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예술/애송詩 모음

김소월 의 시 6편

淸山에 2010. 12. 7. 19:37

 

 

 

 

 



가는 길

- 김소월-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엄마야 누나야

- 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강변(江邊)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金)모래빛,

뒷문(門)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江邊) 살자.!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김소월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산유화

- 김소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초혼

- 김소월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어!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어!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어!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멀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못 잊어

- 김소월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끝 이렇지요,
그리워 살틀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금잔디

- 김소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深深) 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 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 산천에도 금잔디에.



님의 노래

- 김소월


그리운 우리 님의 맑은 노래는
언제나 제 가슴에 젖어 있어요

긴 날을 문 밖에서 서서 들어도
그리운 우리 님의 고운 노래는

해지고 저무도록 귀에 들려요
밤들고 잠드도록 귀에 들려요

고이도 흔들리는 노랫가락에
내 잠은 그만이나 깊이 들어요

고적한 잠자리에 홀로 누워도
내 잠은 포스근히 깊이 들어요

그러나 자다깨면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 없이 잃어버려요

들으면 듣는 대로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잊고 말아요.



먼 후일

- 김소월


먼 후일 당신이 찾으시면
그 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잊고
먼 후일 그때에 '잊었노라'



부모

- 김소월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 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날에
내가 부모되어서 알아보랴.



옛 이야기

- 김소월


고요하고 어두운 밤이 오며는
어스레한 등불에 밤이 오며는

외로움에 아픔에 다만 혼자서
하염없는 눈물에 저는 웁니다.

제 한몸도 예전엔 눈물 모르고
조그마한 세상을 보냈읍니다.

그때는 지난날의 옛 이야기도
아무 설움 모르고 외었읍니다.

그런데 우리 님이 가신 뒤에는
아주 저를 버리고 가신 뒤에는

전날에 제게 있던 모든 것들이
가지가지 없어지고 말았읍니다.

그러나 그 한때에 외어 두었던
옛 이야기뿐만은 남았읍니다.

나날이 짙어가는 옛 이야기는
부질없이 제 몸을 울려 줍니다.



왕십리

- 김소월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朔望)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랴거든

왕십리 건너 가서 울어나 다고,
비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히 젖어서 늘어졌다네.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