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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에 묻혔던 국군전사자 유해 첫 귀환 - 태극기·국방부기·육군기·성조기·유엔기가 일제히 깃발 숙여

淸山에 2012. 5. 25. 07:50

 

 

 

 

태극기·국방부기·육군기·성조기·유엔기가 일제히 깃발 숙여

 

6.25 전사자 유해 오자 성조기 든 기수단은…
연합뉴스


 

미측 2000~2004년 北서 발굴..하와이거쳐 오늘 서울공항에
이명박 대통령 참석..국가차원 봉환행사


북한지역에서 발굴된 국군 전사자 유해 12구의 첫 귀환은 한국과 미국의 긴밀한 공조가 빚어낸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25일 서울공항을 통해 고국의 품에 안긴 고(故) 김용수ㆍ이갑수 일병 등 국군 전사자 유해는 50여년간 북한지역의 외딴 골짜기에 외롭게 남아 있다가 미국 유해발굴 전문가들의 손에 의해 수습됐다.

 

이후 이역만리 타국에서 긴 세월을 기다리다 드디어 이날 전사한 지 62년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는 기나긴 여정을 거쳐야 했다.

이들 유해는 미국이 지난 2000년부터 2004년 사이 북한의 함경남도 장진호 주변 격전지역에서 찾아냈다.


6ㆍ25전쟁 발발 62년만에 국군 전사자 유해 12구가 25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이명박 대통령과 군 관계자, 유족들이 뒤따르는 가운데 영헌봉송단에 의해 운구되고 있다. /연합뉴스

 

 

장진호 지역은 6ㆍ25전쟁 중 가장 치열한 공방이 전개됐던 격전지로, 미 7사단 3개 대대가 중공군의 매복에 걸려 대부분 전사한 곳이다. 전사자 2천500명, 부상자 5천명 등 역사상 미군이 가장 고전했던 전투로 기록되고 있다.

 

 

미국은 북한과 합동으로 당시 미군 전사자 유해를 찾고자 장진호 지역을 샅샅이 뒤졌고, 2005년까지 226구를 발굴했다. 이 과정에서 국군 전사자 유해도 빛을 볼 수 있었다.

 

 

미국 정부는 전 세계 전장에서 사망하거나 실종된 미군 유해를 찾아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하와이에 합동전쟁포로실종자사령부(JPAC)를 두고 있다. JPAC은 장진호 지역에서 수습한 유해를 미토콘드리아 및 핵 DNA(유전자) 방법 등으로 감식하는 과정에서 아시아인종을 구분했다.

 

 

작년 8월 JPAC은 우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이 사실을 통보했고, 이때부터 공조체제가 가동됐다.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자 대부분이 미군과 한국군이었고, 유해의 치아 상태나 치아 보철, 인식표 등을 고려할 때 한국군이 맞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요원과 미 JPAC 전문가들이 각각 두 차례씩 서울과 하와이를 방문해 여러 차례 토의와 자료 등 종합분석을 했다. 한미 합동감식이었지만 우리 측이 사실상 분석을 주도했다고 한다.



6ㆍ25전쟁 발발 62년만에 국군 전사자 유해 12구가 25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이명박 대통령과 군 관계자, 유족들이 뒤따르는 가운데 영헌봉송단에 의해 운구되고 있다. /연합뉴스

 

 

12구의 유해에서 유전자를 채취한 국방부는 이미 전국에서 확보된 전사자 유해확인을 위한 유가족 DNA 표본과 대조작업에 나섰고, 김용수ㆍ이갑수 일병의 신원을 확인했다.

 

 

김 일병은 작년에 숨진 형과 조카의 유전자가 일치했다. 이 일병은 유해와 인식표가 함께 나와 신원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일병의 유해 일부는 아직도 발굴된 북한지역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방부는 유해 인수를 위해 지난 18일 조철규 육군준장을 단장으로 인수단을 구성했다. 인수단은 유해를 싣고 올 공군 C-130 특별수송기와 함께 하와이로 출발했다.

 

 

지난 22일 미 JAPC 사령관 주관으로 양국 군과 정부인사, 참전용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유해 인수행사가 하와이에서 거행됐다.

유해는 24일 하와이에서 출발해 괌을 거쳐 20시간의 비행 끝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25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오열하는 국군 전사자 故 이갑수 일병의 유족 이숙자씨를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공항에서 열린 봉환행사는 국가 차원의 행사로 진행됐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관진 국방장관, 김상기 육군총장, 제임스 서먼 한미연합사령관, 유가족들이 최고의 예우를 갖춰 유해를 맞이했다.

