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정치.사회/한국전쟁 史

사진으로 보는 한국전쟁 - 2

淸山에 2009. 9. 10. 14:57
 

 

 
 
 
美國 國立文書記錄 保管廳(NARA)

保管分 貴重한 資料입니다
.
 
사진으로 보는 한국전쟁 30편

여기 실린 사진은 미국 메릴랜드 주에 있는 NARA(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5층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KOREA WAR(한국전쟁)' 파일의 사진들입니다.
 
날짜와 장소는 사진 뒷면에 있는 영어원문을 따랐음. 이 사진이
기록물이 부족한 우리나라에 자료로 남기를 바랍니다. 생사가
교차되는 전선에서 귀한 사진을 남긴 카메라맨들에게 경의를 드립니다.
 
시리즈로 #1 에서 #30까지 연재로 작성한것을 한 화면에 올렸
습니다. 특히 6.25를 겪은 6학년세대들에게는 직접 피부에 와 닿는
생생함 그대로입니다.
 
이 자료는 "Oh My News" 에 박도 (Park Do)기자가 올린글
소개입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한나라당의 반대로 결국 좌절됐습니다. 수년째 이들은 특별법 제정을 통해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위령사업을 추진해 왔습니다. 그러나 결국 16대 국회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어떤 유족들은 가족들의 사망일자를 몰라 여태 호적정리는 물론 제사도 제대로 지내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동족상잔의 전쟁과 이데올로기 갈등으로 동족을 죽고 죽이는 뼈아픈 역사를 겪어 왔습니다. 그 모습을 이곳 미국에서 다시 접하고서 저는 통곡이라도 할 것 같았습니다.

이 사진들은 미국 워싱턴 근교 메릴랜드 NARA(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것 중에서 필자가 가려 뽑아 보냅니다. 구체적인 날짜와 장소는 사진 뒷면에 있는 영어 원문을 따랐고, 사진 설명은 원문을 참조하여 필자가 가다듬었습니다.

시대 순으로 일목요연하게 편집해서 보내지 못한 것은 상자에 담긴 사진이 뒤죽박죽돼 있고, 필자도 현재 가려 뽑는 가운데 그날그날 송고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 사진들은 모두 미군과 미 종군기자들이 남긴 사진으로, 그들의 시각으로 앵글을 잡아서 촬영하였다는 점을 군더더기 말로 보탭니다... 필자 주

 

 

 

 
 


▲ 1950. 9. 27. 전주. 학살된 시신의 사진만 남아 있고 가해자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 구천을 헤매는 그들의 원혼에 묵념을 드린다.
ⓒ NARA
▲ 1950. 9. 27. 전주. 우리 아버지는 어디에 계실까?
ⓒ NARA
▲ 1950. 9. 29. 충주. 마을 주민들이 학살의 현장을 파서 시신을 확인하고 있다
ⓒ NARA
▲ 1950. 9. 30. 진주. 한 소년이 씨레이션 상자를 조심스럽게 들여다 보고 있다
ⓒ NARA
▲ 1950. 10. 10. 함흥 부근의 한 동굴에서 300여 명의 시신을 꺼내고 있다
ⓒ NARA
▲ 1950. 10. 10. 함흥. 가족을 찾아 헤매면서 울부짖는 아낙네들
ⓒ NARA
▲ 1950. 10. 13. 함흥. 우물에서 학살된 시신을 건져 올리고 있다.
ⓒ NARA
▲ 1950. 10. 19. 함흥. 시신더미에서 가족을 찾고 있다.
ⓒ NARA
▲ 1950. 10. 19. 함흥. 지아비의 주검 앞에서 오열하는 지어미.
ⓒ NARA
▲ 1950. 10. 19. 함흥. 학살에는 남녀가 없었다
ⓒ NARA
 
 

 

 

 
 
이 사진들은 미국 워싱턴 근교 메릴랜드 NARA(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것 중에서 필자가 가려 뽑아 보냅니다. 날짜와 지역은 사진 뒷면에 있는 영어 원문을 따랐고, 사진 설명은 원문을 참조해 필자가 가다듬었습니다.

