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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를 이긴 聖經

淸山에 2011. 5. 31. 18:25
 


 

 

 


공산주의를 이긴 聖經
 
 
 "惡에게 지지 말고, 善으로 惡을 이기라."
趙甲濟   
 
 *로마서 12장9절: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惡을 미워하고 善에 속하라.
 (Love must be sincere. Hate what is evil, cling to what is good)
 *로마서 12장17절: 아무에게도 惡을 惡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善한 일을 도모하라.
 (Do not repay anyone evil for evil. Be careful to do what is right in the eyes of everybody)
 *로마서 12장21절: 惡에 지지 말고, 善으로 惡을 이기라.
 (Do not be overcome by evil, but overcome evil with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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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터의 처방: "惡魔를 조롱하라"
 惡魔를 쫓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 성경을 읽어줘도 굴복을 하지 않으면, 야유하고 조롱하라. 惡魔는 경멸을 견디지 못한다."
 趙甲濟
 
  "惡魔(악마)를 쫓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 성경을 읽어줘도 굴복을 하지 않으면, 야유하고 조롱하라. 惡魔는 경멸을 견디지 못한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한 말이다. '惡魔'라는 단어 대신 從北좌익이란 말을 넣고 '성경' 대신에'헌법' 을 代入(대입)하면 이렇게 된다.
 
  "從北(종북)좌익들을 소탕하는 좋은 방법이 있다. 憲法을 갖다대어도 승복하지 않을 때는, 야유하고 조롱하라. 그들은 경멸을 견디지 못한다."
 
  루터는 惡魔를 물리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惡魔가 시키는 것을 거꾸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惡魔가 당신을 괴롭힐 때마다, 친구를 만들고, 술을 퍼 마시며, 농담을 하고 실 없는 소리도 하면서 즐겁게 살아라. 惡魔가 사소한 것들로 우리의 양심을 어지럽히지 못하게 하려면 우리는 때로는 暴飮(폭음)을 하고, 잘 놀고, 죄도 적당히 저지를 필요가 있다. 의식적으로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 惡魔한테 넘어간다. 惡魔가 너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면 이렇게 말하라. '너가 마시지 말라고 했으니 나는 멋대로 마시겠다'"
 
  공산주의자나 김정일 세력이라는 악마를 대할 때는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李明博式 中道, 즉 뜨듯미지근한 태도로는 이길 수 없다는 警告(경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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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틴 루터가 작곡, 작사한 찬송가
 찬송가 585장: 내 주는 강한 城이요(A Mighty Fortress Is Our God)
 趙甲濟
 
  찬송가 585장: 내 주는 강한 城이요(마틴 루터 작사, 작곡)
  A Mighty Fortress Is Our God
 
 
  1. 내 주는 강한 城이요. 방패와 兵器 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天下에 누가 당하랴.
 
  2. 내 힘만 의지 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도다.
  힘 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 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萬軍의 主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3.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 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라.
  친척과 財物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 하리라.
 
  이 찬송가는 종교개혁가인 독일사람 마틴 루터가 1527~1529년 사이에 작사, 작곡한 노래이다. 영어로 번역되어 더 유명해졌다. 가사는 詩篇에 근거한 것이다. '개혁의 戰頌歌'("Battle Hymn of the Reformation")란 별칭을 갖고 있다. 17세기 종교전쟁 때 新敎 군대 편에서 싸웠던 스웨덴軍이 이 노래를 軍歌처럼 불렀다. 바하, 멘델스존, 와그너 같은 작곡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에 이 노래의 곡을 부분적으로 사용하였다. 예컨대 리처드 와그너는 1871년 普佛전쟁에서 이기고 개선한 빌헤름 1세를 위한 '황제 행진곡'에 루터의 곡을 삽입하였다. 루터는 기독교의 儀式으로서 음악, 특히 찬송가를 매우 重視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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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송가 521장: 어느 민족 누구게나
 
  어느 민족 누구게나 결단할 때 있나니
  참과 거짓 싸울 때에 어느 편에 설 건가
  주가 주신 새 목표가 우리 앞에 보이니
  빛과 어둠 사이에서 선택하며 살리라
 
  고상하고 아름답다 진리 편에 서는 일
  진리 위해 억압받고 명예 이익 잃어도
  비겁한 자 물러서나 용감한 자 굳세게
  낙심한 자 돌아오는 그날까지 서리라
 
  순교자의 빛을 따라 주의 뒤를 좇아서
  십자가를 등에 지고 앞만 향해 가리라
  새 시대는 새 의무를 우리에게 주나니
  진리 따라 사는 자는 전진하리 언제나
 
  악이 비록 성하여도 진리 더욱 강하다
  진리 따라 살아갈 때 어려움도 당하리
  우리 가는 그 앞길에 어둔 장막 덮쳐도
  하나님이 함께 계서 항상 지켜 주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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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송가 521장 작사자 제임스 러셀 로웰은 19세기 지성인
 
 
  <작사자 소개>
  제임스 러셀 로웰
  James Russel Lowell (1819-1891)
  하버드大 교수와 駐英公使를 지낸 미국의 지성인
 
  보스턴 근교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자연을 벗하며 시와 소설을 읽고 라틴어를 익힘. 1838년 하버대 졸업 후 장래 진로를 놓고 사업, 목회, 의학, 법학 사이에서 번민하다 법학을 선택, 하버드법대를 거쳐 변호사 개업. 법대 재학 중에 시와 산문을 여러 잡지에 기고함.
 
  1840년 가을 시인 마리아 화이트와 약혼. 순결의식과 정의감이 강한 그녀의 영향으로 방종과 노예제도의 폐악을 시정하는 운동에 뛰어들어 존경을 받음.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월간 문학지 ‘파이오니어’를 창간해 호돈, 에머슨, 휘티어, 포우, 스토리, 파슨즈 등 훗날 미국 문단의 거목들과 교유했으나 불과 3호를 내고 눈병과 경험부족으로 폐간함으로써 문학에의 애착이 깊어짐.
 
  결혼 후 노모봉양에다 아내의 건강악화로 한때 은둔했다가 노예제도에 깊이 자각하여 일간지에 시를 기고. 1846년 런던데일리뉴스의 특파원직을 맡은데 이어 1848년 뉴욕의 노예제도 반대단체와 유대를 맺고 맹렬한 정신운동을 전개하여 문필가들과 교양인들 사이에 명망이 높았다. 멕시코전쟁과 노예제도 반대운동에 적극 나섬. 모친 별세 후에 병약한 아내와 어린 자녀를 데리고 1851년 이탈리아로 갔다가 부친 와병 소식을 듣고 이듬해 11월 귀국. 1853년 10월27일 아내와 사별한 다음 비통한 가운데 새로운 정신활동 전개.
 
  1855년 겨울 조카의 권유에 따라 보스턴의 로웰대학에서 영국시인론을 강의함으로써 비평과 문학사로 입지를 굳혀 롱펠오의 뒤를 이어 하버드대 현대어 석좌교수로 추대되자 1년 해외연수 조건으로 수락. 독일에서 주로 지내다 이탈리아를 방문하여 프랑스어와 독일어 이태리어 스페인어를 두루 섭렵하고 1856년 귀국, 강의를 시작하여 20년간 교수직 유지. 1856년 딸의 보모와 재혼. 1875년 어틀랜틱지(The Atlantic: 오늘날도 발행됨) 창간과 동시에 초대 편집인으로서 높은 문학수준과 대담한 공론 제기로 주목을 받음.
 
  1877년 헤이스 대통령으로부터 스페인 주재 공사로 임명돼 스페인어와 문학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수완을 발휘. 1880년 영국 공사 발령을 받고 런던으로 옮겨 1885년 아더 대통령 퇴임까지 재임. 문필가로 영국에서도 이미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공식행사의 연설가로 자주 초빙됐다. 임기가 끝날 무렵 두 번째 아내의 사망으로 비탄에 잠김. 귀국 후에도 수차례 영국을 방문하여 세계적 명사가 됨. 하버대 최고의 표창을 받고 옥스퍼드, 캠브리지, 세인트앤드류스, 에딘버그, 볼로냐 등 유수대학에서 명예학위를 받음.
 