 

 

애국가가 연주되고 21발의 조포가 발사되는 가운데 태극기와 국방부기, 육군기, 성조기, 유엔기로 구성된 기수단이 트랩을 내려온 유해를 향해 일제히 깃발을 숙였다.

 

 

군대 의식에서 부대기가 개인에게 허리를 굽히는 것은 최상의 예를 표시하는 행위이다.

전통방식에 따라 오동나무관에 입관된 12구의 전사자 유해는 후배들이 운전하는 12대의 군용 지프로 옮겨져 헌병 사이드카의 호송을 받으며 서울현충원으로 이송됐다.

 

 

신원이 확인된 김용수 일병과 이갑수 일병은 6월 중 대전현충원에 안장되고 나머지 10구는 신원이 확인될 때까지 현충원 유해봉안소에 안치된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인 박신한 대령은 “정부는 북한지역에 묻혀 있는 국군 전사자 유해발굴을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다. 항상 발굴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서 “매년 자료를 수집하고 있고, 북측과 공동발굴할 수 있도록 불용액이 될 줄 알면서도 관련 예산을 매년 편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62년만의 귀환
62년만의 귀환

 

李대통령, 6ㆍ25전사자 `영면의 길' 기원
李대통령, 6ㆍ25전사자 '영면의 길' 기원

 

일병에게 경례한 대통령. 최고 예우로 영웅을 맞다

 

李대통령, 6.25 국군전사자 유해 봉영
李대통령, 6.25 국군전사자 유해 봉영

 

대통령의 거수경례
대통령의 거수경례

 

▲ 이명박 대통령과 김관진 국방장관 등이 25일 공군 특별기로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 국군 전사자 유해봉영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6.25 전사자 유해봉영
6.25 전사자 유해봉영

 

李대통령, 6ㆍ25전사자 `영면의 길' 기원
李대통령, 6ㆍ25전사자 '영면의 길' 기원

 

北에 묻혔던 국군전사자 유해 첫 귀환
北에 묻혔던 국군전사자 유해 첫 귀환

 

李대통령, 6ㆍ25전사자 `영면의 길' 기원
李대통령, 6ㆍ25전사자 '영면의 길' 기원

 

 

 

 

 

 

 

 

北에 묻혔던 국군전사자 유해 첫 귀환


故 김용수ㆍ이갑수 일병 등 12구 美측 발굴
 한미 합동감식 통해 국군전사자 확인

 


이명박 대통령과 김관진 국방장관, 제임스 서먼 한미연합사령관 등이 25일 공군 특별기로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

북한지역에서 발굴된 국군 전사자 유해봉영을 지켜보고 있다.

 

북한지역에서 발굴된 국군 전사자 유해가 6ㆍ25전쟁 이후 처음으로 조국의 품에 안겼다.

국방부는 25일 "1950년 12월 함경남도 장진호 전투 등에서 전사한 국군 유해 12구가 전날 공군 C-130 수송기 편으로 하와이를 출발해 이날 오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했다"면서 "북한지역 국군전사자 유해를 국내로 봉환한 것은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날 서울공항에서 김관진 국방장관과 김상기 육군참모총장, 제임스 서먼 한미연합사령관은 태극기와 국방부기, 육군기, 유엔기, 성조기 등으로 구성된 기수단이 늘어선 가운데 최고의 예우를 갖춰 전사자들을 맞이했다.


이들 전사자 유해는 6ㆍ25전쟁 당시 국군으로 입대해 미군에 배속됐던 카투사로, 미국이 북한과 합동으로 유해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찾아냈다.

 

유해 12구 가운데 고(故) 김용수 일병과 이갑수 일병은 신원이 확인되어 유가족과 협의를 거쳐 6월 중 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나머지 10구에 대해서도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

 

미국은 장진호전투 지역에서 발굴한 유해를 하와이의 미 합동전쟁포로실종자사령부(JPAC)로 옮겨 신원확인 작업을 했으며, 이 과정에서 12구가 아시아 인종으로 분류되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합동으로 감식한 결과 국군 전사자로 확인됐다.

김용수, 이갑수 일병은 미 7사단 15전차대대 소속이었다.

 

1933년 부산에서 출생한 김 일병은 18세의 어린 나이에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해 7사단에 배속되어 북진하다가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했다. 작년에 숨진 형이 생전에 동생의 유해를 찾겠다며 유전자(DNA)감식용 혈액을 채취한 것이 신원 확인의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

 

그의 아버지 고(故) 김인주 선생도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에 투신해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부산에 거주하는 큰 조카 김해승(55) 씨가 유해를 맞이했다.

