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 상륙작전 ‘트로이 목마’
손자병법으로 푸는 세상만사 <18> 전쟁과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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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자세한 거짓말은 편지로 보내겠습니다.” 케니스 필즈의 『거짓말의 즐거움』에 나오는 얘기다. 영국의 사회학자 라크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10분간 대화하는 동안 피실험자의 60% 이상이 최소한 한 번씩 거짓말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연인이나 어머니와의 대화에서도 3분의 1이나 2분의 1이 거짓말이었다고 한다.
여자가 화장을 하는 것은 속임수일까? 대체로 남자들은 키를, 여자들은 몸무게를 속인다고 한다. 보이스피싱이 횡행하고 스포츠에서도 승부조작을 하는 세상이다. 카멜레온이 보호색을 바꾸는 것도 생존을 위한 속임수라 할 수 있다.
동물이나 곤충의 세계에서 암컷을 유혹하는 수컷의 온갖 기이한 행동도 종족 번식을 위한 속임수로 볼 수 있다. 거짓말과 속임수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속임수에 대해 연구한 샌타페이 연구소에서는 ‘고의성’ 여부를 두고 둘을 구분한다.
거짓말을 위해선 허위 사실을 여러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알리는 고의성이 필요하지만 속임수는 의도적인 거짓 행위가 없는 상태에서도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과 관점에 따라 구분과 경계가 애매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거짓말과 속임수를 하나로 묶어 생각하기로 하자.
속임수도 개인 차원에 머물면 그 영향도 개인에서 끝나지만 범위가 확장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전쟁에서의 속임수는 국가 존망과 직결되는 속임수다. 그리스 신화 속의 ‘트로이 목마’는 군사작전에서 속임수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고전적인 예다.
수년에 걸친 전쟁이 단 한 번의 속임수로 끝난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군사적 속임수에 대해 말했다. “어떤 행동이든 속임수를 사용하는 건 혐오스러운 일이지만, 전쟁 수행 과정에서 책략을 사용하는 행위는 칭찬할 만하고 멋진 일이다. 또 책략으로 적을 굴복시키는 사람은 무력으로 적을 굴복시키는 사람 못지않게 훌륭하다.”
1944년 6월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펼치고 있다. 이 작전은 복잡한 준비 과정과
치밀한 전략적 판단을 말해 주는 사례다.
[사진=중앙포토]
가짜 건물 세우고 허위 라디오 메시지 송신
역사적으로 가장 거대한 규모의 군사적 속임수가 있었다. 바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위한 속임수였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프랑스의 노르망디 반도로 미국·영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이 1944년 6월 6일 벌인 상륙작전이다. 작전명은 오버로드 작전(Operation Overlord)이다.
유럽 진공의 시작이었으며 소련 입장에서는 그들이 요구한 이른바 제2전선의 시작이었다. 본격적인 상륙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할 일이 있었다. 철저하게 독일군 사령부를 속이는 것이었다. 개인을 속이거나 소규모 부대의 움직임을 속이는 것은 비교적 수월할 수 있지만 6000여 척의 각종 선박, 28만7000명의 병력과 각종 전투장비, 1만2000대의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이동해야 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위한 거대한 기만작전은 암호명으로 보디가드 작전(Operation Bodyguard)으로 명명되었는데 군사적 속임수가 얼마나 복잡한 과정과 치밀한 전략적 판단으로 이뤄지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전쟁에서의 기만술』을 저술한 마이클 듀어는 “처음에는 미군조차도 우세한 기동력과 화력, 물적 자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 때문에 속임수를 불필요한 간교함 정도로 여겼지만 결국에는 생각을 바꿨다”고 말했다.
보디가드 작전은 다섯 개로 이루어졌다. 첫째, 포티튜드 노스(Fortitude North)작전이다. 노르웨이 상륙작전을 실행함으로써 연합군이 북쪽에서 덴마크를 경유해 독일을 공격할 것처럼 속이는 작전이다. 속아넘어간 독일군은 중앙유럽에서 20만 명이나 빼내 노르웨이에 주둔시켰다.
둘째, 포티튜드 사우스(Fortitude South) 작전이다. 프랑스의 파드칼레 지역으로 상륙할 것처럼 속이는 작전이다. 이 작전에 연합군은 특히 많은 신경을 썼다. 미군은 가짜 건물들을 만들고 영국군도 허위 라디오 메시지를 송신했다. 상륙작전을 수행할 주력부대로 알려진 가짜 부대의 사령관에 당시 독일군에게도 잘 알려진 패튼 장군을 내세웠다.
속임수를 더하기 위해 칼레에 집중 공습을 가해 독일군으로 하여금 상륙 목표가 칼레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또한 포티튜드 작전을 위해 스카이 작전이라는 또 다른 기만작전이 실시되었는데, 스코틀랜드에서 무선교신을 사용해 상륙지역은 노르망디 혹은 덴마크가 될 것이라고 독일로 송신했다.
이 속임수로 독일군 사령부는 혼란에 빠졌고 어디가 정확한 상륙 목표인지 고심했다. 결국 스카이 작전의 무선송신을 들은 독일군은 이를 칼레 상륙을 속이기 위한 연합군의 기만작전이라 생각해 노르망디보다는 칼레 방면의 수비를 더욱 강화했다. 그리고 이들 부대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까지도 그 자리를 굳게 지켰다.