  1891년 8월12일 엘름우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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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틴 루터: 한 개인이 역사를 바꾼 경우
 知性과 용기, 문장력과 인쇄술이 그를 지켜냈다.
 趙甲濟
 
  역사를 바꾼 용기-마르틴 루터와 종교개혁
 
 
  13세기부터 이탈리아의 북부지방을 중심으로 일어난 문예부흥, 15세기부터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중심으로 시작된 지리상의 대발견(또는 해양진출)과 식민지 개척, 16-17세기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난 종교개혁과 종교전쟁, 18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산업혁명과 帝國주의의 확산, 18-19세기에 걸친 프랑스의 대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19세기의 국민국가 건설과 서구 민주주의의 정착, 20세기의 두 차례 세계전쟁과 실패한 공산혁명.
 
  이렇게 세계사의 흐름을 정리해놓고 보면 마르틴 루터가 주도한 종교개혁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조직의 힘이 아니고 한 개인의 영웅적 결단에 의해서 역사의 흐름이 바뀌고 그 뒤의 세상이 달라진 정도로 따질 때 예수의 십자가刑, 루터의 종교개혁,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 먼저 떠오른다.
 
  1517년 10월31일 독일 비텐베르크 대학의 신학교수 마르틴 루터가 교황청을 상대로 도전장을 낸 행동은 조직적이지도 계획적이지도 않았다. 오직 그 한 사람의 분노와 정의감이 촉발시킨 변화였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개인행동이자 용기였다.
 
  영국의 토머스 칼라일은 名著 '영웅숭배론'에서 "용기를 특징으로 하는 튜턴 민족중에서, 그보다 더 용기 있는 인물이 살았다는 기록을 찾을 수 없다"고 썼다. 그는 또 "자연과 사실의 진정한 아들 루터, 그를 보내주신 데 대해 작금의 수백년, 그리고 앞으로 올 수백년은 하늘에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고 했다.
 
  칼라일은 특히 1521년 4월17일 독일 보름스에서 열린 神性로마제국의 국회에서 루터가 교황청 비판의 자세를 견지한 것을 근대 유럽사상 최대의 장면이라고 평가했다.
 
  1517년 루터의 95개조에 의해 종교개혁에 불이 붙은 뒤 이는 독일을 중심으로 하여 서구로 번져갔고 사회, 정치혁명의 성격을 띠었으며 결국은 국가간의 전쟁으로 발전했다. 1517년에 시작하여 30년 전쟁이 끝난 1648년까지 西유럽은 카톨릭편과 프로테스탄트편으로 갈려 피비린내 나는 전쟁, 암살, 內戰, 혁명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인간의 신념을 기준으로 하여 편을 가르고 피를 흘렸다는 점에서 20세기의 이념대결과 비슷하다.
 
  이 종교개혁과 종교전쟁의 열병을 가장 슬기롭게 극복한 나라가 영국이었다. 영국 정도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갈등으로 해결한 나라는 프랑스였고 最惡의 代價를 치른 것이 독일과 스페인이었다. 이 때문에 國力 소모가 적었던 영국 프랑스가 17, 18세기에는 선두에 나서고 독일과 스페인은 後進하였다. 16-17세기 약100년간 독일이 종교분쟁에 휘말려 國力을 소진한 대가로 프랑스에게 밀린 것을 극복하는 데는 1870년의 普佛전쟁에서 승리하기까지 약230년이 걸렸다.
 
  이는 20세기 들어서 자본주의의 약점을 파고든 사회주의의 열병을 많이 겪은 러시아, 중국, 북한, 월남, 東歐가 주변 국가들에 비교하여 후진한 것과 비슷하다.
 
  마르틴 루터가 불길을 당긴 종교개혁에 의해서 인류의 사는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중세 유럽을 정신적으로(때로는 정치적으로) 지배하던 교황청의 절대적 권위가 무너졌다. 카톨릭 교회를 중심으로 한 汎유럽적인 권위가 약화된 틈을 타서 민족주의와 민주주의가 進前하였다. 교황청의 권위에 도전한 프로테스탄트 정신은 개인주의, 人權, 자본주의의 윤리를 확산시키면서 산업혁명과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가치관으로 뿌리내렸다. 기성질서의 큰 기둥을 무너뜨린 종교개혁은 교회의 압제로부터의 인간해방이란 성격을 띠었다.
 
  이 시기 인간해방의 핵심은 종교의 자유, 그에 따른 언론의 자유 같은 것들이었다. 인류의 자유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종교개혁은 엄청난 인명손실이란 代價를 치렀다. 30년 전쟁으로 독일의 인구는 3분의 1이 줄었다고 한다. 독일의 피해는 2차세계대전 때보다도 더 참혹했다는 것이다.
 
  서구가 이슬람권이나 동양유교문화권보다도 앞설 수 있었던 여러 이유중의 하나는 종교개혁이다. 종교개혁을 통해서 자유의 폭을 넓힌 西歐와 그런 개혁이 이뤄지지 않았던 이슬람과 유교문화권의 차이는 후진국과 선진국의 차이로 나타났다. 인간이 도그마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찾으면 그 자유만큼 물질적 성장과 생산과 창조가 이뤄지고 이것이 근대화(산업화와 민주화)와 선진화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일으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용기에 대해서 알아보자. 修道士 겸 교수였던 마르틴 루터가 1517년10월의 마지막 날에 독일 작센 공국의 비텐베르크城 교회 정문에 라틴어로 '95개조'를 써붙였을 때 그 내용은 온건했다. 이 대자보의 주제는 '형벌면제 권한의 선포에 대한 논쟁'이었다. 이 대자보에 루터가 쓴 초대장은 겸손하기도 했다.
  <다음 제안들이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토론될 것입니다. 루터 신부가 토론을 진행합니다. 토론을 할 수 없는 분들은 서면으로 의견을 제출해주시기 바랍니다>
  루터는 이 95개조의 사본을 마인츠 대주교 알프레히트에게 보내는 한편 이 글이 널리 읽히도록 하려는 뜻에서 독일어로 번역하여 인쇄한 다음 관련자들에게 돌렸다. 당시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활판 인쇄술이 실용화되고 있었다. 종교혁명은 인쇄술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한 개인의 분노와 정의감으로써 세계사를 바꾼 마르틴 루터는 1483년에 독일 아이슬레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농부였다가 광산업자가 된 사람이었다. 마르틴 루터의 부모는 엄하게 아들을 교육했다. 루터는 "엄격하고 가혹한 가정을 피해 수도원으로 도망쳤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가 선택한 아우구스티누스 은둔 수도원도 엄격하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이곳에서 루터는 자신을 채찍질하듯이 苦行했다.
  스물네 살에 그는 修道士가 되었다. 작센 공국의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철학과 神學 강사가 된 그의 운명을 바꾼 것은 교황 레오 10세였다.
 
  1517년 레오 10세는 聖베드로 사원을 완공할 경비를 모으기 위해 면죄부를 팔도록 했다. 면죄부를 산 사람은 지은 죄를 용서받을 받을 뿐 아니라 죽은 뒤 연옥에 빠져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보증을 교황으로부터 받는 것이었다. 교황은 독일의 마인츠 대주교 알프레히트에게 면죄부 판매권을 맡겼다. 알프레히트 대주교는 요한 테첼이란 사람을 판매인으로 지정했다.
 
