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정치.사회/朴正熙 照明

['朴대통령의 입' 9년] 36. 휴전선 땅굴

淸山에 2009. 8. 16. 10:31
 
 

 

 
 

[중앙일보] 입력 2005.05.03 18:06 / 수정 2005.05.04 05:01
 
 

 


▶ 1978년 10월 서울 여의도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북한의 남침용 땅굴을 규탄하는 대회를 열고 있다.
 
 

일본의 시사평론가 후쿠다 쓰네아리(福田恒存)도 박정희 대통령을 여러 차례 만났던 외국인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원래 셰익스피어 연극을 전공한 문예평론가였는데 일본의 안보 문제에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그 분야의 논객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그가 박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북한이 휴전선 밑으로 지하 땅굴을 파내려 온 것이 발각되어 세상이 발칵 뒤집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외국에서는 상당 기간 냉정한 분위기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0세기도 다 저물어가는 개명천지에 설마 지하 땅굴을 파고 내려와 침략을 도모하는 빨치산식 군사전술에 집착하는 정권이 있으랴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땅굴은 엄연한 사실이었으며 곧 한반도의 특수성을 입증하는 증거였던 것이다.
 
북한이 파내려 온 지하 땅굴은 자동차의 일방통행이 가능할 정도로 폭이 넓었다. 휴전선 너머 남쪽에서 그 출구가 은폐되어 있는 것이 발견된 것이다. 처음에는 우리 쪽 경비병들도 무엇인지 몰랐다. 그러나 엄폐물을 걷어치우고 안으로 들어가보니 놀랍게도 널찍한 지하 갱도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그 출발점이 어디인지 알기 위해 이쪽 출구에서 불을 지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그 연기가 휴전선 너머의 북한군 쪽으로 시커멓게 치솟아 올랐다. 그 이상 명확한 증거가 있을 수 없었다. 더욱이 땅굴을 팔 때 사용한 굴착기의 톱니자국이 북쪽에서 파내려 온 것임을 여실히 입증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야당과 일부 지식인들은 이것을 믿지 않으려 했다. 도리어 정부에서 국민을 속여 '정권안보'에 이용하려 들고 있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후쿠다가 박 대통령을 만난 것은 한국에서 이같이 안보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을 때였다. 박 대통령은 후쿠다와 만나 안보 문제를 논의하는 가운데 자신의 죽음까지 거론하며 안보에 대한
결의를 이렇게 밝혔다.
 
"만일 북한이 쳐내려 온다면 나는 서울에서 한발짝도 물러나지 않을 겁니다. 선두에 나서서 싸우다 죽을 겁니다. 내가 죽는 편이 국민의 전의(戰意)를 더욱 강하게 해줄지도 모릅니다."
 
박 대통령의 비장한 이 한마디를 들은 후쿠다는 그때부터 박 대통령을 '진정으로 지도자다운 지도자' '사나이다운 사나이'로 마음 속에 각인한 것 같았다. 나와 나누던 대화에서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박 대통령이 비명에 이 세상을 떠나던 1979년 10월 26일 바로 그날, 세 번째로 서울에 들어왔다. 원래 한국을 방문한 후 돌아가서 일본의 안보 문제에 관한 기사를 기고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대신 그는 박 대통령에 관한 추모 기사를 썼다. 나는 그가 기사 속에 뼈있는 한마디를 맨 마지막에 남겨놓았던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그것은 박 대통령에게 사신(私信)을 보내 "과잉충성을 경계하십시오"라고 간언했다는 것이었다. 과잉충성, 이것을 그는 '과잉반대'가 불러오는 반작용으로 보았던 것일까.
 
 
김성진 전 청와대 대변인·문공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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