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침해진 눈을 들어 방안을 둘러보면
아랫목서 윗목까지 자식들이 하나가득
차 내버린 이불깃을 다독다독 여며주고
막내녀석 세워 안아 놋쇠요강 들이대고
어르고 달래면서 어렵사리 쉬 시키면
일할 엄두 사라지고 한숨이 절로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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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식 높고 점잖으신 시아버님 사랑방에
사시사철 끊임없는 접빈객도 힘겨운데
사대봉사 제사는 여나무번 족히 되고
정월 한식 단오 추석 차례상도 만만찮네
식구들은 많다해도 거들사람 하나 없고
여자라곤 상전 같은 시어머니 뿐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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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당추 맵다해도 시집살이 더 매워라.
큰 아들이 장가들면 이 고생을 면할 건가?
무정스런 세월가면 이 신세가 나아질까?
이 내 몸이 죽어져야 이 고생이 끝나려나?
그러고도 남는 고생 저승까지 가려는가?
어찌하여 인생길이 이다지도 고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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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같던 자식들은 귀여워할 새도 없이
어느 틈에 자랐는지 짝을 채워 살림나고
산비둘기 한쌍 같이 영감하고 둘만 남아
가려운데 긁어주며 오순도순 사는 것이
지지리도 복이 없는 내 마지막 소원인데
마음고생 팔자라서 그마저도 쉽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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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별채 육간 대청 휑 하니 넓은 집에
가문 날에 콩 나듯이 찾아오는 손주 녀석
어렸을 적 애비 모습 그린 듯이 닮았는데
식성만은 입이 짧은 제 어미를 탁했는지
곶감 대추 유과 정과 수정과도 마다하고
정 주어볼 틈도 없이 손님처럼 돌아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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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나 큰 일 때 객지 사는 자식들이
어린것들 앞세우고 하나 둘씩 모여들면
절간 같던 집안에서 웃음꽃이 살아나고
하루 이틀 묵었다가 제집으로 돌아갈 땐
푸성귀에 마른나물, 간장, 된장, 양념까지
있는 대로 퍼 주어도 더 못주어 한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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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발톱 길 새 없이 자식들을 거둔 것이
허리 굽고 늙어지면 효도 보려 한거드냐?
속절없는 내 한평생 영화 보려 한거드냐?
꿈에라도 그런 것은 상상조차 아니했고,
고목 나무 껍질 같은 두손 모아 비는 것이
내 신세는 접어두고 자식걱정 때문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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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갑 진갑 다 지나고 고희마저 눈앞이라
북망산에 묻힐 채비 늦기 전에 해두려고
때깔 좋은 안동포를 넉넉하게 끊어다가
윤색 든해 손 없는 날 대청 위에 펼쳐놓고
도포 원삼 과두 장매 상두꾼들 행전 까지
두 늙은이 수의 일습 내 손으로 지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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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한 게 세월이라 어느 틈에 칠순 팔순
눈 어둡고 귀 어두워 거동조차 불편하네
홍안이던 큰자식은 중늙은이 되어가고
까탈 스런 영감은 자식조차 꺼리는데
내가 먼저 죽고 나면 그 수발을 누가 들꼬
제발 덕분 비는 것은 내가 오래 사는 거라
내 살같은 자식들아 나죽거든 울지 마라!
인생이란 허무한 것 이렇게 늙는 것을
낙이라곤 모르고서 한평생을 살았구나!
원도 한도 난 모른다 이 세상에 미련 없다.
서산마루 해 지듯이 새벽 별빛 바래듯이
잦아들 듯 스러지듯 흔적없이 지고싶다.
사랑 - 이은상 시. 홍난파 곡
소프라노 : 송 광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