  독일의 중심부에 있던 强國인 작센의 選제후(신성로마제국 황제를 선출할 권한을 가진 영주) 프리드리히는 이 면죄부를 작센에서 팔아선 안된다는 명령을 내렸다. 그는 독일인의 돈이 이탈리아로 흘러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판매인 테첼은 작센 공국으로 들어오지는 않았으나 接境지역 가까이 와서 면죄부를 팔았다. 작센 사람들이 국경선을 넘어가 면죄부를 사 오곤 했다. 비텐베르크 사람들은 면죄부를 사 와서 루터에게 보여주면서 이것이 과연 효력이 있는지 물었다.
 
  평소부터 로마 교황청의 부정 부패에 분노하고 있던 마르틴 루터는 면죄부 판매를 지켜보면서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루터는 교황이 인간의 罪를 용서하고 구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교황이 하느님만 갖고 있는 권능을 사칭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인간은 자신의 善行(베드로 성당을 짓는 데 기부하는 것따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 구원을 받는다고 믿었다. 인간은 그리스도가 인간을 위해서 세운 功德의 힘을 믿음으로써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요컨대 그는 유럽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거대한 권위로서의 교황청을 일종의 사기집단으로 본 셈이다.
 
  그는 신부와 같은 司祭 직업도 필요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 사람들은 모두가 司祭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예수)과 인간 사이에는 司祭가 끼여선 안된다는 것이다. 루터는 자신의 주장이 억지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는 근거로 성경 말씀을 내세웠다. 그는 성경이 교황보다 위에 있다고 강조했다. 95개조의 몇 조항을 소개한다.
 
  [5.교황은 그 직권 혹은 교회법의 위세로 부과된 형벌 이외의 어떤 벌이든지 용서할 힘이나 뜻을 가지지 못한다.
 
  6.교황은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였다는 것을 선언 혹은 시인하는 이외에 어떤 죄든지 사할 힘이 없다.
 
  22.사실상 교황은 연옥에 있는 영혼에 대해서 어떤 형벌도 사할 수 없다.
 
 
  27.연보궤 안에 던진 돈이 딸랑 소리를 내자마자 영혼은 연옥에서 벗어 나온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학설을 설교하는 것이다.
 
  30.누구든지 자기 참회의 진실성에 대해서도 확신을 못 가지는데 하물며 남의 죄가 완전한 사면을 받았는지를 어떻게 밝힐 수 있을 것인가.
 
  31.면죄증을 진심으로 사는 사람도 드물다. 말하자면 그러한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다.
 
  32.면죄증서에 의하여 자신의 구원이 확실하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은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저주를 받을 것이다.
 
  36.어떠한 그리스도인이고 진심으로 자기 죄에 대하여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은 면죄증서 없이도 형벌과 죄책에서 완전한 사함을 받는다.
 
  43.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필요한 사람에게 꾸어 주는 것이 면죄증을 사는 것보다도 선한 일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5.가난한 사람을 보고도 본 체 만 체 지나버리고(요 3:17 참조) 면죄를 위해서 돈을 바치는 사람은 교황의 면죄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6.풍부한 재산의 여유를 가지지 못한 자라면 자기 가족을 위하여 필요한 것을 저축할 의무가 있으며(딤전 5:8) 결코 면죄증 때문에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7.면죄증을 사는 것은(사고 안 사는 것은) 자유로운 일이요 결코 그렇게 하라고 강요되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52.면죄증서로 구원받을 것을 신뢰하는 것은 헛된 것이다. 비록 판매위탁자가 아니 교황 자신이 그 증서에 대해서 자기 영혼을 걸고 보증한다 하더라도 그렇다.
 
  68.그렇지만 하나님의 은총과 십자가의 경건에 비하면 그것(면죄증)은 참으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86.또한 오늘날 제일 부자의 재산보다도 더 많은 재산을 가진 교황이 가난한 신자의 돈으로 행하는 대신 차라리 자기의 돈으로 성 베드로 교회당쯤은 세울 수 있지 않는가?
 
  90.일반 世人이 열거한 반론에 대하여 떳떳한 이유를 들어 해결하지 않고 다만 권력으로만 억압하는 것은 교회와 교황을 원수의 조롱거리가 되게 만드는 일이요 또 그리스도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출처: 말틴 루터, 지원용, 컨콜디아사, 1987.]
 
 
  이런 생각을 담은 루터의 95개조 문서가 인쇄되어 독일 全域으로 퍼져나갔다. 루터의 이단적 주장에 열렬한 찬성과 신랄한 反論이 쏟아졌다. 루터는 그 성격이 공격을 당할수록 더 강해지는 편이었다. 로마 교황청은 이 수도사에게 로마로 오라는 소환령을 내렸다. 종교재판에 걸어 화형시킬 것이 뻔했다.
 
 
  루터는 작센공국의 領主인 프리드리히측에 편지를 보내 독일 제후들이 독일의 신민을 이탈리아로 넘기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교황청에 대해 불만이 많았던 프리드리히는 이에 동의했다. 독일을 근거로 하는 神性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도 프리드리히에게 루터를 잘 보호하라고 지시했다.
  루터는 독일민족주의에 호소하여 이탈리아 교황의 명령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이때 독일사람들은 '독일어를 쓰는 우리는 같은 민족' 이라는 의식을 하고 있었다. 윌 두란트는 '역사속의 영웅들'이란 책에서 이렇게 썼다.
 
  <영국의 헨리8세(영국교회를 만들어 카톨릭에 대항한 왕)가 카톨릭의 교리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영국에 대한 교황의 압력을 거부하였던 것처럼 루터도 반란의 기치를 神學의 사막에 꽂지 않고 독일의 민족정신이라는 풍요한 토양에 꽂았다. 개신교가 승리한 곳에서는 어디서든지 민족주의가 깃발을 흔들었다>
 
  루터의 반란이 성공하여 종교개혁으로 불리게 된 데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독일 사람들의 지지, 그리고 독일영주들에 의한 루터 보호가 있었다.
 
  독일영주들의 보호조치로 해서 루터를 소환할 수 없게 된 교황은 체면을 구긴 셈이다. 타협안으로 교황은 루터를 아우구스부르크에 있던 카예탄 추기경 앞으로 불러 그의 주장을 취소시키라고 명령했다. 루터는 카예탄을 만나러 갔으나 이단사상을 취소하라는 권고를 묵살하고 비텐베르크로 돌아왔다.
 
  루터의 주장을 담은 문서들이 인쇄되어 돌아다니자 많은 대학생들, 상인들, 문학인들이 루터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후원금을 보내자는 운동도 일어났다. 여론이 생긴 것이다. 루터는 인쇄술의 도움으로 드디어 민중의 마음을 잡은 것이다. 고무된 루터는 1520년에 '槪要(개요)'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출판했다. 그는 이 글에서 교황을 정면 공격한다.
 
  <로마는 자주빛 옷을 입은 바빌론이요, 로마 교황청은 악마의 회당이다. 우리가 도둑을 교수대로, 강도를 칼로, 이단을 불로 처형하면서 어떻게 이들 추기경과 교황, 그리고 로마라는 소돔의 온갖 하수구를 공격하지 않는단 말인가>
 
 
  1517년에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를 규탄하는 대자보를 써붙여 종교개혁에 불을 지른 독일 작센공국의 수도사 마르틴 루터는 1520년 교황청이 파문하겠다고 위협하자 반격을 시작한다. 그는 '기독교 재산에 대해서 독일 민족이 기독교 귀족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독일어로 써 돌렸다. 이 글에서도 그는 독일사람들의 민족의식을 자극한다. 당시는 '독일민족'이란 개념은 없었고 독일의 제후 국가들만이 존재했다.
 
  <어떻게 우리 독일 사람들은 우리 재산이 교황들에 의해서 그런 강도질을 당하는 것을 참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도둑을 목매달고 강도의 목을 벤다면서 어떻게 로마의 탐욕은 그대로 두어야 한단 말인가>
 
  그는 교황 레오 10세에게 편지를 보내 그 개인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했지만 교황청의 反성경적인 요소와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사정 없이 공격했다.
 
