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예술/포토의 순간

법정스님과 길상화의 아름다운 넋이 깃들여진 도심 속의 산사

淸山에 2010. 12. 28. 07:52
  

 

 
 

 

 

' 서울 도심 속의 포근한 산사, 성북동 길상사(吉祥寺) '

 

 


길상사 극락전
▲  연등이 하늘을 가린 극락전 뜨락

 

 

 

 

 



 

 

봄이 막바지 절정을 누리던 5월 말, 후배 여인네와 성북동 길상사를 찾았다. 우선 간송미술관
특별전을 둘러보고 뽕나무가 무성한 선잠단지(先蠶壇址, 사적 83호)와 굳게 닫힌 성락원(명승
35호)을 거쳐 길상사로 향했다.

길상사로 가는 길은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으리으리한 금입택(金入宅)의 연속이다. 성문보
다 더 두꺼운 그들의 대문은 충차(衝車, 공성무기의 하나)로도 뚫지 못할 정도로 굳게 닫혀져
있으며, 그것도 마음이 놓이질 않는지 방범장치가 겹겹이 설치되었다. 담장의 높이 또한 그들
의 폐쇄성을 여실히 드러내 듯, 제아무리 홍길동이라도 고개를 숙일 정도로 높이 솟았다.

저택 뜨락에는 담장 밖으로 손을 내민 나무들이 가득하여 우거진 숲길만큼이나 푸르름이 넘친
다.특히 늦가을에는 울긋불긋 타오른 그들의 처절한 아름다움과 우수수 내려앉은 낙엽들로 황
홀한 산책로를 자아낸다. 게다가 도심과 가까움에도 분위기도 조용하고 차분하여 산책 코스로
도 딱 그만이다. 그래서 서울에서 가을이 가장 아름다운 장소로 성북동을 꼽는다.비록 서민들
이 오기에는 다소 우울한 곳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저택의 위엄에 너무 꼬리를 내릴 필요는 없
다. 제아무리 한덩치 하는 저택이라 한들 대자연 앞에서는 일개 모래성만도 못하기 때문이다.
괜히 기죽지 말고 가슴을 피며 나만의 산책로로 만들면 그만인 것이다.

 

 

 

 

 

 

 

♠  길상사 관음보살상, 설법전



▲  길상사 일주문(一柱門)

 

속세에서 길상사로 들어서려면 '삼각산 길상사'라 쓰인 정문(일주문)을 들어서야 된다. 2000년
에 지금의 모습으로 수리했으며, 정문을 들어서면 초록의 싱그러운 아름다움이 풍기는 길상사
내부가 펼쳐진다.

 

 

◀  관음보살과 성모 마리아를 섞은
길상사 관음보살입상(觀音菩薩立像)

 

정문에서 설법전으로 가면 늘씬한 자태를 지닌 특이한 석상이 눈길을 단단히 잡아맨다. 바로 관
음보살 누님이다. 그런데 그 흔한 관음보살처럼 생기지 않았다. 관음보살이 중생을 어루만지는
어진 누님이자 성모(聖母)와 같은 존재라 여인네처럼 아름답게 꾸며지는 경향이 있지만 대부분
은 비슷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곳 관음보살은 네모나게 다듬어진 커다란 돌을 대좌(臺座)로 삼
고 그위에 소박하고 날씬한 모습으로 곧게 서 있는데, 천주교의 성모 마리아와 비슷한 이미지로
지어졌다.

이 관음보살은 천주교 신자이자 우리나라 조각계의 거장인 최종태씨가 만든 것으로 관음보살을
보살이 아닌 불모(佛母)로 삼아 만들면서 세상에 화제가 된 바가 있다. 2000년 4월에 봉안되었
으며, 높이는 1.8m이다. 비록 불상의 면모는 다소 떨어지긴 하지만 불교와 천주교가 서로 돕고
교류하여 어루어진 상징물로 그 가치는 크다.

머리에는 관음보살이 필수로 쓰는 보관(寶冠)을 썼지만 그 모습은 유럽 왕이 쓰던 왕관과 비슷
하다. 머리결은 목 뒤쪽까지 내려왔으며, 얼굴은 자애로운 성모의 얼굴이다. 오른손을 들어 시
무외인(施無畏印)을 취했으며, 왼손에는 감로수가 든 정병(政柄)을 들고 있다. 손 아래쪽은 아
무런 조각이 없다.

