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도 (山水圖)
作者未詳 朝鮮, 15世紀 末∼16世紀 初 비단水墨淡彩 39.7×60.2cm 日本 大和文華館 所藏
이 여섯 폭은 원래 8폭짜리 일본식 병풍의 가운데 부분 6폭에 한폭씩 나뉘어져 표구되어 있었던 것으로, 한 셋트로 묶여서 전해졌던 작품이다.
여섯 폭 중 세 폭의 화면 오른쪽 위에 각각 이장손(李長孫), 서문보(徐文寶), 최숙창(崔淑昌)의 이름이 매우 유사한 서체(書體)로 조그맣게 적혀 있다. 이들은 모두 15세기 후반과 16세기 초에 걸쳐 활동했던 화원(畵員)들로서, 성현(成俔, 1439∼1504)의 {용재총화(傭齋叢話)}에는 최숙창과 이장손에 대해 근래 이름은 있으나
화격(畵格)을 논할 정도는 못되는 화가로 언급되어 있다.
이장손은 1469년(예종 1) 낙산사(洛山寺) 동종(銅鐘)에 새겨진 보살상의 밑그림을 그리는 등 1516년(중종 11)까지 활동한 것이 확인되고 있으며, 서문보는 1483년(성종 14) 당시 도화서(圖畵署) 제조(提調)였던 강희맹(姜希孟, 1424∼1483)에 의해 9품 체아직(遞兒職)에 천거받아 논란을 빚기도 하였다.
이 작품들은 각 폭마다 서로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흡사한 화풍을 보여주고 있다. 전경(前景)에는 넓은 수면과 강안(江岸)의 모습을, 후경(後景)에는 연운(煙雲)이 짙게 깔린 원산을 배치하였는데, 안개 위로 솟아오른 산봉우리와 언덕의 표현에 미법산수화풍(米法山水畵風)이 나타나 있어 주목된다.
미법산수화풍은 중국 북송(北宋) 때의 문인화가인 미불(米 , 1051∼1107), 미우인(米友仁, 1086∼1165) 부자가 창시한 화풍으로서 횡(橫)으로 긴 큰 점, 이른바 미점(米點)을 겹쳐 찍어 산수의 형태를 표현하는 화풍으로, 비 개인 뒤나 안개가 짙게 끼어있는 습기가 많은 경치 또는 멀리 보이는 나무를 그릴 때 주로 사용되었다.
이 화풍은 중국 원대(元代)의 대표적인 미법산수화가인 고극공(高克恭, 1248∼1310) 이후 많은 문인화가들이 남종화(南宗畵)를 그릴 때 즐겨 사용하였다. 먹으로 미점을 찍은 후에 청록색 점을 덧찍은 방식이나, 연운이 짙게 깔린 자연의 분위기를 한껏 살리고 있는 경물 묘사 등 이 작품들에 나타난 화풍은 특히 고극공의 작품들과 매우
유사한 것이어서 남종화법의 중요한 지류인 미법산수화풍이 이 시기에 이미 조선에 전래되어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각 경물을 수평으로 배치하여 평원적(平遠的)인 구도를 보여주면서 넓은 공간감을 나타내는 것, 동글동글한 반두(礬頭)가 표현되지 않은 주산(主山)과 가라앉을 듯이 낮게 솟아있는 산봉우리의 형태 등은 한국화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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