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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88고속도로 담양(潭陽) 톨게이트에서 나와 순창(淳昌)으로 가는 24번 國道를 타고 가다보면 외국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異國的인 풍경을 만나게 된다. 바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다. 이곳은 朴正熙 대통령 집권시절인 1970년대 초반 전국적인 가로수 조성사업 당시 내무부 시범가로 지정됐던 곳이다. 3~4년짜리 묘목을 심은 것이 매년 조금씩 자라 사진과 같이 하늘을 덮고 있는 울창한 가로수가 됐다. 거대한 나무에서 朴대통령의 숨결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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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거대한 메타세콰이아 나무를 뒤로하고 담양(潭陽)과 순창의 경계에 봉긋하게 솟아오른 강천산(剛泉山)을 찾았다. 해발 588m의 높지 않은 산이나 기암절벽(奇巖絶壁)이 많아 바위와 계곡,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최고의 절경을 빚어낸다. 사진은 계곡 초입에서 볼 수 있는 병풍 폭포의 모습이다. 폭포 아래 계곡에는 송어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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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산 중턱에서 마주친 '회문산 지구 전적비'의 모습. 이 지역은 6.25전쟁 이후에도 빨치산과의 전투가 있었던 지역이다. 전적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새겨져 있다.
《삼천리 금수강산 삼남의 지붕에 공산비적이 반거하게 된 것은 1950년 6월 25일 낙동강 방어선까지 남침했던 북괴군이 우리의 총반격에 다시 쫓겨 가게 되었다. 이곳 옥당골 순창은 1950년 7월 23일 북괴군 6사단 방호산 부대가 침범하였고 UN군의 인천상륙과 낙동강전선이 무너지자 그 잔당이 지방공비와 합류 일부가 이곳에 근거를 두게 됨으로서 부터이다. 특히 이곳 강천산 원등계곡은 패주한 인민군 6사단 고급 참모와 지방 일부 노동당 간부가 합세하여 혼합유격대를 편성 후방에서 투쟁하기로 결의한 위치이기도 하다. 당시 이들 적도의 세는 5천여 명에 달하였던바 첨험의 산세를 이용하여 도량하였고 그 지역이 이곳에서 동북간 회문산 839고지의 영산이며 풍수지리설에 天馬東走 鴻雁南飛 (천마동주 홍애남배)와 五仙圍碁(오선위기)는 文千武萬(문천무만)이 배출된다는 명산으로 여기에 공비의 총사령부가 위치 발호하였고 남으로는 험준한 산세 가마골은 제2의 거점으로 서편으로 여분산 내장산 일대를 유격거점으로 공비 독수리 번개 백암 왜가리 부대 등 13개 병단을 편성하여 양민학살과 납치 재물의 약탈과 방화 등 갖은 만행을 자행하니 낮에는 태극기 방에는 인공기 나부끼는 양상이 되었다. 이때 지리산 회문산 가마골 공비거점을 중심으로 국군2개 사단 경찰병력 2개 연대 주변 경찰서 의용대한청년단원특공대등이 힘을 모아 이들을 대적함으로써 1952년을 고비로 그 세력을 꺾고 1954년 10월에는 잔당조직의 뿌리를 잘라 드디어 이를 섬멸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건대 그때의 과정이 이루어지지 못했더라면 또한 군경과 일반지원단체의 고귀한 희생이 없었다면 어찌 오늘 이곳 곡창에서 격양가가 메아리 칠 수 있겠는가. 다시금 고개 숙여 그날 그들 임들의 충혼을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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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강천사(剛泉寺)는 신라 진성여왕(眞聖女王) 원년(887년)에 도선국사(道詵國師)에 의해 창건됐다. 고려 충숙왕(忠肅王) 3년(1316년) 덕현선사(德賢禪師)가 사찰을 중창하고 5층 석탑을 세웠다. 한때 12개 암자와 1천여 명의 승려들이 머물렀다고 한다. 그런데 임진왜란(壬辰倭亂)때 석탑만 남고 모두 소실됐다. 선조 37년 (1604년) 소요대사(逍遙大師)가 절을 재건했으나, 6.25전쟁으로 5층 석탑을 제외하고 모두 파괴됐다. 사진에 보이는 5층 석탑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탑으로 1959년 보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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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강천사(剛泉山)의 명물. 보기만 해도 아찔한 높이 50m의 구름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