  <당신은 하인들중의 하인이다. 당신에게 성경을 해석할 권한을 부여하는 사람들은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그대를 높이는 사람을 믿지 말고 그대를 낮추는 사람을 믿으시라>
 
  교황이 루터를 파문하자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의 학생들이 교황의 勅書 사본을 불태우게 했다. 수도사가 교황을 파문한 격이었다. 교황은 세속 권력의 대표자인 神聖로마제국 황제의 칼5세의 도움을 청했다. 칼5세는 1521년 1월27일 독일 보름스에서 帝國의회를 소집하여 이 문제를 토의하기로 하고 루터를 소환했다. 황제는 교황청의 고발에 대하여 증언하라는 초청장을 루터에게 보냈다. 칼5세는 루터에게 통행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약속도 했다.
 
  루터에게 가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루터는 "지붕 위의 기왓장만큼 악마가 많다고 해도 나는 보름스에 가겠다"고 말했다. 역사의 흐름과 生과 死를 건 일생일대의 도박이었다. 교황과 황제라는 유럽의 가장 강력한 권력을 상대로 도전장을 냈던 한 수도사는 성경에 대한 확신과 교황청에 대한 분노에 충실하기로 결심했다. 그해 4월17일 루터는 수도사 복장을 하고 의회에 나아가 議長인 황제 앞에 섰다.
 
  1521년4월17일 독일 보름스에서 열린 神性로마제국 의회에서 황제 칼5세는 루터에게 그가 쓴 책이 이단적이라는 비판에 대하여 설명할 것을 요구했다. 루터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고 황제는 하루의 말미를 주었다.
 
  다음 날 루터는 황제 앞에서 독일어로 말했다. 두 시간 계속한 연설에서 그는 공손하고 현명하고 솔직했다. 그는 수긍할 부분에 대해서는 수긍하고 굽히지 않아야 할 부분에선 결코 굽히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토머스 칼라일의 '영웅숭배론'에서).
 
  "나의 저작은 더러는 나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고, 더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것이다. 나에게서 나온 것은 인간적인 약점, 즉 경솔한 분노, 맹목성, 또 취소할 수 있다면 다행으로 여길 많은 것들이 개재되어 있다. 그러나 건전한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 있는 것은 취소할 수 없다. 어떻게 취소할 수 있겠는가. 성경의 증거로, 또는 솔직하고 공정한 論證으로 나의 말을 반박하라. 그렇지 않다면 나는 취소할 수 없다. 왜냐 하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한다는 것은 안전하지도 현명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 서 있나이다. 나는 달리 어찌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이 몸을 도우소서!"
 
  루터의 이야기를 다 들어준 칼5세 황제는 독일 제후들 가운데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을 불러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수도사 한 명이 1천년의 기독교와 맞선다면 분명히 그가 틀렸을 것이다. 나는 루터와 더 상대하지 않겠다. 그는 안전통행증을 가지고 돌아가도 좋다. 그러나 설교를 하거나 어떤 소동도 만들어서는 안된다."
 
  루터의 고향인 작센의 選제후 프리드리히와 팔츠의 選제후 루드비히는 황제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프리드리히는 루터가 황제의 군대에게 납치되지 않도록 그를 산위의 성에 숨겨주었다.
 
  칼라일은 루터가 칼 5세 앞에서 한 행동을 이렇게 평했다.
 
  <루터는 신이 만드신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권리와 의무가 있는 것을 다했다. 그는 허위가 "나를 믿느냐"고 물었을 때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어떤 代價를 치르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교황제나 봉건제보다 더 고귀한 정신적 물질적 제도가 이뤄질 것이다. 다. 그러나 그것은 가상이나 허위가 아니라 오직 사실 위에서만 설 수 있다>
 
  칼라일은 교황과 황제를 상대로 한 루터의 도전은 근본적으로 허위에 대한 진실의 도전이었고 루터가 진실의 편에 서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했다. 칼라일은 역사를 움직인 루터의 용기를 분석했다.
 
  그 용기는 관용에서 나왔다고 칼라일은 말했다. 루터는 근본적인 것과 사소한 것을 구별할 줄 알았다는 것이다. 사소한 것은 내버려두었다는 것이다. 칼라일은 루터가 쓴 24권의 책이 문학적으로는 잘 쓰여진 것은 아니라고 평했다. 그러나, 이 책들에서 볼 수 있는 것 이상의 강건한 정직성, 소박성, 단순성은 없다는 것이다. 칼라일은 루터의 용기를 '가슴의 위대성'이라고 표현했다.
 
  <리히터는 루터의 언어를 평하여 그것은 半전투라고 했다. 그는 싸워야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믿었고, 그런 투쟁이 용기의 진정한 표현이라고 믿었다. 용기를 특징으로 하는 투턴민족 중에서도 그보다 용기 있는 인물, 그보다 더 용감한 인물이 살았다는 기록을 찾을 수 없다. 호랑이는 용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흉포하고 잔인할 뿐이다. 그들은 더 강한 敵을 만나면 도망친다. 루터의 위대하고 소박한 가슴속에 있는 저 부드러운 사랑의 숨결, 어린아이나 어머니의 사랑처럼 부드러운 저 숨결보다 더 감동적인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의 표현은 꾸밈 없고 거칠지만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샘물같이 맑다>
 
  루터는 작센 제후의 보호속에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그는 수많은 논설과 책을 썼다. 이들 저작은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인쇄술 덕분에 독일 사회에서 널리 읽혔다. 교황청에 대한 루터의 글쓰기는 하나의 언론활동이었다. 루터의 글은 독일의 민중을 움직였다. 여론이 그의 편이 되었다. 루터가 보름스로 들어갈 때는 그의 마차 주변으로 2천명의 군중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神性로마제국의 황제조차도 그 인기에 가려질 정도였다고 한다. 교황도 황제도 이 이단자를 처단할 수 없었던 것은 인쇄술에 의한 言論활동으로 民心이 루터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을 感知했기 때문이었다. 루터의 용기는 民心을 격동시켜 反교황의 여론을 형성했고 이것이 역사의 흐름을 바꾼 것이다.
 
  인류를 돈과 권력으로 부패한 카톨릭의 질곡으로부터 구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카톨릭의 내부개혁을 유도했던 루터의 종교개혁은 그 뒤 서구 민주주의 발전의 기반을 만들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의 상당부분은 루터가 교황 및 황제와 맞선 덕분에 공짜로 얻은 것이다. 진실뿐 아니라 용기는 인간을 자유케 한다.
 
  마르틴 루터는 교황청의 존재 이유를 부인하고, 聖職者도 결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수도원을 떠난 前 수녀와 결혼하여 여섯 자녀를 낳았다. 그는 결혼의 환희를 예찬하였다.
 
  "아내는 남편이 즐겁게 집으로 돌아오도록 해야 하고, 남편은 자신이 집을 떠날 때 아내가 아쉬워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좋은 결혼보다 더 사랑스럽고, 친근하며, 매력적인 관계, 結社(결사), 친구는 없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독일을 農民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교황청에 불만을 품고 있던 종교개혁가들, 젊은 신부들, 광신도들이 루터의 용기에 고무되어 농민들과 함께 곳곳에서 제후와 교회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켜 교회를 불태우기 시작하였다.
 
  루터는 경악했다. 그가 원한 것은 이런 사회 정치혁명이 아니었다. 그는 農民반란을 규탄하는 글을 돌렸다. 그는 심지어 農民반란을 진압하는 목적이라면 카톨릭 세력과 손잡아도 좋다고 주장했다. 독일인답게 그는 무질서와 폭력을 증오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급진 종교개혁가들로부터 배신자라는 욕을 먹기도 했다. 루터는 끝까지 성경을 붙들고 늘어졌다. 그는 '글의 인물'이었다. 목회자들과 아버지들이 교회와 가정에서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 '대소요리문답'을 1529년에 낸 데 이어 이듬해엔 프로테스탄트 복음주의 신앙을 조리있게 천명한 일종의 선언문인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을 썼고 신구약 합본성경을 1534년에 번역, 출판했다. 인쇄술의 도움으로 이들 책은 일반 민중들에게도 널리 읽혔다. 그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은 독일어의 낱말과 文法을 집대성한 책으로 현대 독일어의 母體가 되었다.
 