시대 순으로 일목요연하게 편집해서 보내지 못한 것은 상자에 담긴 사진이 뒤죽박죽 돼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 사진들은 모두 미군과 미 종군기자들이 남긴 사진으로 그들의 시각으로 앵글을 잡아서 촬영하였다는 것을 군더더기 말로 보탭니다. <필자 주>

▲ 1949. 3. 제5차 소련 최고회의에 참석한 김일성(오른쪽 끝)과 박헌영(김일성 바로옆 안경쓴 사람)
ⓒ NARA

▲ 1945. 8. 평양 붉은 광장에서 젊은이들이 스탈린과 김일성을 환호하고 있다.
ⓒ NARA

▲ 1949. 9. 6. 미군사고문단이 국방경비대에서 기관총 훈련을 지도하고 있다.
ⓒ NARA

▲ 1950. 7. 7.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유엔파병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 NARA

▲ 1950. 8. 미군 포로들이 서울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 NARA

▲ 1950. 8. 원산, 북한군 선전 벽보.
ⓒ NARA

▲ 1950. 9. 16. 인천상륙 적전 후 텅빈 시가지에서 한 소녀가 울고 있다.
ⓒ NARA

▲ 1950. 11. 21. 압록강변의 혜산진까지 올라간 국군과 유엔군.
ⓒ NARA

▲ 1950. 12. 3. 평양, 부서진 대동강 철교를 넘어 남하하는 피난민 행렬.
ⓒ NARA

▲ 1950. 12. 9. 중공군의 참전으로 혹한 속에 후퇴하는 유엔군.
ⓒ NARA
 
 

 

 

 
 
이 사진들은 미국 워싱턴 근교 메릴랜드 NARA(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것 중에서 필자가 가려 뽑아 보냅니다. 날짜와 지역은 사진 뒷면에 있는 영어 원문을 따랐고, 사진 설명은 원문을 참조하여 필자가 가다듬었습니다.

시대 순으로 일목요연하게 편집해서 보내지 못한 것은 상자에 담긴 사진이 뒤죽박죽돼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 사진들은 모두 미군과 미 종군기자들이 남긴 사진으로 그들의 시각으로 앵글을 잡아서 촬영하였다는 것을 군더더기 말로 보탭니다. <필자 주>

▲ 1950. 9. 30. 전화(戰禍)로 폐허 가 된 대전역
ⓒ NARA

▲ 1950. 11. 24. 불타버린 서울역 앞 세브란스 병원
ⓒ NARA

▲ 1950. 10. 7. 불타고 있는 김포 비행장
ⓒ NARA

▲ 1950. 10. 18. 전화에 그을린 중앙청
ⓒ NARA

▲ 1950. 10. 18.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멀리 북악산과 중앙청 돔이 보인다.
ⓒ NARA

▲ 1950. 9. 20. 왜관, 낙동강 철교 복구 공사
ⓒ NARA

▲ 1950. 10. 12. 미조리호 군함에서 청진항을 향해 함포사격을 가하고 있다
ⓒ NARA

▲ 1950. 10. 20. 400여 명의 낙하산부대가 평양부근에 투하되고 있다
ⓒ NARA

▲ 1950. 12. 18. 북한군에게 뿌린 귀순 권유 전단
ⓒ NARA

▲ 1950. 11. 2. 적십자사에서 피난민에게 구호물자를 나눠주고 있다
ⓒ NARA
 
 

  

네티즌의 성원으로, 필자는 2004년 1월 31일부터 2004년 3월 12일까지 미국 워싱턴 근교 메릴랜드에 있는 NARA(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을 방문했습니다. 방문 중 현지 동포들의 도움을 받아 5층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수십만 장의 'KOREA WAR(한국전쟁)' 사진 파일에서 500여 매를 가려 뽑았습니다.

이 사진의 날짜와 장소는 사진 뒷면에 있는 영어 원문을 따랐고, 사진 설명은 원문을 참조하여 필자가 가다듬었습니다.

