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예술/옛시조 모음

홀로 林下에서 방황한다 - 강정일당

淸山에 2009. 8. 14.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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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매미 음을 듣다 - 聽秋蟬 作 : 강정일당
 

  木迎秋氣       만목영추기     나무마다 가을빛을 맞아          
  蟬聲亂夕陽    선성난석양     매미울음이 석양을 산란시킨다     

  沈吟感物性    침음감물성     物性을 느끼려 고요히 생각에 잠겨   
  林下獨彷徨    임하독방황     홀로 林下에서 방황한다             

 


강정일당은
조선후기 "제2의 신사임당"이라 불리는 여성 실학자이자 문인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주 훌륭한 분이셨읍니다.


먼저 그분의 행적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

영조 48년인 1772년 제천에서 태어난 정일당은
진주 강씨로 강희맹의 후손이랍니다.

 

17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세마저 기울었던 탓에
여러모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그녀는
그러나 총명하고 효성이 지극해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자신의 할 바를 다했다.

 

어린 나이로 바느질과 길쌈으로 생계를 이어갔는가 하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땐


몸이 상할 정도로 애통해 하며 3년상을 치르기까지 했으며.

스무살이 되던 해 정일당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늦은 나이로 파평 윤씨인 윤광연과 결혼했습니다.

 

명문가의 자제인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직에 나가지

못해 살림은 여전히 가난했고
그녀는 길쌈과 바느질로 생계를 책임져야만 했습니다.

 

시댁의 가계를 책임지던 정일당은
나이 서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학문을 시작하여.


그것도 바느질을 하면서 남편의 어깨 너머로 배운 것이 전부라네요.

일단 공부를 시작하자 학문에 대한 열정이 넘쳐 그녀는 곧


경서에 두루 통하고 능한 시문을 구사하여 당대에 높은 문명을 떨쳤음에도
재주를 드러내기를 꺼려 이직보가 그의 시 한수를 보고 매우 칭찬했다는
소문을 듣고 저술을 일체 남에게 보이지 않았다 합니다.

 

얼마나 존경스러운가요..

이렇듯 강정일당이 자신의 실력을 세인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를 아내 이상으로 생각하고 학문적 동반자로 인정해준 남편의 공이
무엇보다 컷다는 군요.

 

남존여비사상이 범접하지 못할 규범으로 인식됐던 시대에도
윤광연은 부인이 자신보다 나은 점을 인정했고
그를 십분 활용하도록 장려했던 모양입니다.

 

정일당은 학문을 한 지 20여년 만에 경지에 이르고
조선시대의 여인들 뿐만 아니라
전체 학자들을 통틀어서도 가장 뛰어난 학자 반열에 올랐습니다.

 

특이한 점은 그녀의 시는
다른 여성들의 작품과 달리 대부분
성인의 도와 학문 수련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일당이 이르기를
'내 비록 여자의 몸이나 하늘로부터 받은 성품이야
애초 남녀의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비록 "여자라도 노력한다면"
역시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
법우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녀는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직접 면대해 하기보다는 편지를 써 전했는데

남편에게 보낸 이 같은 편지 의 한 귀절을 보아도 알 수 있듯,


정일당은 여성성을 뛰어넘어 학문의 이치를 깨닫고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여자라도 성인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성리학을 공부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녀는 조선 후기 성리학 연구자이기보다는
성인이 되기를 지향한 여성 도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강정일당은 60년을 살다 순조 32년인 1832년에 눈을
그녀가 살았을 때는 평생 가난이 그녀 곁을 떠나지 않았으나
죽어서는 당대의 이름난 학자 매산 홍직필이 묘지명을 쓰고
강원회가 행장을 썼으며 송치규가 비문을 쓰는 호사를 누리게 됩니다.

 

이런 호사는 그녀의 죽음을 당대의 학자들이
큰 도학자의 죽음으로 인정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아마 조선시대의 여인들 중
어느 누구도 그와 같은 학문적 경지에
이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일간지에 난 그녀에 관한 기사입니다.
그녀의 시가 다른 여류한시작가들과 달리
매우 도학적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이점을 무시하면 시를
이해하기 힘든 것이 바로 강정일당 작품의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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