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퇴장(退藏ㆍ일부러 묻음) 유물이 발견된 적은 종종 있으나 말흘리에서처럼 엄청난 양이 쏟아져 나온 예는 없다. 이 솥은 누가 왜 파 묻었던 것일까.
장엄구 등 사찰에서 쓰던 도구를 땅에 묻는 것은 종교적 의미가 있다. 하지만 말흘리 퇴장 유물은 전란 등 특별한 사정이 있어 급히 묻은 것으로 보인다. 쇳조각으로 대충 덮은 것이나 100장도 더 되는 금동장식판을 마구 쟁여 넣은 것이, 정성
스런 의례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이들 유물의 용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국립김해박물관은 불감(佛龕ㆍ불상을 모신 집 모양의 함)의
지붕 장식에 쓰였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추정한다. 비단을 덧댄 금동장식판의 형태와 문양이 감은사터 동탑 사리기(사리를 담는
그릇)의 천개(天蓋)를 연상시키는 점에 주목했다. 하지만 크기와 수량으로 미루어 사리기보다는 불감 장식이 아닐까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비슷한 시기
일본의 불감은
처마 밑에 장식판 등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
불감을 장식하는 장엄구였을 거라는 추정에 따라 이번 전시는 실제 불감을 만들어 함께 선보인다. 통일신라 이전 불감은 현재 남아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사리기의 천개와 일본 불감을 참조해서 제작했다. 처마에 장식판과 풍탁을 매달아 완성하고 보니 폭 2.5m에 높이 가 3.5m나 된다.
한국에는 이만큼 큰 불감이 없지만, 일본에는 높이 2m 폭 1m 이상의
대형 불감 유물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