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자 김은주씨 논문] 대한제국 시기 최초 설계도 발견…
"귀빈 접대·집무용 시설 아니다"
광복후 자료에 기초한 복원 작업 크게 바뀌어야… 궁인들 이용 1층·지하 계단,
침실 앞 베란다 등 새로 확인
2012년 완공을 목표로 복원 중인 덕수궁(사적 제124호) 석조전. 그러나 석조전 '원형'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광복 후 자료를 기초로 복원이 진행돼왔다.
1898년 존 레지날드 하딩(John Reginald Harding·1858~1921)이 설계한 당시 설계도(입면도)와 내부 평면도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건축학자 김은주(44)씨는 18일 "
일본 시즈오카(靜岡)현 하마마쓰(濱松)시립도서관에서 대한제국시기의 석조전 첫 설계도 2장과 층별 평면도를 찾았다"며 "덕수궁미술관을 설계한 일본인 나카무라 요시헤이 관련 자료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고 밝혔다. 슈투트가르트대 연구원인 김씨는 이 내용으로 '석조전 앙상블'이라는 논문을 써 최근 건축공학 박사학위가 통과됐다. 김씨는 "원 설계도도 없이 복원 중인
문화재청의 복원 방향은 대폭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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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황궁"석조전은 국내 완벽하게 남아 있는 팔라디언(Palladian·신전을 본뜬 구조) 양식 건물. 이번에 발견된 입면도 2장은 석조전 외관을 전면에서 바라본 형태로 1898년 2월 20일 작성됐으며 'Imperial Palace, Seoul(서울의 황궁)'이란 제목이 붙어 있다. 왼쪽 아래에는 설계자인 하딩의 서명이 있다. 김씨는 "석조전의 성격은 기존에 알려진 것처럼 고종이 외부 귀빈을 접대하고 집무를 보기 위한 공간 정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고종이 황궁을 만들기 위해 설계한 것임을 알 수 있다"며 "그동안 덕수궁의 중심 건물로 알려진 중화전이 준공(1902)되기 4년 전에 이미 석조전 설계를 마쳤으므로 대한제국기 덕수궁의 중심 건물은 석조전"이라고 했다. 김씨가 확보한 도면에서는 정면에서 바라본 문의 모습, 창의 단면 디테일까지 볼 수 있다.
▲ 1898년 하딩이 설계한 석조전 설계도에 적힌 제목‘서울의 황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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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처에서 황궁으로덕수궁은 조선조 왕궁 중에서도 규모가 작았다. 원명은 '경운궁(慶運宮)'. 경운궁이 관심을 모으게 된 것은 1896년 고종이 서울 정동 러시아공사관으로 몸을 피한 이른바 '아관파천(俄館播遷)' 이후이다. 이듬해
러시아 공사관을 나온 고종은 바로 이웃인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겼고 전각을 새로 세웠으며 그해 9월 대한제국(大韓帝國)을 선포한 후 경운궁은 정궁(正宮)이 됐다. 덕수궁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1907년. 이번에 발견된 설계도에 따르면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할 즈음, 하딩에게 황궁(석조전) 설계를 맡겨 명실상부한 제국의 위용을 갖추려 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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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공간 구조 밝혀져발견된 도면은 매우 상세한 것이 특징. 층별로 확인된 평면도를 통해 내부 구조까지 파악할 수 있다. 일본어로 '양탄자' '타일' 등 마감재가 적혀 있어 공간의 역할과 성격을 구별할 수 있다. 세부 구획까지 확인된다. 특히 3층은 기초 자료가 전혀 없어 애를 먹었던 공간. 이번 평면도를 통해 침실 앞에 베란다가 있었단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고, 1층과 지하에는 궁인들이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계단이 연결돼 있음도 처음 밝혀졌다.
따라서 석조전 복원 방향은 상당 부분 바뀌어야 할 상황이다. 현재 복원은 20~30% 공정이 진행됐지만, 각 층의 공간 구획은 확정된 상태다. 김씨는 "현재 '담화실'로 규정하고 복원 중인 공간이 원래 평면도에는 욕실(화장실)이 있는 주거공간인 것을 비롯해 상당수 기능이 잘못 배치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서 문화재청 궁능문화재과 사무관은 "원 설계도가 발견됐다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얼마든지 고증을 거쳐 철저히 복원할 것"이라고 했다.
☞ 석조전
서양식 근대 건축물인 석조전은 1909년 완공돼 1919년까지 대한제국 황실이 사용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면서 내부가 크게 훼손됐다. 1933년 이후 이왕가미술관, 미·소공동위원회 사무실, 국립중앙박물관, 궁중유물전시관 등으로 사용되면서 대한제국기의 원형을 찾지 못했다. 문화재청은 2012년 석조전을 복원 완료한 후 ‘대한제국 역사관’으로 활용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