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 고문
천안함을 보았다… 찢어진 사지를 보았다… 그 울음을 들었다 온 국민이 보고 들어 한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영면할 것
지난주 조선일보 간부 및 편집국 기자 40여명과 함께 평택 제2함대에 있는 '천안함'을 보고 왔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천안함의 두 동강 난 잔해를 보고 왔습니다. 텔레비전과 사진으로 수백 번도 더 본 천안함을 가까이서 대한 느낌은 참상을 넘은 분노와 역겨움이었습니다.
천안함은 울고 있었습니다. 종잇장처럼 구겨진 절단면은 사지(四肢)가 찢어진 아픔을 그대로 전하고 있었고, 차가운 바닷바람이 불 때마다 파편 사이로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그것은 46명 전사의 울부짖음 같은 것이었습니다. 절단면 양쪽에 삐져나온 철근과 어지럽게 늘어진 전선, 파이프들은 아래로부터의 폭발을 증언하듯 모두 위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파열된 천안함의 '내장'들은 우리들의 복부가 잘려나간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시신이 있었던 선미의 내부에 들어갔을 때 천안함의 울음소리는 더욱 생생했습니다. 식당 겸 휴게소, 침상이 걸려 있었던 침실 등은 비교적 깨끗이 청소돼 있어 당시의 처참했을 아비규환의 흔적을 어느 정도 지우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곳에 떠도는 병사들의 영혼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즉사보다 더욱 괴롭고 처참한 질식의 순간들이 우리에게 그대로 옮겨져 우리의 숨이 막히는 듯했습니다.
두 동강 난 천안함의 잔해는 우리가 처한 '분단'의 현실과 민족의 이산(離散)을 상징합니다. 우리 땅, 우리 민족은 지금 천안함처럼 남과 북으로 두 동강 나 있습니다. 우리는 천안함의 절단면에서 남북을 가른 DMZ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갈기갈기 끊어진 민족의 영혼과 가족의 핏줄이 그대로 농축돼 있는 듯했습니다.
천안함의 '두 동강'은 또 우리 대한민국 내부의 이념적 갈등을 상징하는 듯했습니다. 이미 둘로 갈린 이 땅의 남쪽 또한 좌·우로 갈려 이전투구의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천안함의 폭침이 북쪽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질적 요소들이 판치고 있습니다. 2함대측은 국정감사 때 이곳을 찾은 국회 관계위의 야당의원들은 천안함의 참상을 그저 멀리서 구경하듯 보고 갔다고 했습니다. 천안함 폭침의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 감히 그 참혹함 앞에 설 용기가 없었으리라. 천안함의 명백한 증언 앞에서조차 고개를 돌리려는 우리 내부의 이질적 요인과 친북적 색깔들이 우리를 더 분노하게 하고 천안함의 울음소리를 더욱 크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천안함의 절단이 상징하는 또 하나의 현상은 우리 정부 내부의 안보적 혼선입니다. 현 정권뿐 아니라 역대 정권, 특히 좌파 10년의 정권에서 누적된 안보 불감증은 우리의 국력이 두 동강 나 있음을 상징합니다. 청와대와 국방 당국, 대통령과 참모, 여당 내에 빚어진 불협화음은 대한민국의 능력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안함 이후 연평도 포격사태에서 또 한 번 흔들릴 뻔했습니다. 그러나 천안함이 있었기에 이제는 정신을 차릴 때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천안함 앞에서 머리를 숙여 묵념하며 그들에게 감사하는 것은 천안함의 주검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깨닫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천안함이 세월의 흐름과 함께 그저 그렇게 잊혀져 갈 것을 걱정했습니다. 머지않아 천안함을 찾는 발길은 뜸해질 것이며 천안함은 누렇게 녹슬어 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8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천안함을 찾았다는 2함대측의 설명은 우리를 안도하게 했습니다. 특히 중·고등 학생들이 참관단의 상당부분을 차지했다는 점은, 그러지 않아도 시들어가는 우리의 안보태세와 대북관에 청량제 같은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믿습니다.
우리 군(軍)은 2함대 내에 안보공원을 만들고 한반도 분단의 희생자이며 한국 안보의 상징인 천안함과 참수리호 등을 옥내로 수용할 건축물을 건설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식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분단된 천안함을 전국에 순회해 전시할 수 없다면 서울 중심가에라도 옮겨와 많은 국민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게 할 수는 없는 것이냐고. 대답은 그 엄청난 무게의 쇳덩어리를 옮기고 지탱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물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고집해봅니다. 이미 수백, 수쳔년 전에 만리장성도 쌓고 피라미드의 돌도 옮겼는데 21세기에 천안함의 잔해 정도 옮길 수 없는 것이냐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천안함의 참상을 직접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천안함이 왜, 누구에 의해, 무엇으로 폭파됐는지를 온 국민이 직접 보고 한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천안함은 비로소 울음을 멈출 것이며 민족의 품에서 영면하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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