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카에다의 콸라룸푸르 頂上회의
법정에 제출된 KSM의 진술요지(I)에 콸라룸푸르 회의가 나온다. <2000년 1월 할라드, 아부 바라, 하즈미 세 사람이 파키스탄의 카라치로부터, 미드할은 예멘으로부터 말레이시아 수도 콸라룸푸르에 도착, 회동하였다. 할라드와 아부 바라의 임무는 미국 국적 여객기의 보안태세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이 시점에서 위의 네 사람은 殉敎(순교)하기 위하여 자원한 상태였다. 구체적인 임무는 몰랐지만 할라드와 아부 바라는 동아시아 작전에, 미드할과 하즈미는 미국 작전에 투입될 것이란 정도는 알았을 것이다> 이 진술요지는 부분적인 것이다. 9·11 테러 이후에 全貌(전모)가 드러난 알 카에다의 이 콸라룸푸르 회의는 ‘알 카에다의 頂上(정상)회담’으로 불린다. 아프가니스탄에 본부를 둔 알 카에다와 동남아시아 회교국가권의 이슬람 테러조직이 연대하여 일을 꾸민 것이다. 이 회의를 주재한 것은 KSM이었다. 말레이시아 정보당국은 1월5~8일 사이 콘도에서 이뤄진 이 회의를 감시하고 참석자들 사진도 찍었다. 이 자료를 미국 CIA에 제공하였으나 CIA는 회의의 중요성을 看過(간과)하여 9·11 테러를 사전에 막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참석자들은 12 명 이상이었고 國籍(국적)은 이집트, 파키스탄, 사우디, 예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이었다. 이 회의에 참석하였던 인도네시아인 함발리는 JI(제마 이슬라미야)라는 테러조직의 두목이었다. 그는 알 카에다와 협력하여 동남아시아에 이슬람 원리주의 정부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KSM은 9·11 테러 이후 전개될 後續(후속) 테러에 함발리의 조직을 참여시킬 계획이었다고 한다. 함발리는 2000년 여름 별도로 싱가포르에 있는 미군기지에 대한 自爆(자폭)테러를 계획하여 알 카에다의 군사부장 아부 합스에게 건의하였고 지원을 약속 받았다. 싱가포르 당국은 9·11 테러 직후 이 계획을 적발하였다. 함발리는 발리 自爆(자폭) 테러에 연루되어 수배 중이던 2003년 8월 태국 당국에 체포되어 미국에 넘겨졌다. 콸라룸푸르 회의에선 그해 가을에 발생하는 예멘 아덴항 정박 미군 구축함 콜호에 대한 自爆(자폭)공격 계획에 대한 토의도 있었다. 알 카에다의 공격으로 17명의 미 해군이 죽었다. KSM은 콸라룸푸르 회의에 참석하는 길에 할라드와 아부 바라에게 駐韓(주한)미군 기지 공격을 위하여 사용할 미국 국적 여객기의 보안태세를 점검하도록 한 것이다.
테러의 天才, 김포공항에 주목
할리드 세이크 모하메드(KSM)는 이슬람 세계가 배출한 ‘테러의 天才(천재)’이다. 그가 2003년에 붙들리지 않았더라면 한국을 포함하여 많은 나라가 그가 기획한 테러의 피해를 보았을 것이다. 그는 1994년 필리핀에서 ‘보징카 작전’을 준비할 때 조립식 폭탄을 개발하였다. 그의 사촌형(1차 세계무역 센터 폭파 테러 主犯)은 이때 폭탄의 부품들을 따로 분해하여 이를 콘택 렌즈 세척용 물약 등으로 위장, 휴대하고 탄 다음 비행기 화장실 안에서 時限(시한)폭탄으로 조립하여 이를 의자 밑에 두고 내리는 실험도 하였다. 일본행 필리핀 항공 점보기에 놓고 내린 폭탄은 제대로 터지지 않아 승객 1명만 사망하였다. KSM은, 9·11 테러를 준비하면서 혁명적인 발상을 했다. 수십 t의 기름을 실은 여객기를 자살 테러범이 납치, 조종하여 일종의 미사일로 활용하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의 成敗(성패)는 납치범들이 조종실에 들어갈 수 있느냐, 그리고 그런 자살테러 자원자들을 확보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모하메드(KSM)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보진카 작전’을 준비할 때부터 김포 공항에 주목하였다. 