 생각을 가질 것까진 없다. 그 기예가 생각보다 저급한 것일 수도 있고 그 스승 또한 훌륭한 사람이 못될 지도 모른다. 진실됨도 좋지만 그깟 기예 좀 가르치고 배운다고 무작정 종속적이고 맹목적인 관계를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 자칫 편견, 선입견, 고정관념에 빠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똑같은 기예라도 그 수준은 천양지차가 날 수 있다. 기회가 닿는다면 다른 무예들도 살펴보고 보다 나은 기술들을 익혀 자신의 것을 개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게 무(武)의 정신이다. 개인적인 취미로 익히는 운동이라면 굳이 그 가치나 수준, 역사를 따지고 들 필요까진 없을 것이다. 하찮고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좋아하고, 거창한 다른 어떤 것보다 자신에게 소중하면 그만이다. 허나 그에 만족하지 않고 무예를 보다 깊이 연구하겠다고 한다면, 너나 나나 똑같이 정해진 어느 기예의 숙달된 정도에 따라 몇 단이니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무학(武學)의 세계가 있음을 염두에 두고 무엇을 익혀나가라는 거다.
천하는 무예의 바다다. 진정성만 가진다면 누구든 무한히 많은 지식과 지혜를 건질 수 있다. 그저 어떤 한 가지 재주를 일평생 숙달시켜 도통하겠다거나, 반대로 온갖 것을 익혀 수십 단을 자랑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무예의 원리를 깨우쳐 나가려는 탐구 정신을 가져야 한다. 그게 배울 학(學), 물을 문(問)의 진정한 의미이다. 그게 공부(工夫)다. 필자를 비난할 그 여력으로 십팔기 한 종목이라도 배워가거나 흉내 내어보길 바란다. 내친 김에 《무예도보통지》도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그 책은 동양 전통무예의 보고(寶庫)다. 무예도 열린 마음이어야 공부 제대로 할 수 있다. 혹여 알겠는가, 훗날 해범 선생을 뛰어넘는 훌륭한 대가가 나와 십팔기를 지금보다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켜 놓을지.
[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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