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음악의 이해

세상의 길가에 나무되어

淸山에 2011. 1. 27. 17:18
 

 

 
 
다음 소개하는 글은 전북대학교 영문과 이종민 교수의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이종민 교수의 홈페이지는 
 http://leecm.chonbuk.ac.kr/~leecm/index.php 
입니다.
 
이종민 교수의 안내글입니다.
"제가 2000년 6월 어느날부터 친구들에게 보내기 시작한 음악편지를 모아 놓은 것입니다.
음악에 관한 간단한 해설을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와 더불어 실어놓았습니다. 물론 음악에 관한 해설은
애호가 수준의 소박한 것입니다. 혹 직접 메일로 받아보기를 원하는 분이 계시면 저에게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감상하시고 도움 주실 말씀이 있으면 방명록에 남겨놓으시기 바랍니다."
 
 MUSIC LETTER
 
 

 

 
 
세상의 길가에 나무되어
 
 
새해가 다시 밝았습니다. 늘 반복되는 일이지만 달력이 바뀌면 그만큼 새로운 관계가 열리리라, 부푼 꿈에 허한 다짐들을 소망삼아 해댑니다. 올해 처음 받은 문자편지도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올해에는 당신과 함께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 합창을 꼭 듣고 싶습니다!”

합창교향곡이 반갑고, 함께 듣고 싶다는 말은 더 정겹고. 그런데 왜 이토록 하고 싶은 멋스러운 일을 이제까지 미뤄왔던가? 올해도 혹 신년 인사치레로 끝나는 것은 아닐까? 방정맞은 생각이 새벽잠 앗아가는 세월만큼이나 부지런을 떱니다.

그에 비하면 지난 연말 박남준 시인과의 만남은 ‘아름다운 관계’를 위한 더욱 확실한 디딤이었다 하겠습니다. 음악편지를 통한 북한어린이돕기모금운동에 힘을 보태겠다고 통통한 돼지저금통을 들고 해를 넘길 수 없다며 찾아온 것입니다.

잘 알려진 일입니다만 악양 동매마을 시인의 집에는 손님이 끊이질 않습니다. 술은 대개 들고 오지만 차와 국수는 염치 불구하고 공짜로 청하게 마련입니다. 오랜 나그네 생활에 익숙한 시인인지라 누구를 가리지 않고 반깁니다. 말하자면 ‘나그네 환대’(hospitality)의 불문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식탁을 겸한 마루찻상 한 편에 돼지저금통 하나 비치해두었고요. 그 등엔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전쟁과 질병, 가난으로 고통받는 세상의 아이들과 북쪽 어린이 두유보내기에 쓰입니다. 사랑을 나누는 당신의 손길 아름답습니다.”

이렇듯 내방객들의 마음의 짐을 사랑의 베풂으로 이끌면서 모은 돈을 한해에 두어 차례 전해줍니다. 그 ‘전달식’도 밋밋하지 않습니다. 함께한 사람들에게도 ‘아름다운 관계’를 맺을 귀한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하여 그날, 이름도 어여쁜 ‘새벽강’ 술꾼들도 시인 덕분에 식어만 가는 사랑의 난로 따뜻하게 한번 피우며 한해를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임실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시인보다 더 시적인 박민욱씨도 사각저금통을 싸들고 와 제가 빚어 내놓은 매실주를 더욱 감칠맛 나게 해주었습니다.


박남준의 '세상 길가에 나무되어' / 유종화 곡, 허설 노래
유럽여행중 찍은 사진과 최근 전북대 교정에서 찍은 사진으로 동영상 꾸밈
 
덕분에 작년 목표액 천만원을 훌쩍 넘기게 되었습니다. 일곱번째 일입니다. ‘하루에 백 원 모으기’로 칠년 동안 칠천만원을 모았습니다. 이 모두 배고픔에 시달리는 북한 어린이들에게 제공되는 콩우유 원료를 구입하는 데 쓰입니다. 사람 입이 무섭다고들 하지만 손은 더 무섭습니다.

마음과 손이 모이면, 박 시인이 ‘아름다운 관계’에서 읊고 있는 것처럼 “아무것도 키울 수 없던 불모의 바위” 위에 “저렇게 싱싱”한 소나무를 자라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소나무는 자라나 푸른 그늘을 드리우고/ 바람을 타고 굽이치는 강물소리 흐르게 하고/ 새들을 불러 모아 노랫소리 들려주고.”

그렇게 나눔을 통해 ‘아름다운 관계’의 망은 커갑니다. 올해에는 이렇게 넓어진 그물이 더욱 더 굳건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실용의 자본세상에 주눅 들어 점점 날카롭게 벼리는 이기심의 칼날도 너끈히 견딜 수 있도록 탄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마음을 담아 음악 하나 올립니다. 박남준 시인의 ‘세상의 길가에 나무되어’. 유종화가 곡을 붙인 것으로 노래는 허설이 불렀습니다. “먼 길을 걸어서도” 만날 수 없는 ‘당신’을 기리는 매우 애틋한 서정이 담겨있는 시(노래)입니다. “새들은 돌아갈 집을 찾아/ 갈숲 새로 떠나는데” 가야 할 길을 몰라 “어둔 밤까지” “길이란 길을 서성”이는 우리네 인간들의 실존적 방황을 함축하고 있기도 합니다. 퇴고(推敲)라는 말을 탄생시킨 일화가 묻어있는 당나라 시인 가도의 시 “새들은 호숫가 나무 위에 잠들었는데(鳥宿池邊樹)/ 중은 달 아래 문을 두드리고 있구나(僧敲月下門)”를 떠올리게도 하는 작품입니다. 마지막 구절의 결연한 체념에는 처연한 아름다움까지 스며있습니다.

덤으로 박남준 시인이 직접 낭송한 ‘아름다운 관계’도 보내드립니다. 이 노래와 시 들으시며 시인의 말처럼 “삶의 어느 굽이에 나, 풀꽃 한 포기를 위해/ 몸의 한편 내어준 적 있었는가” 뒤돌아보는 소중한 체험, 새해 벽두에 해보시기 바랍니다.
 

박남준의 '아름다운 관계' 
 박남준 낭송, 한보리 배경음악 작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