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부인 미셸 여사와 미국의 현충일인 28일 워싱턴의 ‘베트남전 참전용사 메모리얼’을 방문해 한 전사자 부인의 어깨를 위로하듯 감싸 안으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이날 텍사스 주 선시티 참전용사 메모리얼에서 열린 추모행사에 참석한 베트남전 참전 노병들이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 워싱턴·선시티=AP 연합뉴스
“베트남전 참전용사 여러분 자리에서 일어나 주세요. 전장에서 돌아온 여느 병사들에게 건넸던 인사를 이제 드리려고 합니다. 웰컴 홈(박수), 웰컴 홈, 웰컴 홈.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복무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웰컴 홈(박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따뜻한 이 말에 50년 전 베트남에서 싸웠던 노병들은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최고 군통수권자로부터 ‘웰컴 홈’이라는 따뜻한 인사말을 들은 이들은 그동안 조국에 가졌던 섭섭한 묵은 감정도 눈 녹듯 풀린 듯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달라는 갑작스러운 제안에 처음엔 서로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다 하나둘씩 일어났다. 이들을 격려하는 수천 명의 뜨거운 박수소리가 한참 동안 울려 퍼졌다. 미국 현충일인 ‘메모리얼 데이’인 28일 오후 1시 20분, 워싱턴 시내 국립공원인 내셔널몰 안에 있는 ‘베트남전 참전용사 메모리얼’에서는 이처럼 뜻 깊은 추모 행사가 열렸다.
1962년 발발한 베트남전 50주년을 맞는 이날 행사에는 오바마 대통령 부부,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 부부를 비롯해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과 마틴 뎀프시 합참의장 등 군 수뇌부와 켄 살라사르 내무장관, 레이 러후드 교통장관, 에릭 신세키 보훈장관 등 행정부 장관이 대부분 참석했다.
전사자 5만8000여 명의 명단이 검은 대리석에 빼곡하게 새겨진 ‘추모의 벽’ 앞에 선 오바마 대통령의 이날 연설은 ‘베트남전 역사 바로 세우기’가 주제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앞으로 13년 동안 베트남전 바로 알리기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행정명령도 이날 내렸다. 당시 반전 분위기에 휩싸여 제대로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던 참전용사들을 위해 이제는 조국이 나서야 할 때라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에서 “여러분이 전장에서 귀환했을 당시 환영받지 못했던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경멸이나 비방도 감수해야 했다. 이런 일은 국가적인 수치이고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될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기록을 바로잡는 것은 오늘부터 시작될 것”이라며 “역사는 여러분의 참전을 기릴 것이고 여러분의 이름은 역사에 오래 남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전용사와 가족들은 환호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일부 국민이 여러분에게 등을 돌릴 때조차 여러분은 결코 조국을 버리지 않았다. 이제는 나라가 여러분을 위해 있어야 한다”며 참전용사들의 일자리 창출과 건강보험 혜택 및 재교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또 “애국심을 정치적 무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전쟁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군을 지지하는 데 단합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엄숙한 의무이다”라고 강조했다.
1962년 1월 미군 헬리콥터가 남베트남군과 미군들을 태우고 베트남 정글로 향했을 때 오바마 대통령은 태어난 지 갓 5개월 된 갓난아기였다. 이날 행사는 전쟁 당시 태어난 첫 미국 대통령으로서, 또 반전 분위기에 휩싸인 진보주의적 역사관에 의해 오욕의 역사로 낙인찍힌 베트남전에 대해 진보 성향의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이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베트남전 역사 바로 세우기 프로젝트는 순차적으로 3단계로 진행된다. 이날을 시작으로 2014년까지 전국에서 1만 명의 베트남전 참전용사 후원자 모집에 들어가며 2014∼2017년 참전용사가 있는 전국 각지 마을과 미국 내 군기지에서 수만 건의 기념행사가 열린다. 또 2025년까지 참전용사들의 유훈을 기리기 위해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베트남전 역사 구술과 세미나, 포럼을 열 방침이다. 또 베트남전 메모리얼 개관 30주년을 맞아 참전용사들의 편지와 가족들의 사연, 전사자 5만8000여 명의 사진을 담아 보관하는 교육관을 따로 개설한다.
이날 행사 마지막엔 베트남전 때 사용된 치누크 헬기와 B-52 폭격기 4대가 행사장 상공을 비행하며 전사자들의 넋을 기렸다. 섭씨 32도를 웃도는 뜨거운 날씨에도 오후 1시 20분부터 2시간가량 이어진 행사에서 참석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Memorial Day remembers those who died serving the United States military. ©iStockphoto.com/ Alan Crosthwa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