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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아름다움, 매화(梅花)

淸山에 2011. 8. 14. 20:30

 

  

  

 

 
 

차가운 아름다움, 매화(梅花)

 

 

 

 

매화(梅花)는 예나 지금이나 시인묵객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아왔다.
근래 중국에서는 모란 대신 매화를 나라꽃으로 정했다 한다.
말하자면 모란이 가졌던 왕좌(王座)를 매화가 차지한 셈이다.
우리는 여기서 또 인정(人情)의 변화를 본다.


모란의 농염(濃艶)함보다 매화의 차가운 아름다움을 좋아하고,

모란의 기이한 향기 보다 매화의 은은한 향기를 사랑하는 듯 하다.

 


고려 때 시인 정지상(鄭知常)은 매화 그림을 잘 그렸고, 어몽룡(魚夢龍)의 매화는

조선에 으뜸으로 일컬어졌다.

 

초록빛 물가에는 가는 대와 맑은 매화
동풍에 봄뜻이 규방에 가득해라.

 

細竹淸梅綠水涯 東風春意滿香閨

 

이것은 보한재(保閒齋) 신숙주(申叔舟)가 화첩(畵帖)에 쓴 시구다.
풍류가 넘쳤던 왕자 안평대군(安平大君)은 자신의 거처인 비해당(匪懈堂)을 노래한 48수의 연작시 가운데
〈매화 창가에 흰달[梅?素月]〉을 가장 먼저 노래했다.


어스름 달밤에 그윽한 향기가 스며들 때,

그 향기는 고요한 주위의 공기를 청정하게 하고 신성하게 해준다.

  

 
고금에 매화를 노래한 시인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송나라 때 화정(和靖) 임포(林逋)처럼 매화의 깊은 경지를 음미할 줄 알았던 사람은 없다.
매처학자(梅妻鶴子), 즉 매화를 아내 삼고 학을 아들 삼던 그가 아니고는 다음 시와 같은 경지를 결코

그려낼 수 없을 것이다.

 

물은 맑고 얕은데 그림자 빗겨있어
달 뜬 황혼에는 그윽한 향기 떠다니네.

 

?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

 

이는 실로 매화시(梅花詩)가 있은 이래로 천고에 빼어난 가락이다.


중국의 나부산(羅浮山)도 매화로 이름난 곳이고 향도(向島)도 매화로 유명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매화로 이름난 곳이 없다.


남쪽 지방 따뜻한 곳에 매화가 있기는 해도, 겨울에 피는 동매(冬梅)가 아니라 봄에 피는 춘매(春梅)다.

 


서울 지역 꽃을 애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예전부터 매화를 길렀지만,
이 또한 땅에서 자라는 지종(地種)이 아니라 화분에 심은 분재일 뿐이다.


매화를 많이 재배하여 구경거리로 보려 할 때는 일종의 온실 장치를 했다.
경성방송국 자리는 바로 예전 추사 김정희(金正喜) 선생의 선대로부터 이어오던 별장 터로,

아주 이름 높은 홍원매실(紅園梅室)이 있던 곳이다.

 

대원군의 운현궁에도 매실(梅室)이 있었고, 이 밖에도 서울에는 매실 있는 집이 흔하였다 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일찍이 매화를 품평하여 이렇게 말했다.
“천엽(千葉)이 단엽(單葉)만 못하고 홍매(紅梅)가 백매(白梅)만 못하다.
반드시 백매 중에 꽃떨기가 크고 근대(根帶)가 거꾸로 된 것을 골라서 심어야 한다.”
〈매화타령〉 중에 이러한 것이 있다.

 

매화 옛 등걸 봄 철이 돌아온다
옛 피던 가지마다 피염즉도 하다마는
춘설(春雪)이 하도 분분하니
필지 말지 하더매라.


산중에 눈 보라 몰아치는 밤
쓸쓸히 책상에서 글을 읽는다.
주인과 매화가 함께 웃으니
봄빛은 초가집에 벌써 왔구나.

 

風雪山中夜 蕭然一榻書
主人梅共笑 春色在茅廬

 

이것은 구당(?堂) 유길준(兪吉濬) 선생(兪先生)의 득의작으로 널리 오르내리는 작품이다.
일전 매화를 말할 때 이 시를 뺀 것은 퍽 유감이다.

 


그리고 조선시대 종실 중에 임포(林逋) 같은 이가 한 분 있어, 얼마나 매화를 끔찍이 아꼈던지,
평생 매화의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죽을 때 머리맡에 놓인 분매(盆梅) 한 가지를 꺾어 맡아보고,
인하여 매화를 두고 절명시(絶命詩)를 지은 것이 있다.


이 로맨틱한 일화를 지난번 매화를 쓰면서 누락시킨 것은 또한 큰 실수다.
이밖에도 매화에 대한 고금의 시조가 많지만, 그것을 골라서 넣지 못하였다.

  


 매화는 중국 쓰촨성이 원산지로 우리나라에는 약 2000년 전 고구려 때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에는 약 1200년 전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국화가 매화이고 매화 사랑이 지극하다.
한국 사람의 매화 사랑도 중국·일본과 비슷하다.

 

이어령 선생이 책임 편집한 <매화>라는 책을 보면 한·중·일 삼국의 공통 문화코드로

매화에 대한 해설을 자세히 볼 수 있다.


이상희 선생의 책 <매화>와 안형재 선생의 책 <한국의 매화> 책을 보면
우리 문화에 담긴 매화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은 세상의 이치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르쳐준다.
추운 겨울 끝자락에 마른 나뭇가지에서 피어난 매화 향은 바라보는 사람마다 참된 길을 일러주기도 하고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나는 매화를 보며 어떤 삶의 슬기를 얻을까?

 

물 오른 버들가지의 빛깔과 은은한 매화향에 취해 봄을 기다려 보지만
개나리 목련도 이르고 강남 갔던 제비가 제비꽃과 함께 돌아올 날도 멀었다.
괜히 설레는 맘에 까닭 모를 싱숭생숭함은 왜일까?-정대수

 

 

 
 

 

시인 과 농부 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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