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해역에 중국의 첫 항공모함 ‘바랴크’가 몰고 온 격랑이 일고 있다. 바랴크가 10일 시험운항에 들어간 이래 미국 베트남 인도 일본 등 태평양 인도양 지역 열강들은 중국의 항모시대가 몰고 올 지각변동에
대처하기 위해 분주하다.
사실 ‘바랴크’라는 이름은 한 세기 전에도 동북아시아를 격랑에 몰아넣었던 이름이다. 바랴크의 어원은 발틱 지역에서 건너온 바이킹족을 이르는 ‘바랑기아’이다.
‘바랴크’라는 이름의 배가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107년 전이다.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1904년 2월 9일 인천 제물포 앞바다. 홀로 일본 전함 6척과 맞서다 수세에 몰린 러시아 순양함 바랴크는 나포 위기에 처하자 ‘수장(水葬)’을 택했다. 러시아군은 배 밑에 구멍을 뚫어 배를 침몰시켰다. 그러나 일본 해군은 이듬해 바랴크를 물 밑에서 건져 올려 ‘소야(宗谷)’라는 이름을 붙여 사용했다.
1916년 일본이 러시아에 되돌려 준 바랴크는 1917년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자 수리를 위해 영국으로 보내졌다. 3년 뒤 독일이 바랴크를 샀다. 그러나 이 배는 1925년 독일로 예인되다 스코틀랜드 앞바다 암초에 걸려 침몰했다.
새로운 바랴크가 탄생한 것은 1988년 12월 4일. 이번에는 소련의 항공모함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70% 정도 건조됐던 배는 소련의 붕괴와 함께 자금 사정으로 1992년 취역도 못해 보고 고철 신세가 되는 수모를 겪었다. 엔진과 키도 없는 이 배는 우크라이나를 거쳐 1998년 2000만 달러에 홍콩의 해상 카지노로 개조하겠다고 밝힌 중국 여행사에 팔렸다.
흑해에 있던 바랴크가 중국으로 오는 여정도 험난했다. 타임지에 따르면 터키가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하기엔 배가 너무 크다며 막는 바람에 1년 반이나 발이 묶였고, 이후 이집트에서도 수에즈 운하 통과를 거부해 멀리 희망봉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우여곡절 끝에 중국에 도착한 바랴크는 올 8월 제물포의 서해 건너편인 중국 다롄(大連)에서 항공모함으로 부활했다.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제물포에서 침몰된 러시아 순양함 바랴크의 깃발.
1904년 제물포에서 침몰될 당시 배에 걸었던 바랴크의 깃발은 당시 일본이 건져 서구를 물리친 상징으로 자랑했고, 일본 패망 뒤 인천시립박물관에 소장됐다. 지난해 11월 러시아에 2년 임대해줘 중앙해군박물관을 시작으로 러시아 전역 박물관을 돌며
전시되고 있다.
바랴크라는 이름은 내년이면 사라진다. 중국은 인민해방군 건군 기념일인 내년 8월 1일 바랴크를 정식 취역하면서 이름을
‘스랑(施琅)’으로 바꿀 예정이다. 스랑은 대만을 공격해 청의 영토로 편입한 청나라 제독이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