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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년전 신라 보물 솥단지 누가 왜 묻었을까 - 김해박물관 창녕 말흘리 출토 유물전

淸山에 2011. 8. 31. 03:22

 

  

  

 

 
 
 
1200년전 신라 보물 솥단지 누가 왜 묻었을까
김해박물관 창녕 말흘리 출토 유물전
500여점 불교 관련 금속공예품 전시

 

사자 모양 다리가 달린 향로. 국립김해박물관 제공

 

 

땅 속에서 보물 솥단지가 나왔다. 지름 70㎝의 구덩이 안에 놓인 큰 솥은 변변한 뚜껑도 없이 쇳조각들로 대충 덮여 있었는데, 그 안에 불교 관련 금속공예품 500여 점이 들어 있었다. 꽃 모양, 삼각형, 오각형 등 여러 모양의 화려한 금동장식판 100여 점, 꽃봉오리 모양 추가 달린 19점의 금동 풍탁(풍경), 손잡이 달린 향로, 사자 모양 다리가 3개 달린 향로

2점, 자물쇠, 문고리…. 학자들은 1,200년 전 통일신라 시대 유물이고

 대부분 불전을 장식하는 장엄구라고 추정했다.

2003년 경남 창녕 말흘리에서 출토된 이 유물들을 공개하는 특별전이 국립김해박물관에서 30일부터 10월 30일까지 열린다. 8년 전 발굴 당시 막바지에 발견되어 널리 알려지지 못했던 것을 제대로 소개하는 자리다.

우리나라에서 퇴장(退藏ㆍ일부러 묻음) 유물이 발견된 적은 종종 있으나 말흘리에서처럼 엄청난 양이 쏟아져 나온 예는 없다. 이 솥은 누가 왜 파 묻었던 것일까.

장엄구 등 사찰에서 쓰던 도구를 땅에 묻는 것은 종교적 의미가 있다. 하지만 말흘리 퇴장 유물은 전란 등 특별한 사정이 있어 급히 묻은 것으로 보인다. 쇳조각으로 대충 덮은 것이나 100장도 더 되는 금동장식판을 마구 쟁여 넣은 것이, 정성스런 의례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이들 유물의 용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국립김해박물관은 불감(佛龕ㆍ불상을 모신 집 모양의 함)의 지붕 장식에 쓰였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추정한다. 비단을 덧댄 금동장식판의 형태와 문양이 감은사터 동탑 사리기(사리를 담는 그릇)의 천개(天蓋)를 연상시키는 점에 주목했다. 하지만 크기와 수량으로 미루어 사리기보다는 불감 장식이 아닐까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비슷한 시기 일본의 불감은 처마 밑에 장식판 등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

불감을 장식하는 장엄구였을 거라는 추정에 따라 이번 전시는 실제 불감을 만들어 함께 선보인다. 통일신라 이전 불감은 현재 남아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사리기의 천개와 일본 불감을 참조해서 제작했다. 처마에 장식판과 풍탁을 매달아 완성하고 보니 폭 2.5m에 높이 가 3.5m나 된다. 한국에는 이만큼 큰 불감이 없지만, 일본에는 높이 2m 폭 1m 이상의 대형 불감 유물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