 
  루터의 傳記소설을 쓴 래그 그랜트는 '루터의 대포는 인쇄기였다'고 했다. 그가 한 말과 독일어 성경은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성경이, 無知와 미신으로 그들을 얽어매던 사슬을 끊어버렸다. 평신도들은 성경을 읽고나서야 비로소 교황청과 世俗권력을 비판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라틴語로 쓰여진 성경을 독점하여 민중을 靈的 노예로 삼았던 사제들과 귀족들은 루터가 터뜨린 거대한 민중의 知的 에너지를 감당하기 힘들게 되었다. 루터를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 루터 지지자는 이렇게 반박했다.
 
  "너희 음흉한 바보들아. 뉘렌베르크과 아우크스부르크, 보름스와 스위스, 그리고 작센에는 파리와 쾰른의 모든 대학들과 이 세상 어떤 교황주의자들보다도 성경을 더 잘 아는 부인들과 하녀들이 있고 작센의 選제후 같은 귀족들이 있다."
 
  루터는 용기와 聖書의 힘과 글의 힘과 인쇄술로 세상을 바꾼 것이다. 요사이 한국의 상황과 대비한다면 용기와 헌법과 언론의 힘으로써 무장하여 진실의 편에 서서 거짓 선동하는 부패한 권력과 악랄한 권력을 심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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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바울이 쓴 몸과 肢體의 화합론
 
 
  "만일 온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
 趙甲濟
 
  성경 新約의 고린도 前書는 사도 바울이 쓴 것이다. 바울은 지금의 그리스 땅에 있는 고린도에서 교회를 세웠으나 유태인들의 방해를 받고 여기를 떠났다. 그가 지금의 터키 땅인 에베소에 머물면서 고린도 교회로 쓴 편지가 이 고린도 前書이다. 고린도 前書에는 사랑과 화목을 강조하는 내용이 많다. 교회의 내분을 걱정하면서 쓴 글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한 감동적 定義를 내린 고린도 前書 13장과 부활을 주제로 한 15장은 문학적으로도 훌륭한, 詩 같은 글이다. 12장은 개성이 다르고 능력이 다른 개인이 교회와 성령 안에서 화합하는 것의 당위성에 대해서 아주 쉬운 글로 설명하고 있다. 필자는 화합과 단결에 대해서 이 글만큼 적절하게 표현된 글이 없다고 생각한다. 12장12절부터 인용한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肢體가 있고 몸의 肢體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肢體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뇨.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肢體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肢體에게 존귀를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였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肢體의 각 부분이라>
 
  바울은 교회를 몸에, 교인들을 지체에 비유하고 있다. 교인들의 개성과 능력은 몸을 이루는 눈, 코, 귀처럼 각각 다르다. 많은 교인들은 이 다름에 대하여 거부반응과 시샘이 있다. 귀는 눈을 부러워하고, 발은 손을 부러워한다. 그 좋아보이는 것들만으로 통일하여 몸을 만든다면 눈 같은 몸, 손 같은 몸이 되어버린다. 몸이든 교회이든 회사이든 성격과 능력과 모습이 다 다른 이들을 한 이념과 문화(여기서는 성령)로 통합해야 위대한 힘이 생긴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다름 속에서 화합하고 화합속에서 개성을 잃지 않도록 하려면 이 다름에 대해서 부러움과 시샘을 할 것이 아니라 그 다름이 소중한 것임을 인정하고 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다양성과 관용의 정신이 아니겠는가.
 
  원리주의적 儒敎인 朱子學은 이 세상만물을 통일적 논리로 보려 함으로 획일성과 교조성과 엄격한 계급성을 띤다. 이 朱子學이 정치이데올로기로 변하면 명분론과 도덕론으로 흘러 實事求是하는 實用정신이 약해진다. 이런 사회에선 同等과 차별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런 문화에 익숙해지면 금강산과 설악산에 대해서도 꼭 "어느 산이 더 아름다운가"라고 서열을 매겨야 마음이 편하다. 설악산은 설악산대로 금강산은 금강산대로 아름답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경직된 문화에 젖은 사람들은 회의를 할 때도 참석자가 같은 의견일 것을 전제로 하여 토의에 임한다. 그럼으로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에 대해서는 감정부터 상한다.
 
  반면 민주사회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각자 생각이 다를 것이란 점을 전제로 하고 회의에 임하고 회의를 통해서 통일된 견해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한다. 前者의 회의는 싸움판이 되고 後者의 회의는 생산적 토론장이 된다.
 
  지도자의 임무는 인간의 각자 다른 기능과 역할을 인정하고 이를 통합시키고 협조시키는 일이다. 민주사회는 다른 집단과 사람에 대한 존중심이 전제되어야 기능한다. 사회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인간사회를 계급투쟁의 시각으로 분석함으로 사회와 국가를 분열시켜 이득을 보려고 한다. 좌파가 집권한 나라에서는 반드시 분열과 갈등이 격화된다. 지금 노무현 좌파정권이 하고 있는 일이다.
 
  눈과 귀처럼 각각 다름에도 한 몸의 구성원으로서 각자 보람되는 일을 하려면 성령과 같은 대원칙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국가에선 그 대원칙이 헌법이고 회사에선 社是, 가정에선 家訓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성령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언론자유, 선거자유, 그리고 私有재산제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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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에 대하여 人類가 남긴 글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문장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溫柔(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고,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利益만 찾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고, 惡을 행하지 아니하며 不義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와 함께 즐거워하며, 모든 것을 감싸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소망하고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趙甲濟
 
  新約 성경 고린도 前書 13장을 읽기 쉽게 번역한 글이다. 사랑에 대하여 人類가 남긴 글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定義일 것이다.
 
  [내가 사람의 方言과 天使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과 시끄러운 꽹과리에 지나지 않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山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며, 내가 가진 모든 것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救濟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溫柔(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고,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利益만 찾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고, 惡을 행하지 아니하며 不義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와 함께 즐거워하며, 모든 것을 감싸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소망하고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으나 예언은 끊어지고, 方言도 그치고, 知識도 없어지리라. 우리는 단편적으로 알고 단편적으로 예언하나, 溫全한 것이 올 때는 不完全한 것이 사라지리라.
 
  내가 어렸을 때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았고 생각하는 것도 어린 아이와 같았으며 깨닫는 것도 어린 아이와 같았으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버릇을 버렸노라.
  지금은 흐린 거울을 보는 것 같이 희미하게 보이지만 그때가 되면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단편적으로 아나 그때는 主께서 나를 아시는 것 같이 모든것을 온전히 알게 되리라. 그런 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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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國人을 행복하게 만든 4大 문장
 미국 독립선언서, 李承晩의 독립정신, 崔南善의 三一독립선언서, 대한민국 헌법.
 趙甲濟
 
  *토마스 제퍼슨이 기초한 1776년 미국 독립선언서의 유명한 귀절: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진실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神聖(신성)한 것으로 간주한다. 즉,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롭게 창조되었으며, 그런 평등한 창조로부터 빼앗길 수 없는 고유한 권리를 받았는데 생명의 保全(보전)과 자유,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거기에 속한다>
 
  *1904년 李承晩이 獄中에서 쓴 '독립정신'의 한 귀절: <부디 깊이 생각하고, 고집부리지 말고, 모든 사람들이 힘껏 일하고 공부하여 성공할 수 있도록 자유의 길을 열어놓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에게 스스로 活力이 생기고, 관습이 빠르게 변하여 나라 전체에도 活力이 생겨서 몇십 년 후에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를 존중하는 것은 나라를 세우는 根本이다>
 
  *崔南善이 기초한 1919년 3.1 독립선언서의 마지막 문단: <우리가 본디 타고난 自由權을 지켜 풍성한 삶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것이며, 우리가 넉넉히 지닌 바 독창적 능력을 발휘하여 봄기운이 가득한 온 누리에 겨레의 뛰어남을 꽃 피우리라>
 
  *李承晩이 建國을 주도한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人權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위의 역사적 文書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인간의 기본권을 규정하고 있다는 데 공통점이 있을 뿐 아니라 서로 연관되어 있다. 토마스 제퍼슨은 인간의 기본권을 생존권, 평등권, 자유권, 행복추구권으로 규정하였다. 국가도 개인의 이런 기본권을 침해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이고 人權의 바탕이 되는 人間觀이다.
 