셋째, 체펠린(Zeppelin)작전이다. 이 작전은 지중해의 동부와 중부에 배치된 연합군의 규모를 과장함으로써 독일군을 그 지역에 묶어두어 실제로 상륙작전이 이루어지는 중앙유럽으로 이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속임수다. 이 작전도 성공해 당시 지중해의 연합군은 38개 사단이었는데 독일군은 끝까지 71개 사단으로 믿었다.
넷째, 벤데타(Vendetta)작전이다. 프랑스 남부에 가짜 상륙작전을 실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에 있는 독일군으로 하여금 북쪽의 노르망디로 병력이 증원되는 것을 막았다.
다섯째, 아이언사이드(Ironside)작전이다. 프랑스 비스케이만(灣) 지역에 대한 가짜 상륙작전이다. 이 작전은 연합군의 제한된 능력과 물적 자원의 부족으로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더구나 비스케이만은 상륙지역으로는 부적합하다고 독일군 사령부가 판단했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에는 이렇게 많은 속임수가 있었다. 적도 바보가 아닌 이상 결국에는 누가 교묘하게 속이며 누가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래서 속임수 작전은 쌍방의 치열한 두뇌싸움이라 할 수 있다.
상대방 흔들어 허를 찌르는 14가지 속임수
손자병법 시계(始計) 제1편에 ‘전쟁은 속임수다’(兵者詭道也)라는 말이 있다. 전쟁 자체가 속임수(詭道)라는 뜻보다는 전쟁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속임수가 많다는 의미다. 이어서 14가지의 각종 속임수가 열거되어 있다. 이 내용을 깊이 이해하면 세상의 어떤 속임수에도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
①능력이 있으면서도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能而示之不能). ②사용하면서도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用而示之不用). ③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인다(近而示之遠). ④멀리 있으면서도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遠而示之近). ⑤이로움을 탐하면 이로움을 보여주어 꾀어낸다(利而誘之). ⑥혼란하면 그 틈을 타서 취한다(亂而取之). ⑦상대가 역량이 충실하면 대비한다(實而備之). ⑧상대가 강하면 피한다(强而避之). ⑨상대가 기세등등하면 격분시켜 흔든다(怒而撓之). ⑩상대가 낮추면 교만해지도록 한다(卑而驕之). ⑪상대가 편안하게 있으면 피곤하게 만든다(佚而勞之). ⑫상대가 서로 친하면 이간시킨다(親而離之). ⑬준비되지 않은 곳을 공격한다(攻其無備). ⑭예상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나간다(出其不意).
여기에 열거된 14가지 속임수를 잘 보면 전부가 속임수만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상대방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직접적인 속임수도 있지만(①∼④), 상대방을 교란시켜 약화시키는 방법(⑤⑥⑨⑩⑪⑫), 그리고 상대방의 강점을 대비하거나 회피하는 방법(⑦⑧)도 동시에 제시된 것이다. 결국 최종 지향점은 이런 활동들을 통해 상대방의 판단을 흔들어 놓고 전혀 준비되지 않은 곳(⑬攻其無備)과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방법(⑭出其不意)으로
공격한다는 것이다.
손자는 속임수를 합법적인 전쟁의 수단으로 보고 비중을 많이 두었다. 반면에 클라우제비츠는 속임수가 투자 대 효과 측면에서 실용적인 가치가 없다고 폄하하면서 “지휘관에게 근본적으로 필요한 자질은 잔꾀를 부리는 재주보다 정확하고 날카로운 이해력이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속임수는 단지 ‘잔꾀’에 불과했다. 그의 영향을 받은 미군 역시 군사적 속임수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중국의 마오쩌둥이나 북베트남의 보 구엔 지압은 손자의 가르침에 충실해 교묘한 속임수로 그들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런 점에서 손자의 통찰력이 클라우제비츠를 능가하고 있다.
전시 군사작전에서의 속임수와 평시 생활 가운데 사용되는 속임수는 동기와 목적부터 다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거짓말을 세 가지로 구분했다. 첫째는 악의적인 거짓말이다.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기 위한 거짓말로 ‘Black Lie’라고 한다. 중상모략이 대표적인 예다.
둘째는 이타적(利他的) 거짓말이다.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거짓말이다. 포로가 되어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동료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셋째는 선의적인 거짓말이다. ‘White Lie’로 불리는 거짓말로 타인을 배려하기 위해서나, 고통에 빠진 사람에게 용기를 주기 위한 거짓말이다. 이웃의 아기를 보고 별로 예쁘지는
않지만 “참 예쁘군요”라고 하는 것이나, 가짜 약을 진짜 약으로 믿어 병이 낫는 현상인
플라시보 효과의 경우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해 본 적이 없다고 우기는 사람은 어떤 유형의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어쩌면 세르반테스가 말한 ‘정직이 최선의 방책’임을 굳게 믿거나 거짓말은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거짓말이 주는 효용은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땀 흘리는 수고도 없이 그저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일확천금(一攫千金)의 모든 유혹은 대체로 속임수, 거짓말, 꼼수일 경우가 많다. 손자가 말한다. 세상의 리더들이여, 속임수로 가득한 세상에서 속지 않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 한 가지를 명심하라.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불변의 진리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노병천 한국전략리더십연구원장 1919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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