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정치.사회/한국전쟁 史

사진으로 본 6.25 …역사 잊으면 미래 없다

淸山에 2009. 9. 6. 15:25
 

 

 
 

 

 

사진으로 본 6.25 …역사 잊으면 미래 없다


전쟁…그『지울 수 없는 이미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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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부전선에서 체포된 중공들이 자신들을 사살할 것으로 오인해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사진=지울수없는이미지2>
1950년 6월 25일 새벽, 구소련 스탈린의 지원을 받은 김일성은 남침전쟁을 감행했다.

전세계가 동서로 양분되어 한반도는 자유민주 진영의 최전선인 남한과 공산 체제의 최전선인 북한으로 나뉜 상태였다. 김일성은 전 한반도에 공산주의 정권을 세우기 위해 탱크로 남침의 길을 열었다.

3년간 한반도는 유사 이래 최초로 전세계인의 관심의 표적이 되면서, 대한민국 국군-유엔군을 비롯한 자유민주 진영과 소련-중국-북한의 공산독재 진영은 이념대결의 결전을 벌였다. 그것은 자유민주냐, 계급독재냐의 혈전이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전세계의 젊은이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희생됐다. 이후 50년, 남한은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이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룩했고, 이를 바탕으로 민주화까지 달성했다.

반면 북한은 계급독재-수령독재-봉건군사독재를 거치며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지옥의 땅이 되었다. 사람들은 굶어죽고 맞아죽고 총맞아 죽었다.

무엇이 이렇게 극명한 대조를 불러왔나? 그것은 이념과 체제였다. 자유민주는 승리했고, 계급독재-수령독재는 철저히 패배했다.

6.25 전쟁 56주년이다.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역사를 잊어버리는 국가는 미래가 없다. 지금 한반도는 '교전이 일시 정지된' 상태일 뿐이다. 정전(停戰)상황일 뿐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는 아직 '전쟁중'이다. 6.25 전쟁을 일으킨 정권이 북에 그대로 존속하는 한 정전상태에서 평화상태로 이행하기란 어렵다.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는 김일성, 김정일 봉건군사독재체제가 민주주의 개혁개방 정부로 전환될 때 비로소 가능해질 뿐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지울 수 없는 이미지2』(눈빛)는 6.25전쟁 발발 56주년을 맞아 출간됐다.

이 사진집은 소설가 박도씨가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국(NARA)의 사진자료실에서 230여점을 추려내 공개한 자료들로 대부분 국내에서 최초로 공개된 것들이다. 1950년대에는 보기 드문 컬러사진도 40여점 실려있다.

박 씨는 지난 2004년에도 NARA의 사진자료실을 모아 『지울 수 없는 이미지1』을 펴냈었다.

월드컵의 열기로 온 나라가 물들어 있는 지금, 다시 한번 6.25전쟁을 떠올려 본다.


이현주 기자 lhj@dailynk.com

▲ 1953년 7월 1일 미 해병 기갑병이 탱크를 정비하고 있다. <사진=지울수없는이미지2>
▲ 1952년 10월 8일 철원. 백마고지 전투에서 부상당한 한국 군인들. <사진=지울수없는이미지2>
▲ 북한군에게 억류된 미군 포로들이 마지못해 정치 강연을 듣고 있다. <사진=지울수없는이미지2>
▲ 여동생을 업고 있는 소년(왼쪽), 북한군 포로와 부역 혐의로 체포된 아이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지울수없는이미지2>
▲ 투항하는 중공군들 <사진=지울수없는이미지2>
▲ 서울 신당동에서 붙잡힌 북한군 두 소년병을 미군 병사가 심문하고 있다. <사진=지울수없는이미지2>
▲ 북한 의용군 포로(왼쪽), 북한측 정전회담 대표 남일(오른쪽) <사진=지울수없는이미지2>
▲ 유엔군이 중공군 포로를 심문하고 있다. <사진=지울수없는이미지2>
▲ 거제 포로 수용소에서 석방된 북한 여군 포로들이 북한으로 돌아가며 열차 밖으로 인공기와 혈서로 쓴 플래카드를 내걸고 구호를 부르짖고 있다. <사진=지울수없는이미지2>
▲ 1천 4백만명의 피란민을 남한으로 수송한 흥남철수작전. 모든 선박이 다 동원되어 군수물자와 피란민을 수송했다. <사진=지울수없는이미지2>
▲ 미군 병사가 폭격으로 눈 먼 소녀에게 음식을 먹이고 있다. <사진=지울수없는이미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