  미국 독립선언서의 이런 思想은 그 뒤 後發국가가 민주주의를 건설할 때 하나의 기준이 되었다. 19세기말 시작된 한국의 開化운동은 미국과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자유민주주의를 理想으로 삼게 된다. 그 理想을 가장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가장 줄기차게 실천하였던 이가 李承晩이었다. 그가 온몸으로 담아내었던 開化의 꿈은 韓日倂合으로 좌절되었으나 그 불씨는 이어졌고 3.1 독립선언서로 재확인되었으며 드디어 대한민국 헌법에 자리잡아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가치관이 되었다.
 
  제퍼슨-李承晩-三一운동-建國-憲法의 연결망에서 빠져버린 것이 북한이었다. 북한은 인간생명의 신성함, 人權의 존중, 자유-평등-행복의 세계에서 제외됨으로써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북한에 비교하면 한국은 천국이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는 美國과 李承晩, 그리고 기독교의 합작품이다.
 
  위의 4大 문서에 등장하는 키 워드는 자유, 생명, 평등, 존엄, 행복, 풍요, 삶의 즐거움 등등 희망적이고 낙관적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삶을 긍정한다. 인간으로 태어나면 행복해질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가르친다. 오늘날 한국인으로 태어나면 불행해질 자격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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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계시록과 이사야書의 무시무시한 예언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從北세력을 기다리는 것은 剖棺斬屍(부관참시)와 도륙: "惡의 후예들은 영원히 그 이름이 지워지리니, 조상들의 죄를 자손들에게 씌워서 도륙할 장소를 마련하라."
 趙甲濟
 
  新約(신약) 성경의 요한계시록은 善(선)과 惡(악), 사탄과 천사, 反기독교와 기독교의 싸움을 다루는 문학적이고 예언적이며 충격적인 내용으로 차 있다. 계시록의 필자는 예수의 제자 요한이란 설과 다른 요한, 즉 초대교회의 장로 요한이란 설이 있으나 前者가 定說(정설)로 되어 있다. 쓰여진 시기에 대하여는 네로 황제 시절(서기 54-68년)이나 도미티안 시절(서기 81-96년)說로 나뉜다.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시작된 시기를 살면서 요한은 예수 대신 황제를 경배하라는 압박에 시달리던 聖徒(성도)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는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이 임박하였고 사탄의 세력이 멸망하고 성도들은 永生(영생)과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니 박해에 굴복하지 말고 버틸 것을 촉구한다. 계시록은 문학적으로, 상징적으로 쓰여진 예언서임으로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하여는 몇 가지 입장이 있다.
 
  첫째는 과거완료형이다. 여기서 언급된 상황은 서기 1세기 경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것이란 입장이다.
  둘째는 인간의 역사를 시작에서 끝까지 기술한 것이란 역사적 관점이다.
  셋째는 종말론적 관점이다. 세상의 종말에 벌어질 상황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넷째는 善이 惡을 이긴다는 영원한 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글이란 입장이다.
 
  요한계시록의 12장에서 22장까지를 읽어보면 사탄과 천사, 거짓 선지자와 착한 사람의 대결 속에서 하나님이 개입, 최후의 심판을 통하여 사탄과 거짓 선지자를 地獄(지옥)으로 보낸다는 구도이다. 문학적이고 상징적인 묘사가, 지구상에서 횡행하였던 ‘악마적 독재자’나 ‘악마적 집단’의 일반 속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12장 7-9절: 하나님의 군대장관 미가엘과 용이 싸워 용이 하늘에서 쫓겨난다.
  13장: 바다에서 짐승이 나온다. 용이 자신의 능력과 寶座(보좌)와 권세를 그에게 주었다. 짐승이 죽게 되었다가 살아나므로 사람들이 용과 그 바다짐승을 숭배하고 복종한다. 그 짐승이 하나님을 敵對(적대)하고, 성도들과 싸워 이기고, 성도들을 핍박한다.
  이때 또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온다. 이 두 번째 짐승은 새끼 양처럼 순하게 생겼는데 말은 용처럼 한다.
  “두 번째 짐승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첫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첫 짐승의 상처가 나은지라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첫째 짐승에서 받은 이적을 행하여 사람들을 속이고,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첫째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그 첫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2代 짐승은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한다. 이 표를 가진 자 이외에는 賣買(매매)를 못하게 한다. 그 표는 첫째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다. 짐승의 수는 666이다.”>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엔, 龍(사탄)과 그 龍이 세운 첫째 짐승, 그리고 첫째 짐승을 우상화하여 이 우상의 힘으로 기독교인을 탄압하고 주민들을 속박하는 둘째 짐승 등 세 부류의 악당이 있다. 이들은 惡의 三位一體(삼위일체)이다.
 
  龍을 스탈린이나 레닌, 또는 마르크스로 놓고, 첫째 짐승을 스탈린으로부터 權座와 權勢를 받은 김일성, 둘째 짐승을, 김일성을 우상화하여 인민들로 하여금 숭배하도록 하는 김정일에 對比(대비)하면 거의 정확하게 북한의 모습이다.
 
  둘째 짐승, 즉 김정일은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은 자에게만 매매, 즉 경제활동을 허용한다. 표는 첫째 짐승(김일성의 이름)이나 666이란 숫자이다. 김일성의 이름이 적힌 표는 북한노동당 당원증일 것이고 666은 김정일을 가리킨다. 김정일의 생일은 2월16일이다. 216節(절)이라 불린다. 6X6X6=216이다. 김정일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인데, 평양에 있는 그의 선거구 번호가 한때 666이었다. 지금 북한에선 북한노동당의 허가 없이는 장사도 무역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최근 화폐개혁을 통하여 이런 통제를 더욱 강화하였다가 주민들의 반발을 부르고 있다.
 
  요한계시록은 둘째 짐승, 즉 김정일의 역할을 ‘거짓 선지자’로 분류한다. 김정일이 김일성을 우상화하면서 그의 後光(후광)을 업고, 역사를 조작하고, 자신의 백두산 출생 신화도 조작하고, 생일마저 조작하여 북한을 거대한 거짓의 공화국으로 만든 것을 상징하는 느낌이다. 둘째 짐승은, 생기기는 양 같은데 말은 마귀(용)처럼 한다고 한다. 위장과 속임수가 김정일 정권의 속성이다. 즉 거짓 선지자 집단이다. 이런 북한정권의 치명적인 약점은 거짓 위에 세운 공화국이란 점이다. 진실의 햇볕이 거짓의 토대를 무너뜨리면 와해된다.
 
  북한을 다스리는 '惡靈(악령)의 三位一體' 구조에서 聖靈(성령)에 해당하는 것은 공산주의의 魔王들(마르크스, 레닌, 스탈린)이고, 聖父는 마왕의 꼭두각시 김일성, 聖子는 꼭두각시를 선전하는 거짓 선지자 김정일에 비유된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사탄의 권력과 그 작동원리가 북한정권과 흡사한 이유는 무엇인가?
 
