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정치.사회/파헤친 歷史

문무왕릉비 사라진 조각 200년 만에 찾았다

淸山에 2009. 9. 4. 15:34
  

 

 
 

 

문무왕릉비 사라진 조각 200년 만에 찾았다

 

 

 

                                       

 

 

 


 

 

경주시 가정서 빨랫돌 사용 수도검침원이 일하다 발견

 

 

1일 오전 경북 경주시 동부동의 한 주택. 수도검침원이 마당 수돗가에서 검침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수돗가 바닥에 시멘트로 박혀 빨랫돌 등으로 사용되던 큼지막한 돌덩이

하나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 검침원은 평소 알고 지내던 김윤근 신라문화동인회 부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들은 다음 날 오전 이 주택을 찾았다.

 

사진을 찍은 이들은 점심시간에 국립경주박물관을 찾아 “중요한 비인 것 같다”고 전했다.

오영찬 학예연구관 등 박물관 연구원 3명은 서둘러 현장으로 달려갔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이영훈 관장과 김승희 학예실장이 사진 속 비문을 살펴보았다.

한쪽 면에서 200여 자의 한자를 확인했다.

 

한자의 서체, 음각한 형식이 경주박물관에 있는 문무왕릉비의 아랫부분과 동일했다.

현장으로 달려간 오 연구관 일행의 판단도 마찬가지였다.

 

문무왕릉비의 사라졌던 조각이 200여 년 만에 다시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경주의 한 주택에서 신라 문무왕릉비의 부서진 윗부분을 발견했다”고 3일 밝혔다.

표면이 훼손되고 가장자리 등 일부는 마모가 심했지만 비문은 확인이 가능한 상태였다.

 

문무왕릉비는 682년 경주 사천왕사에 세워졌으나 언제부턴가 비가 부서졌으며

1796년 부서진 조각을 확인했다는 내용이 경주부윤을 지낸 홍양호(1724∼1802)의

 ‘이계집(耳溪集)’에 기록돼 있다.

 

이 조각들의 탁본은 청나라 금석학자 유희해(劉喜海·1793∼1853)에게 전해져

그의 저서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에 내용이 실리기도 했다.

 

그러나 19세기 들어 비의 부서진 조각들은 다시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다 1961년 비석의 아랫부분이 경주 동부동에서 발견돼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경주박물관은 이번에 발견한 비의 윗부분을 박물관으로 옮겨

보존처리할 계획이다.



 

비석 조각이 조선시대 나왔다가 다시 사라졌던 신라 문무왕릉비의 상단 부분이 다시 발견됐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지난 2일 경주시 동부동의 한 주택에서 신라 제30대 문무왕릉비 조각을 확인했다고 3일 밝혔다. 비석의 내용을 기록한 청나라 금석학자 유희해의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

 

 

경북 경주시 동부동의 한 주택에서 발견된 신라 문무왕릉비의 상단부분. 비의 조각은 장독대와 수돗가 옆에서 발견됐다. 경주시 문화재 관련 직원이 비의 조각을 살펴보고 있다.

 

 

비석 조각이 조선시대 나왔다가 다시 사라졌던 신라 문무왕릉비의 상단 부분이 다시 발견됐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지난 2일 경주시 동부동의 한 주택에서 신라 제30대 문무왕릉비 조각을 확인했다고 3일 밝혔다. 사진은1961년 발견돼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비석 하단부. 연합

 

 

비석 조각이 조선시대 나왔다가 다시 사라졌던 신라 문무왕릉비의 상단 부분이 다시 발견됐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지난 2일 경주시 동부동의 한 주택 수돗가에서 신라 제30대 문무왕릉비 조각을 확인했다고 3일 밝혔다. 연합

 

 

경주=연합 ☞ 사진 더 보기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