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동아리] 이웃사촌 모인 ‘가곡교실’
# 합창소리 온동네 가득…‘행복 삶터’ 우리가 가꾸죠
싱그러운 녹색 숲에서 아름다운 하모니가 흐른다. 산책하던 사람들이 귀를 기울인다. 삶의 즐거움을 노래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주부의 입에서 아름다운 가곡이 흘러나오면 가정이 평온해진다. 대구 수성구 범어동 두산위브더제니스 입주민이 모여 ‘아름다운 가곡교실’을 열고 있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범어동 두산위브더제니스. 매주 목요일 저녁이면 아파트단지 내 ‘연회장’에서 귀에 익은 한국가곡이 흐른다. 가곡교실 회원들의 노래소리다. 청아한 목소리는 아파트 한가운데 있는 ‘아젤리아 정원’까지 잔잔하게 퍼져 나간다. ‘제니스 가곡교실’은 지난 2월 문을 열었다.
아파트 입주민 중 여성 모임인 ‘제니스 우먼 아트피아’ (회장 이창주) 회원들의 피땀 어린 결실이다. 연회장에 피아노를 마련하고, 이명진 씨를 단장으로 모셨다. 이 단장은 지난해 우봉아트홀에서 ‘내 마음의 노래’란 칠순기념 개인 독창회를 할 정도로 실력있는 아마추어 성악가다. 이 단장은 “회원들의 열정이 정말 뜨겁고 진실하다”며 “모두 함께 가곡을 배우면서 멋진 이웃이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애초 제니스 가곡교실의 정원은 40명 정도로 계획됐다. 그러나 모집 공고가 나가자 70여 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제니스 우먼 아트피아’ 이 회장은 “여성 회원들이 입주민의 문화 마인드를 향상하자는 목적으로 시작했는데 뜻밖에 반응이 뜨거웠다”고 했다.
가곡교실 회원에는 나이와 남녀 구분이 없다. 입주민이면 누구나 환영이다. 이상진(치과의사), 권혜원 씨 등 부부 회원도 4팀이나 된다. 지도는 성악가 조우석 씨에게 부탁했다. 회원들은 요즘 한창 노래하는 기쁨을 느끼고 있다. 직장일과 사업 등으로 바쁘지만, 가곡교실이 열리는 목요일 저녁엔 모든 약속을 미루고 급하게 뛰어온다.
회원인 박천익(대구대 경상대학 교수) 씨는 “당초 음대를 가고 싶었지만 완고하신 부친의 반대로 성악가의 꿈을 접었었다”며 “지금이라도 예술대에 진학해 정식으로 성악을 배우고 싶은 심경”이라고 밝혔다. 장명숙(씨티은행 수성지점 지점장) 씨는 “고교 때 배운 정든 가곡들을 생활이 바쁘다는 이유로 잊고 지냈다”며 “다시 노래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오영연 부회장은 “이곳에서 처음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경험을 했다”며 “가곡을 부르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이제는 집에서도 곡을 흥얼거리는 나를 발견한다”고 했다. 이승욱(공인중개사) 씨는 “평소 부르고 싶었던 노래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라며 “멋있는 인생을 살려면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 한두 가지쯤은 열심히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인숙(대구가톨릭대 강의전담 교수) 씨는 “언제나 학생들에게 잔소리만 해왔던 제 입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흘러나올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박성임(영남대병원 약사) 씨도 “학창시절엔 무심하게 흘려들었던 우리 가곡의 가사가 이젠 심오하게 가슴을 파고든다”며 “노래를 부르니 자연이 아름다워 보인다”고 했다. 은영숙 씨는 “결혼 전부터 늘 노래에 관심이 많았다”며 “아파트에서 이웃과 함께 즐겁게 가곡을 부를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 단장은 “회원들이 노래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행복해한다”며 “열심히 연습해서 연말쯤 온 가족을 초청해서 발표회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단원들은 가끔 연습실인 연회장을 벗어나 아파트 내 아름다운 ‘아젤리아 정원’으로 진출한다. 울창한 숲 속에서 새소리와 함께한 황진이의 시 ‘꿈’(김성태 곡)의 가사가 마음을 적신다.
“꿈길 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그 임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 ♬ 꿈길 따라 그 임을 만나러 가니… 길 떠났네.”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이홍섭기자 hslee@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