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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 인권의 불편한 진실 [박보균의 세상탐사]

淸山에 2011. 6. 1. 11:31

 

 

 
 
   
 [박보균의 세상탐사] 카터 인권의 불편한 진실
[중앙일보] 입력 2011.04.27 00:03 / 수정 2011.04.27 08:51
 
박보균
편집인
 
지미 카터의 이미지는 복잡하다. 순수하고 고매한 인상이다. 하지만 편향과 위선적 면모도 드러난다.
 그의 대통령 재임 때(1977년~1981년 1월)는 미국의 침체기다. 그 시절 카터에 대한 평점은 낙제다. 그의 리더십은 어설펐고 무기력했다. 퇴임 후는 달라졌다. 그는 사랑의 집짓기 해비타트 운동에 나섰다. 국제 분쟁의 중재자로 활약했다. 전직 대통령의 롤 모델이라는 갈채를 받는다.
 
 그에 대한 평판은 이처럼 엇갈린다. 인권 분야는 혼란스럽다. 인권은 카터를 상징한다. 그를 해부하는 지배적 단어다. 하지만 보편성을 잃었다는 논란과 의문은 계속된다.
 
 동유럽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 그곳에 가면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공산독재를 기억하게 한다. 89년 12월 시민혁명은 그를 파멸시킨다. 그곳의 군사박물관은 유혈의 반정부 드라마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박물관 한쪽에 빛바랜 사진이 눈길을 끈다. 카터와 차우셰스쿠가 나란히 있다. 78년 4월 워싱턴 정상회담이 배경이다. 자료 속에 카터의 환영사가 적혀 있다. “우리(카터와 차우셰스쿠)는 신념과 목표를 공유한다. 정치와 경제의 공정한(just) 체제를 갖고, 개인적 자유를 누리고 … 우리는 인권(human rights)을 향상시켜야 ….”
 
 루마니아의 상황은 그 반대였다. 국민은 광기(狂氣)의 독재자 밑에서 신음했다. 71년 6월 차우셰스쿠는 북한을 방문했다. 평양의 주체사상을 배워갔다. 그의 개인숭배 정치는 교활해졌다. 비밀경찰의 감시와 고문, 살해는 잔혹해졌다. 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루마니아 출신 헤르타 뮐러다. 뮐러 소설은 차우셰스쿠 시절의 절망적이고 암울한 삶을 그리고 있다.
 
 카터는 차우셰스쿠의 공포 통치를 몰랐을까. 그의 발언은 어이없고 충격적이다. 방명록에 관람객들의 감상문이 있다. “카터의 발언은 역겹고 위선적이다. 루마니아인에게 좌절과 고통을 선사했다. 역사는 음모로 이뤄진다는 게 차우셰스쿠의 철학이다. 카터는 조롱당했다.”
 
 다음 해 6월 카터는 서울에 왔다. 그는 주한미군 철수를 놓고 대통령 박정희와 충돌했다. 박정희는
핵과 미사일 개발의 자주국방으로 맞섰다. 유신독재는 카터에게 호재였다. 그는 박정희를 비난했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카터는 박정희에게 냉혹했다. 하지만 사상 최악의 기괴한 독재자 차우셰스쿠에겐 찬사를 보냈다. 인권은
 거역하기 힘든 카리스마적 명제다. 공평과 일관성이 생명이다. 하지만 카터의 인권 잣대는
 이중적이고 편파적이다.
 
 미국 남부 조지아주의 애틀랜타에 ‘카터 센터’(박물관 겸 도서관)가 있다. 박물관의 주제는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와 봉사다. 카터의 성취와 집념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북한 주석 김일성의 선물을 전시한 적도 있다. 카터는 94년 평양에 갔다. 불발에 그쳤지만 남북한 정상회담을 주선했다.
 
 그곳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마틴 루서 킹 목사의 기념관이 있다. 기념관은 흑인 차별의 비극적 역사를 처절하게 드러낸다. 흑인 지위를 높이려는 킹 목사의 고뇌와 의지를 감동적으로 소개한다. 카터 대통령 시절에도 흑인의 실질적 인권은 열악했다. 조지아주에 오거스타 골프클럽이 있다. PGA 마스터스대회 장소다. 70년대 흑인은 그곳에 접근조차 못 했다. 카터는 자기네 흑인문제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의미 있는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그런 채로 그는 인권의 적용 대상을 외국으로 돌린 것이다.
 

 

26일 ‘엘더스(The Elders)’ 대표단을 이끌고 평양에 도착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왼쪽 둘째)이 백화원 영빈관에서 박의춘 외무상(왼쪽)과 악수하고 있다. 카터 전 대통령 뒤로 그로 브룬틀란 전 노르웨이 총리, 마르티 아티사리 전 핀란드 대통령,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왼쪽부터)이 서 있다. [AP=연합뉴스]

지금 카터는 평양에 가 있다. 그는 ‘인도주의’를 언급한다. 식량위기의 북한 주민을 인도적으로 돕자고 강조한다. 공감을 얻을 만하다. 하지만 그는 ‘인권’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북한의 세습독재, 정치적 탄압, 주민 통제에 대해 침묵해왔다. 인도주의의 핵심은 인권이다. 카터의 인도주의에는 인권이 빠져 있다. 인도주의를 외치면서 인권 문제는 외면한다. 치명적인 결함이고 꺼림칙한 미스터리다. 때문에 카터의 태도가 순수하고
진정성을 갖춘 듯하면서도 비겁하고 정직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카터는 이제 말해야 한다. 북한의 인권 실태에 대한 관점과 판단, 감성을 드러내야 한다. 북한 방문 뒤 서울에 들를 때가 그 기회다. 그러지 않으면 그의 행적은 국방위원장 김정일 외교 쇼의 들러리로 그친다. 김정일-정은 부자를 만나 어떤 결과물을 내놓아도 마찬가지다. 인권 없는 평양 방문은 불신과 의심을 낳는다.

박보균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