 

 

 

◀  관음보살입상 맞은편에 자리한 샘터

절을 찾은 중생의 목마름을 해소해주는 고마운
샘터로 늘 물로 가득하다. 바가지에 물을 담아
한모금 들이키니 몸과 마음 속에 낀 떼와 번뇌
가 말끔히 씻겨 내려간 듯, 속이 시원하다. 샘
터 위쪽에는 범종각(梵鍾閣)이 자리해 있다.


▲  길상사 설법전(說法殿)

 

길상사 좌측 높은 곳에 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설법전이 있다. 설법전은 강당과 교육의 공간으로
기존 요정 건물을 개조했다. 불전(佛殿)의 이미지보다는 한옥으로 된 거대한 민박집이나 강당같
은 이미지가 강하게 풍긴다. 깔끔하게 정비된 설법전 내부는 매우 넓고 깨끗하며, 금동석가불좌
상이 봉안되어 있다. 그 주위로 인도에서 가져온 옥으로 만든 수백 개의 옥불(玉佛)이 장관을
이룬다.

 

 

 

 


▲  설법전 내부는 연병장처럼 무지 넓다.

 

 



▲  저보다 밝은 표정이 있을까? 미소를 한가득 품은 금동석가불좌상

 

살이 푸짐한 그의 표정이 너무나 밝아 나도 모르게 마음이 두근거린다. 불상과 대좌(臺座), 광
배(光背)가 죄다 금동으로 수려하게 꾸며져 눈이 부담될 지경이다. 이 불상은 2000년 8월에 조
성되었다.

 

 


▲  중생의 시주로 하나씩 지어올린 옥불(玉佛)

 

두손을 모아 보리수 아래서 선정에 임한 부처의 모습을 옥으로 만든 것이다. 금동불 주변을 가
득 메운 옥불의 장대한 물결은 그 수려함에 입이 좀처럼 다물어지지 않는다.

 

 

 

 

 

 

 

 

 

 

 

♠  길상사 극락전(極樂殿)



▲  길상사 극락전

 

길상사의 법당인 극락전은 옛 대원각의 중심 건물이다. 극락전에는 방이 꽤 많은데, 가운데 방
에 극락전의 주인 아미타불(阿彌陀佛)이 모셔져 있고, 그 옆방에는 석가불이 있다. 뜨락을 가득
메우며 하늘을 가린 고운 색채의 연등은 속세와 하늘의 세계(혹은 부처의 세계)를 가르는 구름
같다.

 

 


▲  극락전 금동아미타3존불

 

극락전 아미타3존불은 길상사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으로 1997년 11월에 조성되어 12월에 봉안되
었다. 길상사의 창건을 지켜본 불상으로 인자함이 깃들여진 표정으로 중생을 맞는다. 그의 오른
쪽에는 육환장(六環杖)이란 지팡이를 든 지장보살(地藏菩薩)이 서 있으며, 왼쪽에는 보관을 쓴
관음보살이 나란히 자리한다. 두 협시불(夾侍佛) 역시 자애로운 표정은 아미타불 못지 않아 집
으로 보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피어난다. 3존불 뒤에는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금니(金泥)
후불탱화가 있다.

 

 


▲  극락전 뜨락에 펼쳐진 연등의 화려한 향연


연등이 아름다운 것은 단순히 색깔이 고와서가 아니다. 바로 속세의 고통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중생들의 소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  극락전 좌측 화단에 조그만 불상과 마애불


극락전 좌측 화단에는 중생이 갖다놓은 조그만 불상과 동자상이 삼삼오오 모여
그들만의 작은 세상을 꾸린다. 그중에서 길다란 돌에 새겨진 추상화 같은
선각마애상(線刻磨崖像)이 꽤 이채롭다.

 

 


▲  극락전 우측의 돌문
 


▲  살림살이좀 펴 지셨나요?
동전을 가득 품은 불상

궁궐이나 고급 한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품격
이 돋보이는 문으로 옛 요정시절의 화려하면서
도 어두웠던 시절을 아련히 전한다.

