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전선사와 韓退之(韓愈)
예쁜 기생을 시켜 유혹하게 하다
당나라 중기 남양 등주땅에 태어나
뛰어난 문장으로 후세에 당, 송 팔대가의 한사람으로 추앙받은 한퇴지는
처음에는 불교를 매우 배척하여 자사(지방장관, 주지사) 벼슬에 올라 불법을 비방하는
글을 자주 상소하다가 왕(憲完)의 미움을 받아 서울(장안)에서 8000리 떨어진
변방의 조주(潮州) 자사로 좌천되었다.
그때 조주땅에는 태전선사라는 고승이
축령봉에서 수년간 수도에만 전념하여 생불(生佛)로 추앙받고 있었다. 한퇴지는 문득 태전선사를 시험해서 불교를 다시 한 번 깍아 내리고 싶은 생각에
그 고을에서 유명한 기생 홍련을 불러 계교를 일러 주었다.
만약 백일안에 태전선사를 파계시키면 후한상을 내리겠거니와
실패하는 날에는 죽음을 각오할 것을 약속하였다.
홍련은 자신의 미모나 경력으로 봐서도 자신만만하였다. 다음날 몸매를 더욱 아름답게 꾸미고 험한 산길을 올라
해질녘에야 스님의 암자에 도착하였다.
태전선사를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린 홍련은
“오래 전부터 큰스님의 훌륭한 덕을 흠모해 오던 차
이번에 큰스님 시중도 들면서 백일기도를 올리고 싶어 먼길을 마다 않고 왔습니다.
자비로 거두어 주십시오.
만일 거절하신다면 소녀는 이 자리에서 목숨을 끊고 말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깊은 산골 외딴 암자에서 머물게 된 홍련은
일이 성사된 것처럼 마음속으로 기뻐하였다.
다음날부터 건성으로 기도를 하고
태전선사의 시중을 들면서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지만
한 달이 넘어가도 선사는 좌선에만 전념한 채 홍련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일이 이쯤되자 마음이 조급해진 홍련은
온갖 수단 방법을 동원하여 선사를 무너뜨리려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약속한 날은 하루하루 다가와서 마침내 약속한 백일이 내일로 다가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홍련은 이미 태전선사의 고매한 인품에 감동되어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경망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지만 자사 한퇴지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니
화를 당할 일이 눈앞에 아른거려 약속한 백일이 되는 날 아침 태전선사 앞에 나아가
눈물을 흘리며
“큰스님 어리석은 소녀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조주자사 한대감의 명이 스님을 파계시키고 오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사 저는 그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대감님과의 약속한 기일이 백일,
바로 오늘 저는 내려가면 큰 벌을 받아야 합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섧게 울기 시작했다.
흐느껴 우는 홍련을 자애로운 미소를 띄우며 지켜 보시더니
“너무 염려말고 이리 가까이 오너라. 조주자사 한대감에게 벌을 받지 않게 해줄 것이다.”
하고는 붓에 먹을 묻혀 치맛자락을 펴게 하여 단숨에 글을 써 내려가니
축령봉을 내려가지 않기를 10년 색(色)을 보고 부질없음을 알았기에 형체가 곧 거품이라. 어찌 법(法)의 한방울 물을 홍련(弘蓮)의 잎사귀 가운데 즐겁다 떨어뜨리겠는가 十年不下陀靈蜂 觀色觀空卽色空 如河一丸曺迷水 肯墮紅蓮一葉中
홍련의 치맛자락에 적힌 시를 본 한퇴지는
그후 태전선사를 참방하여 선사로 부터
“불교의 어느 경전을 보았습니까?” 하는 물음에
“별로 뚜렷하게 본 경전은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선사가 다그치기를 “그러면 그대가 이제까지 불법을 비방함은 무엇 때문인가?
누가 시켜서 하였는가 아니면 스스로 하였는가?
만약 시킴을 받아서 하였다면 주인이 시키는 대로 따라서 하는 개〔犬〕와 다름이 없고
자신이 스스로 하였다면 이렇다할 경전 읽음도 없이 어떻게 불법을 비방하는가?
알지 못하고 비방한 것이니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나 다름없다.” 하는
꾸짖음과 함께 심오한 가르침을 받아
그후 한퇴지는 지극한 불자가 되어 마음을 깨치고
불교를 비방하던 그 붓으로 불법을 드날리고 삼보를 찬탄하는 문장을 후세에 남겼다.
벽화 그린이 (김용대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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