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와 이승만은 대척점에서 존재한다.
지금의 젊은 세대가 이승만에게 다가가기 어렵다.
“이승만은 4월 혁명을 외면하거나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학생들의 하야 요구를 받아들였다. 시대의 흐름을 수용했다. 시위 부상자들의 병실을 찾았다. ‘불의(不義)에 분노하지 않으면 젊은이가 아니다’라고 그들을 위문했다. 지금 중동 이슬람의 시민 시위 과정과 비교해봐라. 50여 년 전 이승만은 달랐다.”
저항은 이승만의 젊은 시절 장면이다. 잘생긴 얼굴에다 개화파로의 지적 단련,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분개와 좌절, 조선왕조의 무능과 부패 규탄, 종신형 선고, 고종의 대미 밀사, 그리고 독립투쟁, 일본이 그의 목에 건 30만 달러의 현상금, 시체를 넣은 관 틈에 숨어 상하이로 밀항-. 치열한 삶이다. 거
기에 얽힌 긴박한 드라마는 예술적 감수성을 자극한다.
4·19 혁명은 민주화의 상징이다. 위대한 성취다. 그 업적을 기릴수록 이승만은 초라해졌다. 그 상황을 교묘히 악용하는 세력이 있다. 3류 종북 좌파들이다. 그들은 해방공간의 역사·이념의 대결을 김일성 승리로
귀결시킨다.
이를 위해 이승만에 대한 경멸감을 주입한다. 인물에 대한 자학적(自虐的) 사고(思考) 습관을 배양한다.
그들은 이승만의 친일파 기용 논란을 키우면서 독도의 평화선 선포 결단을 축소한다. 이승만과 김구 사이도
이간질한다. 그 세력은 4월 혁명을 이승만 폄하에 영리하게 활용하고 있다.
4·19 주역들은 이승만을 역사의 족쇄에서 풀어줘야 한다. 4·19 세대가 이승만에 대한 평가를 독점할 수
없다. 이승만 생애에 대한 젊은 세대의 역사적 상상력을 차단해선 안 된다. 다수의 젊은 세대는
균형감각을 가지려 한다.
이기택(민주평통 수석부의장)씨는 “4·19 혁명의 진정한 완성은 북한의 민주화”라고 역설한다.
그는 4·19의 간판이다. 그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도 이승만의 성취와 공존해야 한다. 4·19와 이승만의 화해는 현대사의 성숙이다. 일류 국가로 가기 위한 역사 인식의 혁신이다.
박보균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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