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로는 히메네스 낳고 ‘범생이’ 히메네스는…
계획교배 통해 ‘한국형 승용마’ 혈통 만드는 ‘세 마리 말과 한 남자’
○ 2대 히메네스, 체격도 딱! 성격도 딱!
까만 몸통에 흰 양말을 신은 듯한 다리, 키 143cm, 온순하고 태평한 성격의 히메네스는 환경 적응력이 강한 제주산 조랑말과 날렵한 대형 경주마 더러브렛의 피를 반씩 물려받은 ‘한국형 승용마’ 2세대다.
“쉭, 쉭, 쉭…. (계속해, 계속)”
뛰기 시작한 지 벌써 10분. 서서히 발걸음이 느려지자 등에 올라탄 조련사가 명령을 내린다. 그래, 뛰자. 조련사는 내 주인이니까. 다시 원형 마장(馬場) 안에서 재게 발을 놀린다.
5분쯤 더 지났을까. 심박측정기를 본 조련사가 말했다. “최고 심박수 210, 회복 심박수 60. 괜찮네.” 그가 빙긋 웃었다. 기분이 한결 좋아진다. 사람들이 날 보고 웃는 게 좋다.
내 이름은 히메네스. 24개월 된 말이다. 사람으로 치면 고등학교 1학년이다. 난 이곳 제주 난지축산시험장에서 ‘범생이’로 통한다. 승용마는 착하고 말 잘 듣는 게 최고다. 성질이 나쁘면 큰일이다. 아흔아홉 번 잘하다 한 번 성질 부려 사람이 다치기라도 하면 끝이다.
난 농촌진흥청 ‘한국형 승용마’ 프로젝트의 산물이다. 한국인에게 특화된 승용마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의 프로젝트다. 요새 국내에서도 승마 인구가 계속 늘어나니까 우리를 계획적으로 교배해 토속 품종을 만들려는 것이다.
24개월 된 히메네스가 제주 난지축산시험장 마장을 달리고 있다. 히메네스는 조로(수말)와 비
보라(암말) 간 계획교배로 태어났다.
프로젝트 책임자인 이종언 박사(농업연구사)는 내게 “딱 140∼150cm 정도만 자라라”고 말한다. 지금 내 키(앞발 바닥에서 어깨까지)는 143cm다. 다 크고 나면 145cm 정도 될 것 같다. 고만큼만 자라라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 사람들이 승마용으로 주로 타는 말들은 퇴역한 경주마 또는 제주도에 흔한 조랑말이다. 경주마는 키가 165∼170cm로 너무 크고, 140cm 이하인 조랑말은 너무 작다. 그 중간쯤인 우리가 한국 사람들 체형엔 딱 좋단다.
나는 얼마 전부터 도리안, 비나리, 사브로사 같은 암말 10마리와 합방(合房)하고 있다. 내년에 내 새끼들이 태어나면 조부모와 부모가 확인되는 한국 최초의 승용마가 된다고 이 박사가 말해줬다. ‘조로와 비보라는 히메네스를 낳고, 히메네스와 도리안은 OOO를 낳고….’ 이렇게 한국형 승용마 3대 족보가 완성될 날이 머지않았다.
○ 1대 조로, 조랑말과 경주마의 후예
머리와 꼬리만 빼고는 온통 하얀 조로. 조로는 성품이 느긋하고 말을 잘 들어 한국형 승용마의 시조격인 씨수말로 발탁됐다. 난지축산시험장 제공
나는 조로, 히메네스의 아빠다. 내 혈통은 그리 특이할 게 없다. 어느 제주도 조랑말과 경주용 말 더러브렛이 부모다. 부모가 확실한 내 자식들과 달리 난 부모가 누군지 모른다. 2008년 난지축산시험장 이종언 박사에게 발탁돼 이곳에 왔을 뿐.
처음에 이 박사가 내게 한 말이 기억난다. 그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뭐 이런 녀석이 다 있나?”라고 했다. 등에 올라타려는 조련사를 순순히 내버려 뒀더니 한 말이다. 다른 말들은 펄쩍 뛰거나 몸을 뒤틀어 떨쳐낸다나.
하지만 난 두세 번 몸을 뒤틀다 그냥 참았다. 조련사가 날 해치려고 하는 것 같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냥 ‘올라타세요∼’ 하고 등을 내줬다. 나중에 들어 보니 다른 말들은 최소 한 달이 지나야 사람을 태운다고 한다. 뭘 그리 까다롭게들 굴까.
이 박사는 그런 내가 꽤 마음에 들었나 보다. 내게 ‘한국형 승용마 1대 씨수말’이라는 직위를 내려줬다. 그는 아침엔 제일 먼저 내 안부를 묻는다. “간밤에 별일 없었지?”라며. 또 내가 최고의 나날을 누릴 수 있게 해줬다. 난 그림 같은 초원에서 암말 30여 마리와 같이 지낸다. 다들 덩치가 좋다. 내 키(137cm)보다 훌쩍 크다. 그래서 히메네스처럼 나보다 큰 새끼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나 보다.
놀라지 마시라. 내 새끼는 벌써 70마리다. 지난해 35마리 낳았고 그 전해에도 35마리 낳았다. 다들 품성이 괜찮은 편이란다. 히메네스는 망아지 때는 삐죽삐죽 피하려 하고 귀와 배를 만지면 귀찮아하거나 간지럽다고 도망가는 일이 많았는데 일단 교육을 시작하니 놀랄 만큼 빠르게 적응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히메네스는 나를 많이 닮았다. 나는 흰 몸통에 흑두건을 씌운 것처럼 얼굴만 까맣다. 히메네스는 까만 몸통에 다리만 하얗다. 흰 양말 신은 것처럼. 까만색과 흰색 얼룩이가 대대손손 나와 주면 미모도 썩 괜찮은 말로 꼽힐 것 같다.
