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칼럼] 前方·後方 온도 차이보다 무서운 안보의 敵
강천석 주필 기사
▲ 강천석 주필46년 만에 4650배 성장한 수출 기적 빛 가려 아쉬워 올해는 안보·再出發의 해, 대한민국 반성할 점 많다
2010년 우리 수출이 4650억달러에 이르리라고 한다. 세계 7위다. 우리 앞엔 중국·미국·독일·일본·네덜란드·프랑스의 여섯 나라밖에 없다. 우리 수출이 사상 처음으로 1억달러를 돌파한 1964년을 기준으로 하면 4650배, 10억달러를 넘어선 1970년 기준으론 465배, 100억달러를 달성한 1977년 기준으론 46.5배 성장했다. 우리는 미국 텍사스의 7분의 1, 캘리포니아의 4분의 1밖에 안 되는 땅덩어리 위에서 1960년 아프리카의 가나와 똑같았던 경제를 여기까지 끌어올렸다. 근로자의 땀, 과학 기술자의 고심(苦心), 기업 경영인의 선택, 국가 지도자의 결단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작품이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에 그런 뿌듯한 마음으로 올해를 전송(餞送)하는 사람은 없다. 수출 통계 뒤에 가려진 10%에 육박하는 청년 실업자들의 얼굴 때문만이 아니다. 낭떠러지를 굴러 하류층으로 미끄러진 중산층이 내지르는 겁에 질린 목소리 때문만도 아니다. 우리는 올 3월 26일 저녁 9시 22분 천안함 장병 46명의 싱싱한 넋을 백령도 앞 밤 바다의 차고 검푸른 파도에 실어 떠나보내야 했다.
그때 천안함을 동강 낸 북한 어뢰 추진체에 쓰인 '1번'이라는 표기를 이쪽에서 나중에 적어 넣은 거라고 우기던 무리들이 있었다. 그로부터 7개월 후인 11월 23일 낮 2시 34분부터 연평도에 쏟아져 내린 170발의 북한 해안포와 방사포의 포탄이 겨우 그들 입을 막았다. 2명의 민간인과 2명의 해병 병사의 목숨을 앗아간 포탄 껍데기 위 '①'이란 숫자를 확인한 다음의 일이다.
북한 경제 규모는 우리의 50분의 1, 수출은 465분의 1, 발전량(發電量)은 16분의 1, 철강 생산은 50분의 1, 원유(原油) 도입량은 223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 주민 대부분이 강냉이와 수숫가루로도 배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군사력과 전투력이 경제력에 정확히 비례(比例)한다면, 천안함 폭침도 연평도 기습 공격도 발생할 수 없다.
나라와 국민을 지키려면 더 근본적 요소가 먼저 갖춰져야 한다. "국가 지도자는 조국의 안전이 걸린 문제에선 정당한 것인가·정당하지 않은 것인가, 자비로운 것인가·자비롭지 않은 것인가, 칭찬받을 만한 일인가·칭찬받지 못할 일인가를 넘어서야 한다. 조국의 생존과 자유를 지키는 일은 모든 것에 우선한다." 16세기 어느 도시 국가 정치 사상가의 말이다. 우리 결의가 이렇다고 적(敵)이 믿고 두려워하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 어느 곳에서든 안전하지 못하다. 이번 군(軍) 인사가 걸린다. 지도자들이 반성할 대목이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은 국제법·유엔 헌장·남-북 기본합의서를 비롯한 모든 남북 협약을 위반한 불법 기습 공격이다. 그러나 이런 군사 격언(格言)도 있다. '기습은 없다. 기습에 앞서 방심(放心)이 있었을 따름이다.' 군 지휘부가 뼈아프게 새겨야 할 지적이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서부전선에서만 영국군 장교 12만명, 사병 257만명이 죽거나 부상했다. 그런데도 전쟁 발발 다음 해인 1915년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학 재학생 3분의 2가 자원입대했다. 가장 많은 입대 소감이 이랬다. "건강한 내가 이런 때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게 너무나 불명예(不名譽)스러웠다." 한나라당 남성 의원 148명 가운데 50명이 군 면제자 또는 입대한 날 바로 제대하거나 방위병이 된 사람이다. 민주당 남성 의원 73명 중 24명도 같은 케이스다. 행정부도 마찬가지다. 이래서는 병역(兵役)이 대한민국 젊은이의 명예일 수 없다.
미국 독립 시대의 정치가 토머스 페인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려는 병사로 구성된 군대만큼 용맹한 군대는 없다"고 했다. 이 나라의 대표적 기업이 아무 거리낌 없이 아들·딸·사위에게 경영을 속성(速成)으로 통째로 물려주는데 병사들이 그걸 지키기 위해 용맹하기만을 기대할 순 없다.
후방(後方)의 문제다.
엊그제 서울은 영하 12.9도, 바람이 초속(秒速) 4.5m, 체감온도 영하 18도였다. 그날 우리 병사들이 보초를 선 향로봉은 영하 23.1도, 풍속 4.5m, 체감온도 영하 30도, 대성산 자락 철원은 영하 17.9도, 풍속 3m, 체감온도 영하 24도였다. 대성산 고지(高地)의 추위는 훨씬 매서웠을 것이다. 이런 기온 차이보다 안보에 더 무서운 적(敵)은 전방과 후방의 정치적·사회적·경제적 균열(龜裂)이다. 대한민국 안보의 재출발은 그걸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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