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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명 쓴 한 선비의 여유

淸山에 2012. 4. 23. 15:15

 


 

 

 

누명 쓴 한 선비의 여유

 

우리네 사람들이 왜 이렇게 조급해졌을까가 궁금하다

張良守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집 현관문을 나서면 금방 느낄 수 있다. 사람들 사는 것이 바빠도 너무 바쁜 것 같다. 엘리베이터는 가만히 두어도 저절로 열리고 닫히는데, 빨리 열리라고, 얼른 닫히라고 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쓸데없이 전력이 소비된다고 하던데 말이다. 에스컬레이터를 보면 그 가는 속도가 그렇게 느린 것 같지도 않은데 그 위로 걷는 사람이 많고 뛰는 사람도 흔히 볼 수 있다.

도로에서는 그 ‘바쁘기’가 한층 살벌하다. ‘초보 운전’이라고 써 붙이고 좀 봐달라고 ‘노란 병아리’까지 그려 붙인 차라도 조금만 멈칫거리면 뒤차가 빵빵, 쾅쾅 야단을 한다. 차와 차 사이에 조금만 틈이 보이면 다른 차가 머리를 들이밀고 끼어든다. 그러다 스치고, 부딪히고. 그러고는 운전자끼리 ‘네 탓이다, 네 탓이다’로 승강이가 붙고 경우에 따라서는 멱살을 잡고 사생결단을 내려는 듯이 싸우는 일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한국 사람들이 본래 그렇게 조급하게 산 것은 아니지 않나 싶다. 내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우리 先人(선인)들은 의관을 정제하고 어흠, 어흠 헛기침을 하면서 도포 자락을 크게 휘저으며 성큼성큼 양반걸음을 걷는, 여유 있는 모습이다. 우리의 속담에도 조급함, 서두름을 경계하는 것들이 많다. ‘바쁘다고 바늘허리에 실 매어 쓸까’, ‘돼지 꼬리 잡고 순대 먹자 한다’, ‘우물에 가서 숭늉 찾는다’ 한 것이 모두 그런 것이다.

 

우리의 설화에도 그런,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아는 선인들의 풍모를 보여 주는 것이 있다. 한 선비가 길을 가다 날이 저물어 어떤 大家(대가)에 過客(과객)으로 들어갔다. 저녁을 얻어먹고 자려고 하는데 주인집에서 야단이 났다. 그 집 傳家(전가)의 보물인 구슬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집 주인은 자기 가족 말고 그 집에 들어온 사람은 그 선비 밖에 없으니 그가 훔친 것이 틀림없다고, 그를 대청 앞 기둥에 묶어 놓고 어서 내 놓으라고 다그쳤다.

 

선비는 어쨌든, 구슬을 찾게 해 줄 테니 그 집 거위를 이튿날 아침까지 자기 앞에 묶어 두어 달라고 했다. 주인은 선비의 말 대로 했다. 이튿날 아침 거위가 똥을 누었는데 그 속에 구슬이 있었다.

 

金素雲(김소운)이 쓴 산문집 《木槿通信(목근통신)》에는 우리나라로 치면 선비 계급이라 할, 한 일본 사무라이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떤 사무라이가 어린 자식을 데리고 길을 가고 있는데 한 떡장사 노파가 달려와서 떡값을 내라고 했다. 자기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떡이 없어졌는데 그 앞을 지나간 것은 이 애 밖에 없으니 이 애가 훔쳐 먹은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무사는, 사무라이의 아들은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노파는 막무가내로 계속 돈을 내라고 했다.

 

그러자 무사는 칼로 애의 배를 갈라 떡이 없다는 것을 보여 준 다음 그 노파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을 했다. 자기 쪽만 결백하다면 ‘그, 얄궂은 할망구도 다 있네’ 하고 가면 될 일을 그렇게 끔찍스런 유혈극을 벌였다는 것이다.

 

다 같이 누명 쓴 사람 이야기이지만 일본 사무라이에 비하면 우리 선비는 많이 다르지 않은가? 그는 그날 저녁 주인집 어린아이가 구슬을 가지고 놀다 놓친 것을 거위가 삼키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선비는 주인이 닦달했을 때 그 말을 했으면 금방 누명을 벗을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주인이 급한 마음에 거위를 죽일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선비는 비록 하찮은 미물에 불과하지만 쓸데없이 생목숨을 앗게 하지 않으려고 그런 수모와 고통을 참고 견딘 것이다.

 

그런 우리네 사람들이 왜 이렇게 조급해졌을까가 궁금하다. 나는 그것을 근세 이후 우리나라가 內憂外患(내우외환)에 시달린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1800년대 말, 개화 이후 우리의 先人(선인)들은 외세의 침략에 부대껴왔다. 그러다가 결국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고 30여 년이란 긴 세월 그들에게 짓밟히고 빼앗기고 쫓기면서 살아왔다. 겨우 해방이 되었지만 좌우로 나뉘어서 싸우다가 끝내 6·25사변을 맞았다. 그 난리통에 살아남으려면 이리 뛰고 저리 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나라를 되찾은 지도 근 70년이 되었고 휴전이지만 남북의 싸움이 멎은 것도 60년 가까이 되었다. 물론 현대는 그때 못지않게, 아니 오히려 더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순발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민첩함과 조급함은 분명히 다르다는 사실이다. 전보다 더 긴장하고 잽싸게 움직여야 하겠지만 그러면서도 어떤 여유,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