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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5.16군사혁명을 요사이는 5.16 군사 쿠데타 또는 군사 變亂이라고 부릅니다. 한국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쿠데타를 싫어하고 혁명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5.16을 굳이 쿠데타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4.19를 꼭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쿠데타나 혁명이나 기존 질서를 불법적으로, 또 폭력적으로 뒤엎는 것입니다. 쿠데타는 군인들이 하는 것이고 혁명은 국민 전체의 지지를 받는 집단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다분히 편의적인 해석입니다. 한국 현대사를 혁명적으로 바꾼 점에서는 5.16이 4.19보다도 훨씬 혁명적입니다. 혁명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근대화 혁명을 해낸 것이 5.16 주체세력이니까요. 4.19세력은 집권하지 못했지만 5.16세력은 집권했다는 차이에서 기인합니다. 4.19와 5.16은 절대로 대치 관계가 아닙니다. 오히려 承繼 관계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5.16군사혁명이 일어났을 때 많은 4.19세대들이 혁명을 지지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우리 힘으로 나라를 지키고 만들어가자, 국가 건설에 全국민들이 참여해야 한다, 미국의 도움은 고맙지만 우리도 경제를 발전시켜 제발 원조 안받고 한번 살아보자 하는 소박한 열망에서 4.19 정신과
5.16 정신은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5.16 주체세력은 30 - 40대 청년 장교들이었습니다. 대부분이 농촌 출신의 가난한 이들이었습니다.
박정희가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이들이 밀어낸 舊정치인들은 대부분 양반 家門의 50, 60대 地主 및 日帝 관료
출신들이었습니다. 조선조의 지배체제가 5.16에 의해서 비로소 끝장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5.16 혁명 속에는 계급혁명, 그리고 세대 교체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5.16이 날 때까지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할 것이라고 상상한 이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 생각은 한국인들의 辭典엔 없었단 말입니다. 고려 시대에 武臣亂이 일어나 武臣들이 한 100년간 집권한 적이 있었지만 그것은 너무나 멀리 있는 기억이었습니다. 조선조 시절은 전쟁과 군사를 모르는 文弱한 선비들이 집권한 시절이었고 그 때문에 日帝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문약한 정치전통을 이어받은 대한민국이 그래도 세계적인 强軍을 육성하게 된 것은 6.25 남침을 당하여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발버둥 치는 과정에서 가능했습니다. 李承晩 대통령이야말로 국군의 아버지이고 미국이야말로 국군의 산파였습니다. 5.16을 주도한 장교들은 결코 무식한 집단이 아니었습니다. 당시로서는 한국 사회의 최강 엘리트 집단이었습니다. 예컨대 1950년대에 외국 유학을 경험했던 장교들은 약1만 명이었습니다. 군인이 아닌 일반 공무원과 학자들 등 민간인들은 이 기간중 약5천 명의 유학생을 배출했습니다. 장교들의 해외 유학률(주로 미국에서
군사교육을 받았습니다)은 외무부 공무원들의 그것보다도 높았습니다. 이들은 또 조선조 시대 선비처럼 공리공론만 알고 실천력이 없은 그런 인물들이 아니었습니다. 군대 조직을 운영하고 死線을 넘으면서 신념화된 反共의식과 국가관이 뚜렷했고, 시스템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느냐에 대한
노하우를 갖고 있었습니다. 미군으로부터 최신 조직운영술도 배웠습니다. 군대는 과학기술 집단입니다. 장교들은 자연히 일반 공무원들이 놓치기 쉬운 과학 기술에 대한 이해가
있었습니다. 군인들은 관념의 유희를 즐길 수 있는 여가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사고방식이 실용적이고 효율적이며 건설적입니다.
이처럼 젊은 엘리트 집단이 5.16혁명을 주도했기 때문에 이들이 그 실력으로써 조국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5.16 주체 세력은 신라통일 주체세력과 버금 갈 정도의 역사적 사명을 다했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과연 박정희 - 전두환 정부보다도 한국의 발전에 더 기여했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엘리트가 과연 장교 엘리트보다도 더 유능했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소위 文民 엘리트들이 장교들의 근대화보다도 더 많은 역사적 과업을 수행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까. 어려울 것입니다. 민주화는 두 金씨의 독점물이 아닙니다. 민주화에 필요한 물질적 토대와 제도를 마련했던 박정희 정부와
두 金씨와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의 합작품인 것입니다. 민주화를 외치며 거리로 나왔던 사람들보다는 當代에는
욕을 먹어가면서 묵묵히 고속도로를 깔고 석유화학단지를 건설하고 종합체철소를 짓고
의료보험제도를 실시했던 사람들이 더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박정희로 대표되는 장교 엘리트들이 근대화 혁명을 통해서 만들어낸 위대한 유산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한국 사회의 주류층(중산층, 시민계급, 보수세력, 기성세력 등등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었습니다. 이들은 한국 사회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나라가 망하거나 체제가 엎어지면 잃을 것이 많을 만큼의 富를 축적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안보, 복지, 자유가 다 보장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승만, 박정희의 고마움과 김영삼, 김대중의 한계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주류층이 바로 한국 역사의 주인공으로 올라선 것입니다. 그 경계선은 전두환, 노태우 두 사람이 합의하여 6.29 민주화 선언을 한 1987년일 것입니다. 이 해를 경계로 하여 그 전이 영웅의 시대였다면 그 뒤는 국민의 시대가 된 것입니다. 아무리 머리 나쁘고 거짓말 잘하는 대통령이 나와도 대한민국은 이제 공산화될 수 없는, 쿠데타도 민중혁명도 불가능한 사회가 된 것입니다. 이 主流層이야말로 박정희의 진정한 후계자인 것입니다.
2012년 선거에서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든 한국은 발전할 것입니다. 진보할 것입니다. 그 발전의 원동력은 한국 주류층의 實力입니다. 주류층이 존중하고 있는 제도와 法治, 그리고 市場입니다. 한국 사회의 작동 원리가 권력자의 변덕이 아니라 이런 시스템과 시장이라면 한국은 지도자의 자질에 상관없이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엉터리 지도자가 나타나더라도 우리의 체제가 그를 교육하여 함께 전진할 것입니다. 물론 지도자가 위대하면 전진에 가속도가 붙겠지요. 민주주의의 위대성은 보통, 또는 그 이하의 지도자를 만나더라도 그 상처를
스스로의 힘으로써 치유해나갈 수 있다는 自生力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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