이 사진이 50여 년 전의 한국전쟁을 모르는 이에게는 사실적인 자료로, 그 당시의 참상을 아는 이에게는 지난 세월을 되새김질하는 자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다시는 이 땅에 이와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적 전쟁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참고로 이 사진들은 모두 미군과 미 종군기자들이 남긴 사진으로, 그들의 시각으로 앵글을 잡아서 촬영하였다는 것을 군더더기 말로 보탭니다. 생사가 교차되는 전선에서 귀한 사진을 남긴 카메라맨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필자 주>


 

 
 
▲ 1950. 10. 13. 경기도 파주, 참혹하게 학살된 시신들
ⓒ NARA


▲ 1950. 11. 1. 서울 중앙청 앞 지금의 문화관광부 자리, 주민들이 폐허더미에서 땔감이나 돈이 될만한 물건을 찾고 있다.
ⓒ NARA


▲ 1950. 11. 2. 원산의 한 성당, 폐허가 된 성당 내부를 신도들이 청소하고 있다
ⓒ NARA


▲ 1950. 11. 6. 북한의 어느 농촌, 탈곡한 볏단을 달구지에 싣고 있다
ⓒ NARA


▲ 1950. 11. 6. 북한의 어느 농촌, 전란 중에도 추수를 하고 있다. 바람개비로 알곡을 가리는 농부들
ⓒ NARA


▲ 1950. 11. 19. 북한의 한 지하 무기 공장 내부
ⓒ NARA


▲ 1950. 11. 20. 국경지대, 미군들이 소달구지로 보급품을 운반하고 있다.
ⓒ NARA


▲ 1950. 11. 18. 미군 폭격으로 파괴된 흥남비료공장
ⓒ NARA


▲ 1950. 11. 18. 미군 폭격으로 파괴된 흥남송전소
ⓒ NARA


▲ 1950. 11. 23. 함경도 갑산, 미군 폭격으로 성한 집이 드물다
ⓒ NARA
 
 

 

 

 
 

네티즌의 성원으로, 필자는 2004년 1월 31일부터 2004년 3월 12일까지 미국 워싱턴 근교 메릴랜드에 있는 NARA(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을 방문했습니다. 방문 중, 현지 동포들의 도움을 받아 5층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수십만 장의 'KOREA WAR(한국전쟁)' 사진 파일에서 500여매를 가려 뽑았습니다.

이 사진의 날짜와 장소는 사진 뒷면에 있는 영어 원문을 따랐고, 사진 설명은 원문을 참조하여 필자가 가다듬었습니다.

이 사진이 50여년 전의 한국전쟁을 모르는 이에게는 사실적인 자료로, 그 당시의 참상을 아는 이에게는 지난 세월을 되새김질하는 자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다시는 이 땅에 이와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적 전쟁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참고로 이 사진들은 모두 미군과 미 종군기자들이 남긴 사진으로, 그들의 시각으로 앵글을 잡아서 촬영하였다는 것을 군더더기 말로 보탭니다. 생사가 교차되는 전선에서 귀한 사진을 남긴 카메라맨들에게 경의를 드립니다. <필자 주>



▲ 1950. 11. 1. 황해도 평산에 진격하는 유엔군을 두 여인이 전신주 뒤로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 NARA


▲ 1950. 12. 4. 평양을 떠나 대동강을 건너 후퇴하는 국군
ⓒ NARA


▲ 1950. 12. 6. 황해도 사리원, 남행하는 피난열차에 피난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 NARA


▲ 1950. 12. 8. 경기도 금촌, 38선을 넘어 후퇴하는 유엔군 차량들.
ⓒ NARA


▲ 1950. 12. 9. 끊어진 한강철교.
ⓒ NARA


▲ 1950. 12. 10. 포화에 불타는 마을.
ⓒ NARA


▲ 1950. 12. 12. 한강 부교를 통하여 후퇴하는 차량들.
ⓒ NARA


▲ 1950. 12. 12. 피난민들이 한강을 나룻배로 건너고 있다 .
ⓒ NARA


▲ 1950. 12. 12. 유엔군들이 인천항을 통해 장비들을 후송시키고 있다.
ⓒ NARA


▲ 1950. 12. 12. 유엔군들이 후퇴하면서 다리를 폭파시키고자 폭약을 장치하고 있다.
ⓒ NARA
 
 

   

여기 올린 사진은 미국 워싱턴 근교 메릴랜드에 있는 NARA(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에 보관된 'KOREA WAR(한국전쟁)' 파일에서 가려 뽑았습니다.

이 사진의 날짜와 장소는 사진 뒷면에 있는 영어 원문을 따랐고, 사진 설명은 원문을 참조하여 필자가 가다듬었습니다.