그가 時限(시한)폭탄을 두고 내리기로 작정한 12편의 여객기 중에 4편이 김포 공항을 경유하거나 이곳에서 출발하는 미국 국적기였다. <1. 노스웨스트 항공 30편: 마닐라∼서울∼LA. 2. 델타 항공 59편: 미국 포틀랜드∼서울∼타이베이∼방콕. 테러리스트는 서울 김포공항에서 탑승, 폭탄을 機內(기내)에 두고 타이베이에서 내린다. 폭탄은 타이베이에서 방콕으로 비행하는 도중에 터진다. 3. 유나이티드 항공 808편: 샌프란시스코∼서울∼마닐라∼서울∼샌프란시스코. 테러리스트는 김포공항에서 탄 뒤 마닐라에서 내린다. 폭탄은 비행기가 마닐라를 출발한 뒤 터지도록 시간을 맞춰 놓는다. 4. 유나이티드 항공: LA∼서울∼타이베이∼서울∼LA. 테러리스트는 김포공항에서 탑승, 폭탄을 장치하고 타이베이에서 내린다. 폭탄은 여객기가 서울로 가는 도중에 터진다.> 1995년, 음모자들이 일을 꾸미던 마닐라 아파트에서 불이 나 경찰이 덮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수백 명의 한국인들이 태평양과 남중국해 상공에서 爆死(폭사)했을 것이다.
마닐라-김포 공항 정찰 여행
2007년 AP 통신은 KSM의 진술서 일부를 입수하여 그가 1994년에 폭약 등 부품을 품고 마닐라-서울 노선의 팬암 항공편에 탑승한 과정을 소개하였다. KSM이 마닐라 공항에서 탑승절차를 밟으려 하자 한국 입국 비자가 없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그는 “한국 대사관에서 비자가 필요 없다고 이야기하였다”고 둘러대어 탑승이 허용되었다. 그는 폭약인 니트로메탄을 13개의 콘택 렌즈 세척용 병에 넣고 이것들을 가방에 담았다. 뇌관으로 쓰이는 볼트는 발바닥에 붙이고 테이프로 감싼 다음 양말을 신었다. 이것이 금속 탐지기에 걸리면 변명을 하기 위하여 쇠붙이로 된 단추가 붙은 옷을 입었고 보석을 착용하였다. 마닐라 공항 검색대에서 걸린 그는 가방을 열고 조사를 받았다. 검색대 요원이 콘택 렌즈가 많은 데 대하여 묻자 “필리핀에서는 값이 싸 구입하였다”고 했다. 가방에 든 電線(전선)과 배터리에 대하여는 “내가 기술자이므로 필요하다”고 답하였다. 검색 요원은 바지와 속옷까지 벗게 하여 금속 탐지기를 들이대었으나 발바닥에 붙인 볼트를 찾지 못하였다. 탑승 직전에 그는 다시 한번 조사를 받고 배터리를 압수당하였다. 그렇게 하여 김포공항에 도착하였으나 입국 비자가 없어 다시 마닐라로 돌아갔다. 알 카에다의 駐韓(주한)미군 기지 공격 작전은 9·11 테러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이슬람 과격세력은 김일성 시절부터 북한과 매우 가까웠다. 북한정권은 이슬람 테러조직원들을 북한으로 데려가서 훈련시켜주었다. 이런 끈끈한 유대관계는 수십 년 간 이어졌다. 알 카에다가 주한미군 기지 공격에 미국 내의 세계무역센터 공격 정도로 의미와 상징성을 부여한 것은 駐韓미군 기지를 反美(반미)의 상징으로 여기는 북한의 영향을 짐작하게 한다. 2007년 3월10일, 관타나모 기지에서 열린 미군 군법회의에 출정한 KSM은 탈레반과 알 카에다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이런 진술을 하였다. “그들(탈레반)은 많은 나라 사람들에게 정치적 망명처를 허용하였다. 중국의 反(반)정부 세력이나 북한사람들에게도 그러하였다. 그렇다고 하여 그들이 탈레반과 모든 점에서 같은 것은 아니다.” 문맥으로 봐서 ‘북한사람’은 ‘북한의 反(반)정부 세력’이 아니라 탈레반과 합류한 북한사람으로 해석된다. 알 카에다와 북한 공작기관과의 협력 관계는 연구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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