○ 2대 가우리, 씨수마로 선택 받지 못했지만…
히메네스의 형제인 가우리가 제주마산업에서 조련을 받고 있다. 가우리 등 한국형 승용마들은 이곳에서 훈련받은 뒤 곳곳에 분양된다.
내 아빠도 조로다. 2010년 태어나 난지축산시험장에서 18개월을 보낸 후 작년에 조련기관인 제주마산업으로 왔다. 다른 형제 16마리와 함께였다. 씨수말인 히메네스는 난지축산시험장에 남지만 우리들은 곧 전국 방방곡곡으로 흩어진다.
제주마산업엔 겨우 비를 가릴 정도의 시설 외에 따로 마방이 없다. 하지만 나와 형제들은 별 불만 없다. 태생이 ‘노숙 체질’인가 보다. 오히려 눈 오면 좋다고 뛰어다닌다. 좀 추워지면 우리끼리 옹기종기 모여 서로 체온을 나눈다.
더러브렛 같은 비싼 경주마는 겨울이면 마방에서 따뜻하게 보낸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추워서 못 견딘다. 임신한 말은 유산하고 간혹 얼어 죽는 친구들도 생긴다고 한다. 까다롭기는….
그뿐 아니다. 우리는 발굽이 튼튼해 편자도 따로 필요 없다. 편자 한 번 갈아주는 데 25만 원 드는데, 최소한 45일에 한 번은 갈아줘야 한다고 하니 이것만 해도 1년에 200만 원 넘게 들어간다. 우린 정말 ‘경제적인 말’이다. 이곳에서 우릴 조련하는 이종필 아저씨는 “우리를 관리하는 데 월 30만 원 정도 든다”고 했다. 그렇다고 우리 몸값이 싼 건 아니다. 550만∼600만 원은 받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요새 퇴역 경주마들은 400만 원에 거래된다.
나와 다른 4마리 형제들은 곧 경북 구미시 옥성초등학교 유소년 승마단으로 간다. 아이들은 가끔 예측할 수 없는 돌발행동을 하는데, 느긋하고 태평한 우리 형제들은 그런 행동에 별로 놀라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그나저나 내 형제들은 사람을 너무 좋아해 탈이다. 마구간 안에 있다가도 사람이 있으면 우∼ 몰려간다. 사람들은 우릴 구경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도 사람을 구경하는 거다. 가로쇠대 사이로 쪼록 머리를 들이밀고 귀를 쫑긋쫑긋하면, 내 형제도 꽤나 귀여워 보이나 보다. 오선지에 4분 음표 올려놓은 듯. 사람들이 우릴 보고 자꾸 웃는다.
○ 이종언 박사 “유전적으로 안정된 3代 내년 탄생”
한국형 승용마 프로젝트를 이끄는 이종언 박사가 조로를 어루만지고 있다. 그는 “조로가 아니었다면 프로젝트가 순항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난생처음, 아니 한국에서는 처음 시도해 보는 승용마 혈통 만들기가 내겐 큰 부담인 동시에 기쁨이다. 내년에 히메네스의 아들딸들이 태어나면 녀석들에게 첫 한국형 승용마에 어울리는 브랜드를 붙여줄 것이다. ‘이거다’ 하는 브랜드를 만들기 전에 3대를 기다리는 것은 그 정도는 돼야 유전적으로 안정되기 때문이다. 더러브렛이나 트라케너 같은 세계적인 명품 말들도 처음에 이렇게 시작했다. 혈통서를 만들어 조상의 우수한 체격과 기질을 물려받도록 계획적으로 교배했다.
지금 만들어가고 있는 한국형 승용마들이 승마 동호인들에게 사랑받고 재활승마에도 요긴하게 쓰여야 할 텐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아픈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승마를 하려는 사람은 많은데 말도, 재활승마 전문가도 턱없이 부족하다.
온순하고 말 잘 듣는 말들을 키워내기 위한 내 철칙이 있다. 절대 때리지 말고 달래자. 달래면서 반복 교육하자. 말은 때리면 더 나빠진다. 욕하지 말고 칭찬해야 한다.
그렇게 교육시킨 말들은 제주마산업으로 보내거나 곧바로 대학 등 수요처에 바로 보내기도 한다. 2월엔 히메네스의 배다른 형제 조롱이가 경북 영천 성덕대로 갔다. 이 대학에는 재활승마 치료사 자격 과정이 있다. 그 전에는 진이가 삼성전자 승마단에 재활승마용으로 떠났다.
어미 배 속에서 갓 나온 망아지를 씻기고 먹이고 가르치고 2년간 동고동락하다 떠나보낼 때는 허전해진다. 조롱이가 성덕대로 떠나는 날, 아침 일찍 따뜻한 물에 정성껏 씻겨 털을 가지런히 빗겨 줬다. 머리부터 발굽까지 찬찬히 살핀 뒤 기념사진을 찍었다. 조롱이는 왼쪽을, 나는 앞을 보는 ‘썰렁한’ 포즈였다.
떠나는 조롱이에게 말했다. “누구와 함께 있든 나랑 있었을 때만큼 말 잘 듣고 착하게 굴어라. 그래야 너희 형제들도 잘 풀리고 나도 보람이 있지. 알았냐?” 조롱이는 말귀를 알아듣는지 내 얼굴을 가만히 쳐다봤다.
글·사진 제주=김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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