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증류주 제조법이 전래된 것은 고려 말이었다.
알라·알카에다·알자지라처럼 알코올(alcohol)도 아랍어Arabic다.
일제 강점기(日帝强占期)까지는 민간에서는 소주(燒酒)를 흔히 아락기
또는 아락주라 하여 무의식중(無意識中)에 제법의 유래(由來) 를 표시했다.
증류주는 발효주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가고 들이는 재료에 비해 얻는 양도 적어
부잣집 잔칫날’에야 어쩌다가 한두 모금 얻어 마실 수 있는 아주 귀한 술이었지만,
그만큼 신 내리는 속도도 빨라서 적게 마신 사람도 금세 신선(神仙)으로 만들어주었다.
19세기 말(末) 부터 연속증류(連續蒸溜)로 주정(酒精)을 생산(生産)하게 됨으로써
희석식(稀釋式) 소주(燒酒)가 출현했지만 원료(原料)는 여전히 쌀(米)이었다.
고구마나 감자에 화학(化學) 처리를 하여 알코올을 추출(抽出)하는 기술은
1920년대 초반 화석 연료를 대체(代替)하기 위해 개발(開發)되었다.
일제(日帝)도 연료국책(燃料國策) 방침(方針)에 따라 1936년부터
조선(朝鮮)에 무수주정(無水酒精) 공장(工場)을 만들었다.
1937년 4월 7일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는
차후(此後) 무수주정(無水酒精) 제조(製造) 시설(施設)을
갖추지 않은 소주(燒酒) 공장(工場) 신설(新設)은 인가(認可)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소규모 소주 공장을 대공장에 통폐합(統廢合)하는 조치도 병행(竝行)했다.
이 뒤로 값싼 알코올이 대량 생산돼 연료와 음료에 공용되었다.
더불어 술(酒)의 신성성(神聖性)도 옅어졌다.
희석식 소주를 마시나 증류 소주를 마시나 취하면 범인에서 벗어나는 건 마찬가지다.
취한 사람을 신선(神仙)으로 묘사(描寫)하든 개(狗)로 표현하든 그것도 사람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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