  1. 북한정권이 기독교系의 이단형이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뒤 공산주의를 만나 사탄化되면서 신흥종교집단인 主體敎(주체교)의 敎主가 되었다. 북한노동당 정권의 儀式(의식)에는 기독교적인 게 많다. 북한에서 사용하는 용어 '정치적 생명'은 '永生하는 영혼'이고, '유일체제 확립을 위한 10대 원칙'은 십계명과 흡사하다.
  2. 북한정권이 인간의 영혼과 사상을 지배하는 戰略과 기술을 발전시키다 보니 자연스럽게 악마적인 작동원리를 채용하게 되었다.
  3. 유태인 마르크스가 만든 공산주의 이론 자체가 反기독교적인 인간말살과 唯物論(유물론)이므로 성경의 세계에 나오는 마귀의 生理와 비슷해졌다. 공산주의를 이긴 정치제도는 개발형 군부독재, 기독교적 민주주의, 이슬람밖에 없다. 狂信(광신)을 누르는 데는 合理정신만으로는 부족하고 또 다른 신념이 있어야 한다.
 
  한국 교회의 다수 목사들은 김일성-김정일을 단순한 독재자나 원수가 아니라 '사탄의 세력'으로 봐야 한다는 神學的(신학적) 입장을 보인다. 원수나 독재자는 회개가 가능하므로 용서도 할 수 있지만 '사탄의 세력'은 척결 대상이지 용서의 대상이 아니다. 700만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희대의 학살 父子에 대하여 "회개하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게 과연 성경적인 것인지도 의문이다. 확실한 것은 김정일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한국 기독교가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光明星(광명성=김정일類)과 후손들은 이렇게 도륙당한다"
  구약 선지자 이사야는 '광명성'(김정일)과 그 후손 및 추종자들까지 부관참시되거나 도륙 당할 것이고 영원히 그 이름이 지워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북한에선 김정일을 광명성이라고 부른다. 한자로는 光明星이다. 1998년에 쏘아올렸으나 궤도진입에 실패했다는 인공위성 이름이 광명성, 무역회사 이름도 광명성이다. 金日成이 金正日을 칭송하는 詩를 지었는데 거기에 광명성이란 말이 나온다. 父子의 한자 이름에 모두 태양을 뜻하는 日자가 들어 있다. 북한을 암흑의 세계로 만든 자들이 스스로를 태양과 별로 비유하고 神을 자처한다. 오만의 극치이다. 이런 부류의 악한들의 운명에 대한 예언이 성경속에 있다.
 
  구약 성경 이사야書 14장12절은 이렇게 말한다.
  <너 아침의 아들 啓明星(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列國(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이 귀절은 영화를 누리면서 유태인들을 탄압하던 바빌론 제국의 왕이 처할 운명을 예언한 것이다.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 바로 '하늘에서 떨어져 땅에 찍힌' 왕이다. 독자들은 여기서 '계명성'이라는 단어에 주목하게 될 것이다. 국어사전에서 계명성은 샛별, 즉 金星을 가리킨다. 광명성은 국어사전엔 나와 있지 않으나 광명성은 '明星(명성. 샛별)'의 강조어이므로 이 역시 뜻은 샛별이다.
 
  그렇다면 舊約 세계의 가장 위대한 先知者(선지자) 이사야는 '계명성=광명성'의 말로를 어떻게 예언하고 있는가.
 
  이사야書 14장13절은 계명성이 하나님에게 도전한 자라고 못박는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하도다>
 
  '광명성=계명성'類의 독재자들은 하늘에서 떨어져 죽은 뒤에도 무덤에서 영면하지 못하고 剖棺斬屍(부관참시: 관을 열고 시체를 벰)를 당한다는 예언이다. 이사야書는 바빌론왕과 김일성-김정일의 죄과중 하나를 강조한다. 즉 이 자들은 '사로잡힌 자를 그 집으로 놓아보내지 않던 자'란 준엄한 논고이다. 수만 명의 국군포로와 납북자들을 아오지 탄광 등으로 보내 피눈물을 흘리면서 죽어가게 만든 김정일이 반드시 그 죄값을 치르고 말 것이란 예언이 아닌가.
 
  <네가 자기 땅을 망케 하였고, 자기 백성을 죽였으므로 그들과 일반으로 안장함을 얻지 못하나니 악을 행하는 자의 후손은 영영히 이름이 나지 못하리로다 할찌니라>
 
  영어 성경은 위의 귀절에서 '계명성=광명성'을 '짓밟힌 시체처럼'(Like corpse trampled underfoot)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예언자 이사야는 바빌론왕과 김정일類의 죄과를 '땅을 망치고 백성을 죽인 것'으로 정확히 규정한다. 김정일은 북한의 자연을 망쳤고 수백만 명을 굶겨죽이고 때려죽이며 쏴죽였다. 이사야 선지자는 '계명성=광명성'類의 자손과 추종자들에게도 천벌이 내릴 것임을 예언한다.
 
  <악의 후예들(offspring of the wicked)은 영원히 그 이름이 지워지리니, 조상들의 죄를 자손들에게 씌워서 도륙할 장소를 마련하라. 그들이 다시 일어나 땅과 도시들을 취하지 못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일어나 그들을 쳐서 그 이름과 남은 자와 아들과 후손을 바빌론에서 끊으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이, 김정일類의 후손뿐 아니라 그 추종자들, 즉 從金(종김)반역자들이 再起(재기)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하여 아예 악의 씨앗을 잘라버리겠다는 무시무시한 예언이 아닌가. 사랑의 종교라는 기독교의 성경과 神이 '도륙(屠戮·slaughter)'이란 말을 써가면서 '계명성=광명성'의 후손들과 그 추종자들을 응징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도륙이란 한자어는 죽인다는 두 글자로 이뤄져 있다).
 
  왜 이렇게까지 바빌론왕과 김정일에 대해서 神은 분노하고 있는 것일까. 바빌론왕 김일성 김정일類는 스탈린 히틀러 毛澤東類(모택동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리를 탐내고 스스로 神을 참칭한 大逆罪人(대역죄인)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세계에서 가장 큰 죄는 여호와에 도전하는 것이다. 이는 민주국가 정치인으로서 가장 큰 죄는 조국과 헌법에 도전하는 것과 같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성경은 바빌론왕과 김일성 김정일類를 사탄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이다(사탄의 定義는 '하나님을 참칭하는 자'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후손들과 추종자들을 깡그리 도륙해버리겠다고 공언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신비한 의미가 담겨 있다.
 
  이사야書 14장12절을 다시 읽어본다.
  <너 아침의 아들 啓明星(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列國(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5세기의 聖人 제로미아는 히브류 성경을 처음으로 라틴어로 번역했다. 그때 그는 '아침의 아들 계명성'을 '루시퍼'(lucifer·빛을 내는 자)라고 번역했고 그 의미는 반역천사, 즉 사탄 악마로 전해지게 되었다. 기독교인들이 '루시퍼'를 사탄의 이름으로 이해하게 된 배경이다. 성경학자들은 이사야書가 '계명성'으로써 지칭하는 것은 사탄이 아니라 바빌론王이라고 해석하지만, 제로미아 聖人 등 신도들은 필자처럼 '하나님이 이렇게 저주하고 응징하는 이라면 악마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김일성이 김정일을 사탄의 대명사인 '광명성'이라 부른 것은 우연의 소치인가 무식의 결과인가. 아니면 필자가 정치상황을 너무 성경적으로 보는 것인가. 김정일 김일성 父子의 행위가 필자로 하여금 성경을 찾게 했다. 왜냐? 이 두 악마적 권력자가 기독교 집안 출신이고 그들의 통치술에다가 기독교의 儀式을 많이 도입했으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참칭했고, 그 학살과 기만의 깊이와 규모가 인간의 범위를 훨씬 뛰어넘고 있으므로 정치학 事典(사전)으로써는 도저히 해독이 불가능하니 성경이 일종의 암호열쇠로 등장한 것이다.
 
