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조폭이 있었다
흔히 '조폭'이라 하면 검은 복장과 함께 획일화된 머리 스타일과 역시 획일화된 덩치, 군사조직에 가까운 조직과 규율, 충성 등이 생각나는데요. 그렇다면 수백 년 전 조선시대에도 '조폭'이 있었을까요? 조폭 잡는 강력계 형사들은요?
기록을 보면, 이 말을 들은 숙종이 즉시 신하들에게 일러 각별히 살피게 했다고 합니다. 이후 일주일 후에 대대적인 '검거 작전'이 펼쳐져 10여 명의 검계원들이 체포됐습니다. 체포된 검계원들에 대해 민정중은 이렇게 보고하죠. "포청(捕廳)에 갇힌 검계(劍契) 10여 인 가운데에서 가장 패악(悖惡)한 자는 칼로 살을 깎고 가슴을 베기까지 하여 흉악한 짓을 하는 것이 그지없다 합니다." 그렇습니다. "검거된 조폭 일원 몇 명이 칼로 자해를 시도하기까지 했다"는 내용입니다. 충성과 과시의 표시로 자해를 시도하는 조폭대원들이 그때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들 검계에 대한 내용은 <연려실기술> 숙종조 기사에 좀 더 세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들은 당시 군영에서나 사용했던, 양쪽에 날이 있고 가운데에 '혈조(血漕)'가 나 있어 마치 창포잎 같은 모양의 '창포검(菖蒲劒)'을 휴대하고 한밤 중에 태평소를 불어 신호를 하는 등 수시로 모여 싸움연습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 민간인들도 갑옷 방패 화포 기치 등 군사관련 특수 물품을 제외하고 활과 화살, 창, 검, 도, 쇠뇌 등은 자유롭게 소지할 수 있었던 점도 검계의 폭력성에 일조한 것이죠. 조폭 잡는 강력계 형사 장붕익 검계에 대한 기록은 영조를 거쳐 순조 때까지 이어지는데요. 영조 때 들어서 이들은 제대로 된 임자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포도대장 장붕익입니다. 검계는 장붕익이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검거령을 내리자 급격히 위축됩니다. 조선시대 당쟁에 대해 언급한 이원순의 <화해휘편(華海彙編)>에도 포도대장 장붕익의 강력한 검계퇴치 전략이 나옵니다. 끔찍하게도 당시 검계들은 스스로 제 몸에 칼자국을 만들어 남들과 구별했는데 장붕익은 신체에 칼자국이 있는 사람은 모두 잡아 죽이는 철저한 처벌을 가했다고 합니다. '조폭척결'에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이죠. 그러나 조직와해의 위협을 느낀 검계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장붕익에게 자객을 보내 그를 없애려는 시도까지 하게 되죠. 영조 9년 5월 12일 실록기사를 보면 장붕익이 영조에게 이렇게 보고한 내용이 나옵니다. "잠결에 창 밖의 사람 그림자를 보고서 칼을 들고 나가니, 사람이 칼을 가지고 대청마루 위에 섰다가 이내 뛰어서 뜰 아래로 내려가므로 함께 칼날을 맞대고 교전(交戰)하여 외문(外門)까지 옮겨갔었는데 그 자가 몸을 솟구쳐 담에 뛰어 올라 달아났습니다." 조폭 소탕의 의지를 갖고 있는 요즘 시대의 강력계 형사나 검사들의 결의를 훨씬 뛰어넘는, 그야말로 목숨을 담보로 검계와의 대결을 펼친 것이죠. 몸에 칼자국 남겨 '나는 검계 조직원' 표시 실록에 따르면 영조 때 장붕익의 활약으로 소탕된 듯한 검계는 순조 무렵에 다시 출몰했습니다. 순조실록에 따르면 "…검계의 이름이 나오기에 이르러… 일종의 무뢰한 무리가 사람들을 불러 모아 당(黨)을 이루고…"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검계는 적어도 100년의 시간동안이나 역사 속에 자리한 셈입니다. 이들 검계는 다분히 공격적이어서 실제로 사람들을 공격하고 재물과 인신을 약탈하는 범죄행위를 했습니다. 체포된 조직원들의 소지품 중에는 '양반을 살육할 것, 부녀자를 겁탈할 것, 재물을 약탈할 것' 등의 내용이 적혀 있어 세상을 놀라게 했죠.
그리고 일단 경찰에 검거되면 영화 <투캅스>에서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자해소동을 펼쳤다고 하니 너무나 닮은꼴 아닌가요. 조선시대 주먹쟁이 '왈짜' 검계 이외에도 '왈짜'라고 불리는 싸움꾼들이 있었습니다. 왈짜는 검계처럼 무리지어 이동하거나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주로 기방을 들락거리며 싸움질을 하고 다녔습니다. 역사라는 것이 주로 승자의 기록이고 가진 자들을 위한 기록이었기에 역사 사료를 통해 주먹을 썼던 이들 싸움꾼들의 기록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다행히 풍속화를 비롯한 몇 가지 자료에서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 <기방난투>라는 그림을 보면 그 때의 상황이 쉽게 이해됩니다. 술과 여자가 연관된 기방을 보니 대형 클럽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영화 속 장면이 쉽게 떠오르는군요. 요즘과 흡사하게 자잘한 주먹다짐이 종종 일어나곤 했나 봅니다.
붉은 옷을 입은 별감은 조선시대 때 주로 기방을 운영하는 소위 '기둥서방'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별감은 왕명을 전달하거나 왕비전이나 동궁전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포도청이나 다른 관부에서 쉽게 이들을 제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선시대 때 기방은 주로 이들이 장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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