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북한 인민군과 그 가족이 쓴 편지엔 검열을 의식한 탓인지 '원쑤' '강도'라며 남한과 미국을 비난하는 구절이 곳곳에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편지에서 전하려는 이야기는 생존이고, 사랑이다. 아내에게 세간에 미련 두지 말고 빨리 피난 떠나라 다그치고, 인민군이 된 아들이 전라도 고향의 어머니한테 소식도 못 드리고 입대해 죄송하다 울며, 폭격 맞아 돌아가신 아버지 사망 소식을 놀라지 말라면서 함경도 누이에게 전한다. 평양의 관리가 중국 요동성의 애인에게, 모스크바의 아내가 평양의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전장에 핀 사랑 이야기도 있다. "내가 조국 강토에 와서 있을망정 나의 어머니를 모르거나 귀란이를 모르거나 있던 곳을 모르거나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요. 1950년 6월 14일 애인 상홍 서." 조선인민군 우편함 제4640호의 '애인' 전상홍이 중화인민공화국 송강성 상지현 용궁구 조생촌의 장귀란 '동지' 앞으로 보낸 연서다. "어서 사랑의 결실을 보자"는
여성의 편지, "혼인 날 받아놓았다"는 아버지의 편지도 있다.
1차 사료(史料)로 평가받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고, 생생한 육성이 담긴 훌륭한 '전쟁 문학'이다. 전자 게임처럼 전쟁이 현장 중계되고 있는 지금, 한반도가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을 치른 분단국임을 처절히 깨닫게 만드는 책이다.
"오라버니 전상서. 옵빠(오빠)의 소식을 알지 못하여 이 누이 가슴은 쓰라리다 못하여 간장이 다 스러지고 맙니다. 그러나 업쓴(없는) 사람은 업쓰나 산 사람은 사르야지요(살아야지요). 이 누이가 몬난 타스로(못난 탓으로) 언니를 죽여버렸습니다. 미리 피난시키었으면 안 죽을 사람을 죽였으니 분합니다. 아이들은 저한테 맡기시오. 죽지 않고 살았으면 나한테 오기를 원합니다."(평안북도 박천 서무리의 누이 류경희가 평양의 오빠 류경찬에게 1950년 10월 5일 보낸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