이 화보가 50여년 전의 한국전쟁을 모르는 이에게는 실증의 자료로, 그 당시의 참상을 아는 이에게는 지난 세월을 되새김질하는 자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다시는 이 땅에 이와 같은 동족상잔의 전쟁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참고로 이 사진들은 모두 미군과 미 종군기자들이 남긴 사진으로, 그들의 시각으로 앵글을 잡아서 촬영하였다는 것을 군더더기 말로 보탭니다.

생사가 교차되는 전선에서 귀한 사진을 남긴 카메라맨들에게 경의를 드립니다. <필자 주>



 

 
 

▲ 1950. 12. 3. 평양, 남행 피난민 행렬 속의 한 소녀.
ⓒ NARA

▲ 1950. 12. 10. 중공군의 참전으로 강추위 속에 후퇴 행렬. 한 병사가 너무 추운 날씨로 모포를 뒤집어쓰고 있다.
ⓒ NARA

▲ 1950. 12. 12. 흥남부두, LST 함정에 가득 탄 군인과 피난민들. 미처 함정에 오르지 못한 피난민들이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 대부분의 피난민들은 원자탄이 투하된다는 말에 피난 행렬에 나섰다고 한다. 몇 날의 피난 길이 50년이 더 지났다.
ⓒ NARA

▲ 1950. 12. 14. 서울역, 남행 피난민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 NARA

▲ 1950. 12. 16. 흥남, 국군과 유엔군들이 후퇴하고자 부두에서 수송선을 기다리고 있다.
ⓒ NARA

▲ 1950. 12. 27. 흥남, 얕은 수심으로 수송선이 해안에 닿을 수 없자 유엔군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LST로 가고 있다.
ⓒ NARA

▲ 1950. 12. 24. 흥남, 유엔군들이 철수 후 부두를 폭파시키고 있다.
ⓒ NARA

▲ 1950. 12. 19. 묵호, 흥남에서 철수한 장비를 묵호(동해)항에 내리고 있다.
ⓒ NARA

▲ 1950. 12. 28. 서울, 피난민들이 강추위 속에 한강 얼음을 깨트리며 나룻배로 남하하고 있다.
ⓒ NARA

▲ 1951. 1. 5. 피난 행렬 속의 소년과 소녀. 소달구지가 힘겨워하자 힘을 보태고 있다.
ⓒ NARA
 
 

 

여기 올린 사진은 미국 워싱턴 근교 메릴랜드에 있는 NARA(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에 보관된 'KOREA WAR(한국전쟁)' 파일에서 가려 뽑았습니다.

이 사진의 날짜와 장소는 사진 뒷면에 있는 영어 원문을 따랐고, 사진 설명은 원문을 참조하여 필자가 가다듬었습니다.

이 화보가 50여 년 전의 한국전쟁을 모르는 이에게는 실증의 자료로, 그 당시의 참상을 아는 이에게는 지난 세월을 곱씹을 수 있는 자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다시는 이 땅에 이와 같은 동족상잔의 전쟁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참고로 이 사진들은 모두 미군과 미 종군기자가 남긴 사진으로, 그들의 시각으로 앵글을 잡아서 촬영하였다는 것을 군더더기 말로 보탭니다.

생사가 교차되는 전선에서 귀한 사진을 기록으로 남긴 카메라맨들에게 경의를 드립니다. <필자 주>



 

 
 
▲ 1950. 8. 20. 경북 어느 지역, 아이를 업고 머리에는 가재도구를 이고 있는 여인은 내 고모 아니면 이모일지도. "같이 갑세" "퍼뜩 안 오고 머하노. 쌕쌕이가 벼락친데이. 싸게싸게 따라 오이라."
ⓒ NARA

▲ 1950. 8. 23. 경남 함안, 기차를 타기 위해 늘어선 피난민들. 할아버지 등에는 온갖 가재도구가 짊어져 있고, 오른 손아귀에는 손자가 잡혀 있다.
ⓒ NARA

▲ 1950. 8. 23. 경남 함안, 기차표를 사고자 늘어선 피난민들로 남녀노소없이 피난 봇짐을 이고 지고 있다.
ⓒ NARA

▲ 1950. 8. 23. 경남 함안, 언제 올지 모르는 기차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 NARA

▲ 1950. 8. 24. 경북 낙동강 유역, 꼭 필자의 고향(구미) 마을 같다. 온갖 가재도구를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진 피난민 행렬.
ⓒ NARA