 

1916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이 일병은 34세의 늦은 나이에 사랑하는 아내와 4살, 7살이던 어린 두 남매를 뒤로하고 전장에 뛰어들었다. 함경남도 장진호 인근 하갈우리지역 전투에서 전사했다. 아들 이영찬(66), 딸 이숙자(69) 씨가 그리던 아버지와 헤어진 지 62년 만에 유해를 맞이했다.

 

이 일병은 발굴 당시 인식표가 발굴되어 유가족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인 박신한 대령은 "비록 우방인 미국에 의해 발굴되었지만 미완의 과제인 북한지역에 남아 있는 나머지 국군 전사자 유해 봉환의 첫발을 내디딘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박 대령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국가가 책임진다는 국가 의지를 실현한 뜻깊은 일"이라며 "대한민국의 자유수호를 위해 함께 싸운 한국군 전사자 유해를 발굴해 신원까지 확인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미측에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북한지역과 비무장지대(DMZ)에는 3~4만여구의 국군 전사자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남북관계 경색으로 북측과 발굴협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아버지 유해 통일되면 찾아볼까 했는데"

연합뉴스


 

北서 유해 발굴된 故이갑수ㆍ김용수 일병 유족
 


 고(故) 이갑수 일병의 딸 이숙자씨와 아들 이영찬씨. /연합뉴스

 

 “아버지 유해를 찾을 것이라고 기대조차 안했는데..”

6ㆍ25전쟁 당시 북한지역에서 전사해 62년 만에 유해로 돌아온 고(故) 이갑수ㆍ김용수 일병의 유족들은 25일 아버지의 귀환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4살 때 아버지와 헤어진 이 일병의 아들 이영찬(65) 씨는 기자와 인터뷰에서 “아버지라고 불러본 기억도 없으니 아버지 이름도 모른다. 멀리서 전사하신 걸로 알고 있어서 (돌아올 것이라곤) 전혀 기대도 안했다”면서 “통일이 되면 그때서나 찾아볼까 하고 있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묻자 “조금 배우신 분이었던 것 같다. 뭘 하시는지는 모르지만 회사를 다녔다는 기억이 난다”면서 “늦은 나이에 입대했다는 등 할머니가 아버지 얘기를 많이 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사실 제사도 못 지내고 있었다”면서 “전사통지서에는 OO지구에 OO일 전사라고 기록되어 현충일 때도 제사보다는 그냥 아버지를 생각하는 정도로 보냈다”고 회고했다.

 

7살 때 이별한 이 일병의 딸 이숙자(69) 씨도 “키가 컸던 아버님은 비가 오면 진흙탕 길을 나를 업고 학교에 등교시켰다”면서 “나를 잘 업고 다니셨다는 것 외에는 뚜렷하게 생각나는 것이 없다”라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고(故) 김용수 일병의 조카 김해승씨. /연합뉴스

 

김용수 일병의 큰 조카인 김해승(54) 씨는 “기적이라는 생각 밖에 안 든다”면서 “2년 전에 우리 아버님의 DNA(유전자)를 채취해갔는데 작년에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그래서 포기했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김 일병)가 함께 입대를 했는데 아버지가 후방으로 같이 가자고 했더니 작은아버님이 형님은 내려가 집을 지켜라. 나는 국가를 지키겠다고 한 얘기를 들었다”면서 “듣기로는 탱크부대에 있었는데 미그기 폭격을 맞고 구급차에 실려가다가 돌아가셨다고 알고 있다”고 눈물을 훔쳤다.

 

이에 박신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은 “탱크부대는 아닌 것 같고, 아마 중공군의 박격포 포격에 의해 전사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아버지가 살아생전에 동생(김 일병) 얘기를 많이 하셨다. 돌아가실 때도 동생 생각하면서 많이 우셨다”면서 “작은아버지(김 일병)는 학도병이고 아버지는 자원입대했다. 훈련소까지 같이 가서 거기서 헤어졌다. 아마도 동생을 보호하려고 자원입대하셨던 것 같다”고 전했다.

 

유족들은 북한지역에 묻혀 있는 국군 전사자 유해가 하루빨리 수습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영찬 씨는 “빨리 통일이 돼서 (유해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일부 유해가 북한에 있다는데 그걸 빨리 찾을 수 있도록 정부에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갑수ㆍ김용수 일병은 각각 1950년 12월 북한 함경남도 장진호전투에서 전사했으며, 미국 유해발굴단이 그들의 유해를 발굴해 한미 합동감식을 통해 신원이 확인됐다.

 

이들을 포함한 북한지역에서 발굴된 전사자 유해 12구는 이날 오전 공군 C-130 수송기를 통해 하와이에서 고국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