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대통령이 마주할 運命에 대하여
[강천석 칼럼] 강천석 주필
대통령과 가까운 順, 정권 만들기 功이 큰 순으로 감옥 간다 복지사회·공정사회 말하기 앞서 부패 사슬 벗을 대책부터 내놓으라 강천석 주필 오는 12월 19일 자정 무렵이면 18대 대통령 선거 당선자가 드러난다. 어느 잠룡(潛龍) 혹은 어느 이무기가 여의주(如意珠)를 손에 쥐고 하늘로 오를까. 박근혜 위원장이 되살아난 대세론을 타고 단숨에 결승 테이프를 끊게 되리라고 보는 사람이 꽤 된다. 그런 한편에선 '대세론 필패(必敗)'라는 말이 덜 마른 장작개비처럼 여전히 매운 연기를 뿜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새누리당 밖이나 민주당 안의 안철수 교수, 문재인·손학규 고문, 김두관 지사 가운데 누군가에게도 아직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정치판의 용한 점쟁이 다수(多數)가 지금은 박 위원장의 팔을 들어주는 분위기다. 그러나 적중률(的中率)이 만날 욕먹는 기상청의 강우(降雨) 예보만도 못한 게 정치판 점쟁이의 운세(運勢) 판단이다.
불확실성의 안개가 자욱한 대통령 선거판에 구름을 뚫고 솟아오른 산봉우리만큼 확실한 게 하나 있다. 누가 12월 19일 양팔을 번쩍 들어 승리의 V자(字)를 그릴지는 알 수 없어도 그 당선자 주변의 5년 후 운명은 훤히 보인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 역대 대통령―최규하 대통령만 빼고―의 형님·동생·동서·처남·처삼촌·처조카 가운데 누군가는 반드시 뇌물죄로 교도소에 갔다. 교도소 담장 위를 걷다 운이 좋아 교도소 바깥으로 떨어졌길래 망정이지 교도소에 갈 뻔한 대통령 피붙이와 처가 식구는 그 몇 배를 넘는다.
본인이 감옥에 간 군 출신 두 대통령은 더 말할 게 없다. 그다음 두 대통령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들이 재임(在任) 중에 교도소 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또 한 대통령은 퇴임 후 부인의 불법 돈거래로 수사를 받게 되자 바위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대군(大君)으로 불리던 시골 형님은 동생 임기 내내 마을 헛간을 뇌물 받는 장소로 이용했다. 지금 대통령의 아들은 검찰의 서면 조사를 받았고, 검찰청을 부지런하게 출입하기 시작한 무슨 대군(大君)이라는 형님도 내일을 모르는 처지다.
이렇게 30년 동안 단 하나의 예외도 없다면 '대통령 가족, 그것도 가장 가까운 가족 순(順)으로 감옥에 간다'는 것은 '한국 정치의 제1 철칙(鐵則)'으로 뿌리를 내렸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한국 정치의 제2 철칙은 '대통령을 만든 사람 상당수는 유공자(有功者) 순으로 교도소에 간다'는 것이다. 탱크를 함께 끌고 나와 정권을 탈취(奪取)했건, 삼국지의 제갈량이라도 된 듯이 후보에게 꾀주머니를 풀어 온갖 꾀를 귀띔해줬건, 재벌한테서 차떼기로 선거 자금을 받아 실어날랐건 아무 차이가 없다. 공자는 "마흔이 돼서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고(불혹·不惑), 쉰이 돼서는 하늘의 뜻을 알았고(지천명·知天命), 예순이 돼서는 어떤 말을 들어도 마음에 와 닿았고(이순·耳順), 일흔이 돼서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았다(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고 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사람들이 감옥 가는 데는 흰머리와 검은 머리의 선후(先後) 구분이 없다.
한국 정치의 제3 철칙은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돈을 먹는 데 지위의 높낮이에 따른 상후하박(上厚下薄)의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 집무실의 문고리를 잡고 있는 하급 비서나 청와대 밖에서 대통령의 사적(私的) 심부름을 하는 집사(執事)가 받는 뇌물 액수가 고위급보다 훨씬 큰 경우가 허다했다.
한국 정치의 제4 철칙―이 법칙은 비교적 최근에 적용되기 시작했다―은 권력자들과 그 부인들의 예술, 특히 미술에 관한 안목이 정권 후반기로 접어들수록 껑충 높아진다는 것이다. 한 작품에 몇억원에서 몇십억원을 호가(呼價)하는 미술품이 부피가 크고 무거운 현금 다발보다 더 고상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재벌 부인들의 한결같은 그림 사랑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현상이다.
한국 정치의 이런 철칙 마지막에는 '검찰을 비롯한 불법을 감시해야 할 사정(司正) 기관들은 정권의 해가 하늘 가운데 걸려 있을 때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부칙(附則)이 달려 있다. 그들은 정권의 해가 저물어 날이 어둑해져야만, 실세의 힘이 빠져 비틀거려야만 썩은 살을 뜯기 시작한다. 컴컴해져야 굴을 나와 어슬렁거리는 세렝게티 고원의 야행성(夜行性) 하이에나의 습성 그대로다.
역대 대통령은 단 한 사람 예외 없이 당선되는 순간부터 한국 정치 부패의 4대 철칙에 갇힌 수인(囚人)의 운명을 살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은 낭떠러지 끝에 설 때까지 피붙이와 마름과 행랑아범들에 관한 부패 소문에 귀를 막았다. 그러다가 가장 믿고 아끼고 사랑하던 인간들이 교도소로 끌려가는 모습에 부딪히면서 무너져내리는 정권의 돌더미에 깔려 묻히고 말았다. 복지사회, 공정사회, 선진사회, 공생(共生)사회 다 좋다. 그러나 대선판 잠룡들과 이무기들은 그에 앞서 머지않아 자기를 덮칠 비극적 운명을 어떻게 비켜갈 수 있겠는가부터 먼저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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