▲ 1950. 8. 24. 경북 낙동강 유역, 뙤약볕 속의 피난 길. 어데로 가야 목숨을 부지할지.
ⓒ NARA

▲ 1950. 8. 24. 경북 왜관 부근. "피난 간 새 지발 집이나 무사해야 할 건데..." 뒤돌아 보고 또 돌아보고...
ⓒ NARA

▲ 1950. 8. 24. 경북 낙동강 유역, "할배, 어데 갑니까?" "나 집에 간다." "못 갑니다." "와! 나 죽어도 내 집에서 죽을란다. 어이 비켜라."
ⓒ NARA

▲ 1950. 8. 25. 장소 미상, 기총소사에 쓰러진 피난민들. "이렇게 객사할 바에야 차라리 집에서 죽을 걸."
ⓒ NARA

▲ 1950. 9. 6. 경북 칠곡 다부동, 가도 가도 끝없는 피난 행렬. 위정자를 잘못 만난 불쌍한 무지렁이 핫바지 백성들이여!
ⓒ NARA
 
 

 

 

 
 
여기 실린 사진은 미국 워싱턴 근교 메릴랜드에 있는 NARA(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수십만 장의 'KOREA WAR(한국전쟁)' 사진 파일에서 가려 뽑았습니다.

이 사진의 날짜와 장소는 사진 뒷면에 있는 영어 원문을 따랐고, 사진 설명은 원문을 참조하여 필자가 가다듬었습니다.

이 사진이 50여 년 전의 한국전쟁을 모르는 이에게는 사실적인 자료로, 그 당시의 참상을 아는 이에게는 지난 세월을 되새김질하는 자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다시는 이 땅에 이와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적 전쟁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참고로 이 사진들은 모두 미군과 미 종군기자들이 남긴 사진으로, 그들의 시각으로 앵글을 잡아서 촬영하였다는 것을 군더더기 말로 보탭니다.

생사가 교차되는 전선에서 귀한 사진을 남긴 카메라맨들에게 경의를 드립니다. <필자 주>




▲ 1950. 10. 11. 서울 교외, 부서진 북한군 전차 위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 NARA




▲ 1950. 11. 1. 전란으로 폐허가 된 서울
ⓒ NARA




▲ 1950. 12. 28. 끊어진 한강 철교, 오른쪽은 임시로 만든 부교.
ⓒ NARA




▲ 1951. 1. 3. 한강 철교 부근의 언 강을 피난민들이 걸어서 건너고 있다.
ⓒ NARA




▲ 1951. 3. 16. 서울 중구의 수도극장(현 스카라 극장) 일대
ⓒ NARA



▲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중앙청 광화문 세종로 일대.
ⓒ NARA




▲ 1951. 3. 16.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왕십리 일대, 멀리 고려대학교 건물이 보인다.
ⓒ NARA




▲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서울역 일대
ⓒ NARA




▲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중앙청, 경복궁, 수송동, 팔판동 일대.
ⓒ NARA



▲ 1951. 3. 19. 구호 양곡을 먼저 탄 소년과 양곡을 타기 위해 줄을 선 주민들.
ⓒ NARA
 
 

  

 

 
 

여기 실린 사진은 미국 워싱턴 근교 메릴랜드에 있는 NARA(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수십만장의 'KOREA WAR(한국전쟁)' 사진 파일에서 가려 뽑은 것입니다.

이 사진의 날짜와 장소는 사진 뒷면에 있는 영어 원문을 따랐고, 사진 설명은 원문을 참조하여 필자가 가다듬었습니다.

이 사진이 50여년 전의 한국전쟁을 모르는 이에게는 사실적인 자료로, 그 당시의 참상을 아는 이에게는 지난 세월을 되새김질하는 자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다시는 이 땅에 이와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적 전쟁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참고로 이 사진들은 모두 미군과 미 종군기자들이 남긴 사진으로, 그들의 시각으로 앵글을 잡아서 촬영하였다는 것을 군더더기 말로 보탭니다.

