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05.04.24 18:38 / 수정 2005.04.25 04:54
▶ 1970년대 초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그는 10월 유신 작업을 주도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하자 국민은 새로운 헌법 하에서 대통령의 임기와 선출 방식이 어떻게 정해질지 제일 궁금해 하는 것 같았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당선과 관련이 있는 국회의원 선거제도에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유신을 입안한 중앙정보부의 관계관들은 정기적으로 박 대통령에게 헌법 개정안과 국회의원선거법 개정안 등 제반 문제의 전전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청와대를 방문했다. 박 대통령은 이들의 설명을 들으면서 자기의 의견을 거의 제시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으며 때때로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였다.
박 대통령은 오직 한 군데에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가 실무진의 강력한 주장으로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 의견을 거둬들인 적이 있었다. 그것은 대통령 선거인단인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대의원들이 대통령을 뽑을 때 토론없이 투표에 들어가도록 되어 있는 조항에 관해서였다. 박 대통령은 "이렇게 하면 선거의 기본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게 아닌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배석했던 사람들도 거기에 동감이었다.
그러나 중정(中情) 실무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강력하게 단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북측에 과시하려면 북한의 표결 결과처럼 100% 찬성은 나타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대통령이 압도적 다수의 지지를 받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굳이 토론의 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이는 확실히 과잉충성의 표시였다. 그러나 그대로 통과되었다. 이 규정은 6년 뒤 다시 선거를 치를 때 시정되었다.
이처럼 말을 아끼던 박 대통령은 대통령의 궐위시 누가 어떻게 대통령을 계승하느냐는 문제에 관해서는 자기의 주장을 분명히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미리 메모 형식으로 적어왔던 것으로 나는 기억한다. 박 대통령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다 들은 다음에 "그러면 내가 좀 얘기하지"라고 서두를 끄집어 내고는 메모한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그것은 유신헌법 제45조 2항과 제48조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대통령이 궐위된 때에는 통일주체국민회의는 3개월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 다만 잔여임기가 1년 미만인 때에는 후임자를 선거하지 아니한다"는 것이었다. 제48조는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에 정한 국무위원의 순위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는 규정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목격하고 박 대통령의 마음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 이 분은 이제 하야하실 마음의 준비를 하셨구나. 그것도 자신의 후계자를 골라놓고 시험해볼 수 있는 안전장치까지 마련해 놓고 하야하실 생각인가 보다." 그러나 이런 내 생각을 누구에게도 얘기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국무총리에 누가 임명되느냐 하는 것이다. 당시 총리는 김종필씨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김종필씨를 후계자로 생각하는 대통령 측근들은 별로 없었다. 유신의 주역으로 등장한 이후락씨를 제 2인자로 여기는 말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김성진 전 청와대 대변인·문공부 장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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