 

 

 

중생들이 갖다놓은 무수한 동전에 조금은 언짢
은 듯, 인상을 썼다. 부처는 재물에 관심이 없
는데 왜 자꾸 동전을 놓고 가는지 원..

 

 

 


▲  길상사에서 가장 오래된 자연물이자 봄의 절정을 누리는 느티나무

 

길상사에는 2그루의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다. 모두 극락전과 정문 사이에 있는데, 사진에 나온
느티나무는 길상사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나이가 무려 270년에 이른다. (안내문에는 265년이
라 나왔는데, 270년으로 반올림해도 무방할 듯) 높이는 12m, 둘레는 3.2m로 서울시 보호수 8-5
이다. 오랜 세월을 양분으로 꾸준히 먹고 자란 탓에 제법 품격을 갖추었다. 경내에 시원한 그
늘을 드리워 승려와 중생을 더위로부터 보호해주며 여름의 제국도 나무의 기세에 고개를 숙인다.

사진에는 없지만 설법전 부근에는 수령 170년(안내문에는 165년이라 나옴) 먹은 느티나무가 있
다. 높이는 12m, 둘레는 2.5m로 서울시 보호수 8-6호이다.

 

 

 

 

 

 

 

 

 

♠  길상사 지장전(地藏殿)



▲  동쪽을 바라보며 자리한 지장전

 

경내 북서쪽에는 '나누는 기쁨'이란 이름의 찻집과 지장전이 자리해 있다. 설법전과 극락전이
기존의 요정을 개조한 집인데 반해 지장전은 새롭게 만든 건물로 2004년 10월 17일에 상량식(上
樑式)을 가져 2005년 5월 8일에 완성을 보았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우람한 맞배지붕 기와집
으로 3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층은 밥을 먹는 공양간인 선열당(禪悅堂), 2층은 도서관, 3층
은 지장전이다. 건물 앞에는 보름달을 닮은 동그란 연못이 놓여져 있고 주위로 푸른 잔디가 곱
게 입혀져 있다.

 

 


▲  지장전에 모셔진 지장보살상

 

지장전 내부는 설법전만큼이나 넓다. 불단에는 육환장을 든 지장보살이 해맑은 미소로 앉아 있
으며, 좌우로 염라대왕(閻羅大王) 등이 그를 협시(夾侍)한다. 그들 뒤로 붉은 색채의 지장후불
탱화가 걸려있다.

 

 


▲  지장전 뜨락을 가득 메운 연등의 고운 물결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별, 철새의 무리가 아무리 많다고 한들 이곳의 연등보다는 적을 것이다.
중생의 소망을 하나씩 머금으며 허공을 메운 그들의 아름다운 물결은 속세에 오염되어 볼 것을
제대로 못보는 중생의 눈과 마음을 뜨게 만든다. 햇님이 84,000광보다 더 많은 햇빛을 뿌리며
휘장을 치는 저녁이 되면 연등은 스스로를 태우며 황홀한 풍경을 자아낼 것이다.

 

 

 


▲  지장전 뜨락 (연잎으로 가득한 연못과 잔디밭)


연못에는 곧 다가올 여름의 향연을 준비하는 연(蓮)들이 막바지 와신상담 중이다.

 

 

 

 

 

 

 

 

 

 

 

♠  길상사 나머지 부분 (길상헌, 길상화공덕비, 침묵의집)

 



▲  계곡 건너에 자리한 길상헌(吉詳軒)


길상사 고참 승려의 생활공간으로 요정 시절에는 김영한과 요정 식구들이 생활했다.
김영한이 마지막 밤을 지내며 인생을 마감한 곳이기도 하다.

 

 


경내 북쪽은 남쪽과 달리 자연의 비중이 높은 공간이다. 무성한 나무가 숲을 이루며, 북한산 남
쪽 줄기(국민대 뒤쪽 줄기)에서 발원(發源)한 계곡은 길상사 서쪽을 가로질러 어두컴컴한 땅 속
으로 들어가 성북천(城北川)으로 흘러간다. 계곡 건너 나무가 우거진 언덕에는 조그만 집들이
가득한데, 이들은 요정 시절 손님을 접대하던 공간이다. 지금은 승려의 참선공간으로 쓰인다.