생사가 교차되는 전선에서 귀한 사진을 남긴 카메라맨들에게 경의를 드립니다. <필자 주>


▲ 1950. 10. 12. 원산. 학살된 시신들.
ⓒ NARA

▲ 1950. 12. 11. 고단한 피난길.
ⓒ NARA

▲ 1950. 12. 16. 폭격에 엿가락처럼 휘어진 철교.
ⓒ NARA

▲ 1950. 12. 17. 보급품을 실은 화물 열차가 폭격에 불타고 있다.
ⓒ NARA

▲ 1950. 12. 18. 대구. 훈련소에서 교육을 마친 신병들이 전선으로 가고자 대구역전 광장에 집결해 있다.
ⓒ NARA

▲ 1950. 12. 18. 전방으로 떠나는 신병들.
ⓒ NARA

▲ 1950. 12. 18. 대구역. "총알을 요리조리 잘 피해서 어예든동 살아오이라." '어무이 걱정 꽉 붙들어 매이소. 어무이 아들 아잉기요. 내는 꼭 살아돌아올 깁니다."
ⓒ NARA

▲ 1950. 12. 21. 경북 왜관. 낙동강 철교 어귀에 부서진 북한군 소련제 탱크.
ⓒ NARA

▲ 1951. 1. 20. 아버지와 아들의 피난길, 다른 가족은 전란에 모두 죽었다.
ⓒ NARA
 
*
 

     

 

 
 
여기 실린 사진은 미국 워싱턴 근교 메릴랜드에 있는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NARA)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KOREA WAR(한국전쟁)' 사진 파일에서 가려 뽑은 것입니다.

이 사진의 날짜와 장소는 사진 뒷면에 있는 영어 원문을 따랐고, 사진 설명은 원문을 참조하여 필자가 가다듬었습니다.

이 사진이 50여년 전의 한국전쟁을 모르는 이에게는 실증적인 자료로, 그 당시의 참상을 아는 이에게는 지난 세월을 되새김질하는 자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다시는 이 땅에 이와 같은 동족상잔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참고로 이 사진들은 모두 미군과 미 종군기자들이 남긴 사진으로, 그들의 시각으로 앵글을 잡아서 촬영하였다는 것을 군더더기 말로 보탭니다.

생사가 교차되는 전선에서 귀한 사진을 남긴 카메라맨들에게 경의를 드립니다. <필자 주>



▲ 1950. 6. 18. 6.25 한국전쟁 발발 일주일 전 의정부 북방 38 접경에서 미 국무장관 덜레스(가운데) 일행이 38선 너머 북쪽을 살피고 있다(덜레스 오른쪽 신성모 국방장관).
ⓒ NARA
▲ 1950. 6. 18. 미 국무장관 덜레스 일행이 38 접경 지대를 살피고 있다.
ⓒ NARA
▲ 1950. 7. 한미 수뇌부들이 환담하고 있다(왼쪽부터 조병옥 내무장관, 신성모 국방장관, 무초 주한 미대사, 임병직 외무장관, 워커 주한 미군 사령관).
ⓒ NARA
▲ 1950. 7. 26. 맥아더 장군이 전선을 시찰하는 중, 종군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 워커 장군.
ⓒ NARA
▲ 1950. 8. 15. 이승만 대통령과 신성모 국방장관이 8.15 경축식을 끝낸 후 임시 국회의사당인 문화극장을 떠나고 있다. 신 국방장관은 “아침은 서울에서 먹고, 점심은 평양에서…” 라고 상대의 전력도 모른 채 큰 소리쳤으나 6.25 발발 후 서울시민은 팽개치고 몰래 서울을 빠져나갔다.
ⓒ NARA
▲ 1950. 8. 18. 백선엽 장군(가운데)이 미군과 함께 작전을 세우고 있다.
ⓒ NARA
▲ 1950. 9. 16. 구포 신병 훈련소에서 훈시하는 이승만 대통령.
ⓒ NARA
▲ 1951. 2. 7. 전선을 시찰하는 맥아더 장군.
ⓒ NARA
▲ 1951. 2. 15. 대한민국 해상 이동방송선(HLKT)을 방문한 장면 총리 일행.
ⓒ NARA
▲ 1951. 9. 콜트 미 8군 부사령관의 이임식장(왼쪽부터 허정, 콜트. 무초 주한 미대사).
ⓒ NARA
 
 

  

'역사.정치.사회 > 한국전쟁 史' 카테고리의 다른 글

6.25전쟁 정전협정문  (0) 2009.09.10
사진으로 보는 한국전쟁 - 3  (0) 2009.09.10
사진으로 보는 한국전쟁 - 1  (0) 2009.09.10
1.4후퇴 사진(1951년)  (0) 2009.09.08
전쟁 직후 - 부산   (0) 2009.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