  뒤에 기독교의 탄압자라는 惡名(악명)을 얻었지만 金日成은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형직은 1911년 미국의 기독교 단체가 만든 미션 스쿨 숭실중학교에 입학하였다. 어머니 강반석은 창덕학교 교장 강돈욱 장로의 둘째 딸이었다. 반석이란 이름도 성경(베드로가 盤石이란 뜻)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강반석은 고향인 칠골교회의 집사로 봉직했다. 金日成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매주 교회에 나갔다. 주일학교에서 金日成의 외할아버지 강돈욱은 성경을 가르치고, 그의 육촌동생 강양욱은 소년 金日成의 주일학교 담당 교사였다고 한다.
 
  북한 정권을, 주체사상이란 종교를 믿는 신도집단으로 해석하여 신도수 기준 세계 제10위의 종교단체로 올린 통계가 있다. 김일성을 聖父, 金正日을 聖子, 주체사상을 聖靈, 10계명을 「유일사상 10대 원칙」으로 해석하는 신학자도 있다.
 
  정치현상을 종교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고 政敎(정교)분리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 종교는 善惡觀(선악관)을 깔고 있는데 비하여 정치는 실용성이 더욱 강하다. 하지만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정치도 아니고 과학도 아니다. 북한 정권의 행태는 합리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실용적이지도 않고, 광신적이고 미신적인 요소가 더 많다. 이런 집단을 이해하는 데는 종교적인 접근법이 더 유효한 면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요한계시록 13장은 두 악한 짐승, 즉 악마적 독재자들의 등장을 예언한 내용을 담고 있는 데 대하여 14~16장은 이 짐승과 그 짐승에 포섭된 인간들에 대한 심판의 이야기이다. 두 짐승이 다스리던 세상에서도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이마에 쓴 14만4000명의 착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여자로 해서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이다.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이고 거짓말을 모르는 사람이다>
 
  오늘날 한반도 상황에서 이들은 누구로 해석될 수 있을까. 14만4000명. 아마도 장교들, 기업인들, 언론인들, 검사들, 학자들, 종교인들 중에서 이 정도의 인물들이 金正日과 그 똘마니들이 설친 惡의 세상에서도 양심과 정직과 애국심을 갖고 살아남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이들은 사생활이 깨끗하고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정직한 이들이며 선량한 지도자를 잘 따른다. 짐승과 그 제자들을 타도하는 하느님의 심판이 가능한 것도 그 짐승들의 세상에서 이 정도의 양심세력이 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고 모든 인간들이 사탄과 짐승 편에 넘어가면 하느님도 구제할 수 없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하느님이 심판하러 오시기 전에 천사들이 먼저 경고한다. 천사들은,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은 자들은 하느님이 내리시는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고 천사들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통을 받게 되며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갈 것이다.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고 표를 받은 자들은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金日成·金正日에게 충성을 바친 자들에 대한 한국과 국제사회의 최후통첩이 내린다. 계속해서 金正日의 핵개발과 테러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있는 자들에게는 무기징역 아니면 사형이 기다리고 있으며 그보다 더한 것은 세세토록 계속될, 이완용의 자손처럼 영원히 이어질 家門(가문)의 불명예이다.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두 짐승을 섬기고 특권을 받은 자들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과 응징은 일곱 천사들에 의하여 진행된다.
  첫째 천사는 대접에 든 액체를 땅에 쏟는다.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과 우상에게 경배한 자들의 몸에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기 시작한다. 둘째 천사가 대접을 바다에 쏟으니 바다가 죽은 자의 피같이 되고 모든 생물이 죽었다.
  셋째 천사가 그 대접을 강과 물의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었다. 셋째 천사가 이렇게 말했다. 『이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리게 하였으니 그들도 피를 마시게 하는 것이 합당하다』
  넷째 천사가 대접을 해에 쏟으니 해가 권세를 받아 사람들을 태웠다. 그래도 짐승에 복종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욕하고 회개하지 아니하였다. 다섯째 천사가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었고 종기가 났다. 그래도 사람들은 회개치 않았다.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프라테스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靈이 나왔다. 이들은 하느님과 대적하기 위하여 천하의 권력자들을 끌어모으려 할 것이다.
  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기 중에 쏟으니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바빌론이 무너지더라>
 
  질병, 가뭄, 홍수, 공해, 기근, 굶주림, 사람이 사람을 먹는 사태, 그런 경고를 당하고도 반성하지 않는 金正日과 그 추종자들의 단말마적인 모습이다.
 
  한국과 국제사회는 기독교인들과 애국자들의 피를 그렇게나 많이 흘리게 하였던 金正日과 추종세력들에게도 똑같은 복수와 응징의 피흘림을 요구할 것이다. 正義(정의)는 때로는 무자비한 심판인 것이다.
 
  가장 惡하고, 가장 간사하며, 가장 용감하고, 가장 의로운 사람들이 섞여 있는 한반도의 이 상황이 해결되는 과정에서 요한계시록이 펼치고 있는 장면이 현실로 되어선 안 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질병에 걸리고 굶어죽으며, 산과 바다는 황폐되고, 피를 피로 씻는 복수의 전쟁. 그런 예언을 미리 안다면 피할 방법도 있을 것이다.
 
  요한계시록이 우리한테 시사하는 것은 金正日과 대한민국의 대결을 보는 눈은 맑아야 한다는 점이다. 金正日 정권과 대한민국의 관계를, 左니 右니 보수니 진보니 그러지 말고 善과 惡의 대결로 잘라야 정확하다는 이야기이다. 金正日 집단을 惡, 대한민국을 善으로 본다면 惡에 대해서는 응징, 규제, 포위, 제거밖에 할 일이 없다. 惡을 惡으로 보지 않으려는 사람도 惡의 편이다. 惡을 善으로 둔갑시키려는 위선자도 惡의 심부름꾼으로서 모두 심판의 대상이다.
 
  金正日이 자신의 지역구 번호를 666으로 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좋다. 나는 성경의 그 魔王(마왕)이 되겠다』는 오기로써 그렇게 했을지 모른다. 申相玉 감독에 따르면 金正日은 자신을 향해서 환호성을 지르는 군중들을 바라보면서 『저건 다 가짜요』라고 이야기하더라고 한다. 그는 惡黨(악당)을 자임한 인간이다.
 
  세계사적으로 공산화를 저지하는 데 성공한 세력이 몇 있다. 기독교적 자유민주주의, 이슬람 세력, 그리고 케말 파샤나 朴正熙 같은 군사정권. 아시아에서 두 개의 기적은 중국이 공산화된 것이고, 한국이 공산화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그 기적의 한 이유는 한국의 애국 기독교와 장교단의 존재일 것이다. 한국 기독교의 대표 인물인 李承晩 대통령은 『공산당은 호열자와 같아서 인간과 공존할 수 없다』면서 허구의 좌우합작론을 분쇄하고 대한민국 건국을 주도했다.
 
  짐승의 나라를 지탱하는 중요한 직업이 거짓 선지자이다. 그의 主임무는 惡을 惡이라 부르지 못하게 하고 善이라 부르도록 대중을 꾀는 일이다. 從北세력이 바로 그들이다.
 
  한국 기독교인들중 '김정일이 회개하도록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이들이 많다. 사탄의 졸개가 회개를 할까? 회개하면 용사해줄 수 있나? '하나님의 役使로 김정일을 물리치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게 성격적일 것이다.
 
  유태인의 論語인 탈무드엔 이런 말이 있다. "잔인한 자를 동정하는 이는 동정받아야 할 사람에게 잔인하다." 김정일을 동정하는 이들은 同情받아야 할 국군포로, 탈북자, 납북자들에게 잔인한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