찻집 부근 쉼터에서 계곡을 건너면 절의 고참 승려가 머무는 길상헌과 길상화의 공덕비가 있다.
경내 가장 북쪽에는 승려의 생활공간이 있으며, 극락전 뒤쪽에는 침묵의집을 비롯한 여러 집들
이 모여 있다.

 

 


▲  창건주 길상화(김영한) 공덕비

 

창건주 길상화를 기리고자 그의 2주기인 2001년에 세운 것이다. 비석이라고는 하지만 기존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며, 비석 머리에는 사발 2개를 포개놓은 듯한 장식물이 눈길을 끈다. 나도
나중에 졸부들 못지 않은 부자가 된다면 길상화가 그랬던 것처럼 인생 말년에 모든 것을 세상
을 위해 내놓을 수 있을까...?

 

 

◀  길상사 경내를 가로지르는 계곡

이 계곡은 정릉 뒷산에서 발원하여 성북천으로
흐르는 것으로 약간의 인공(人工)이 더해졌을
뿐,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그야말로 길상동
천(吉詳洞天)이라 칭해도 손색이 없는 수려한
풍경이다. 김영한은 바로 이 계곡에 매료되어
이곳에 대원각을 지었다고 한다.

계곡 바위는 신선의 세계에서 물래 가져온 듯
멋드러진 모습을 자랑한다. 비록 작지만 폭포
도 2개나 있는데, 물줄기가 실타래처럼 가늘어
속세의 삶처럼 너무 답답하다.


▲  경내 북쪽 언덕에 터를 닦은 조그만 집들


요정 시절 손님 접대 공간으로 지금은 참선 공간으로 탈바꿈했으며,
능인당, 죽림당, 반야당, 육화당 등으로 불린다.

 



▲  부끄러운 과거를 숨기려는 듯 덩굴로 동쪽 벽을 가린 반야당(般若堂)

 

 



▲  경내 북쪽의 출입통제 공간


길상사 승려의 생활, 참선 공간으로 일반인의 출입은 여기까지이다.

 

 



▲  극락전 동쪽 구역


요정 시절 건물들이 외형을 그대로 간직하며 절의 불전으로 쓰이고 있다.
절집보다는 여염집 분위기가 진하게 풍긴다.

 

 



▲  춤추는 물줄기와 물이 태산처럼 고인 동그란 연못

 

 



▲  침묵(沈默)의집

 

침묵의집은 중생들이 자유롭게 참선을 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명상을 즐길 수 있는 열린 공간으
로 1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조그만 방이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17시까지 사용할 수 있다. 최
대 인원은 8명(방은 8개 정도)으로 인원이 찼을 경우는 방이 빠질 때까지 기다려야 된다.

 

 


▲  길상사에서 누린 일다경(一茶頃)의 여유

 

길상사 관람을 마무리하고 지장전 옆의 '나누는 기쁨' 찻집에서 기분 좋게 차 1잔의 여유를 누
린다. 길상사 찻집은 보통 16시까지 운영하며, 녹차와 매실차, 국화차 등의 전통차를 판매한다.
차의 가격은 2~3천원으로 인사동이나 삼청동(三淸洞)의 절반 가격이며, 리필이 가능하다는 착한
장점이 있다. 연꽃을 닮은 조촐한 잔에 차를 부어 잣 2덩어리를 조각배처럼 띄워 제공하는데 나
는 매실차를 마셨다.

이렇게 차를 마시며 담소를 즐긴 시간이 거의 1시간이다. 차의 향기와 차와 함께 즐기는 담소의
재미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길상사 기둥이 썩어 문드러지는 줄도 모르고 머물렀던 것이다.

길상화의 숭고한 뜻과 법정의 무소유 정신, 중생구제를 향한 부처와 관음보살의 뜻에 따라 세상
이 문을 닫는 그 순간까지 오로지 중생을 위해 헌신하며, 세속과 겉멋에 물들지 않는 정말 순수
의 불교 도량이자 도심 속의 극락, 길상사로 남기를 고대하면서 도심 속의 포근한 산사, 길상사
나들이는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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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 시작일 - 2009년 12월 11일
 * 작성 완료일 - 2009년 12월 12일
 * 숙성기간 - 2009년 12월 12일 ~ 2010년 4월 3일
 * 공개일 - 2010년 4월 3일부터
 * 마지막 수정 - 2010년 4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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