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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선승(禪僧)

淸山에 2009. 9. 3. 17:31

 

 

권력과 선승(禪僧)

선불교(禪佛敎)의 기본 정신은 반형이상학(反形而上學)이다. 어떠한 형이상학에도 반대
한다는 것이다. 어떤 우상이나 도그마에 붙잡히면 안 된다는 의미이다. 부처가 하나의
우상이 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의 가르침이 족쇄가 되면 조사를 죽인다.

이를 '살불살조(殺佛殺祖)'라고 한다. 무시무시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선종 사찰
내에는 심검당(尋劍堂)이라는 건물이 있다. 칼을 찾는 집이다. 선(禪)은 칼을 가지고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일본 사무라이들의 취향에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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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방님 블로그에서... 석굴암>

1970년대 해인사 선방에서 있었던 일화이다. 당대의 선승인 성철 스님을 향해 제자인 젊은
선승이 시퍼런 칼을 날렸다. "스님 목을 잘라서 저 법당에 던져 버리면 제 죄가 몇 근이나
되겠습니까?" 여러 사람들이 보고 있는 대중처소에서 이 과격한(?) 선문답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성철의 대답은 "네 죄가 백골연산(白骨連山)이다!"였다. 네가 죽어서 그 백골이 산을 이룰
만큼 세세생생 죄가 된다는 답변이었다. 성철 스님에게 칼을 날렸던 이 선승은 지금 조계종의
중진 스님이 되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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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를 졸업하고 화계사까지 온 현각(45) 스님이 이번에 '부처를 쏴라'라는 책을 냈다.
현각은 독특한 존재이다. 눈동자가 새파란 벽안(碧眼)의 선승인 것이다.

비디오 아트라는 장르를 통해서 미국의 주류사회에 유일하게 진입했던 한국 사람이 백남준이라
고 한다면 현각은 세계에서 선불교의 전통이 가장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한국 불교계의 중심
에 들어온 최초의 미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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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번에 낸 책 내용 가운데는 스승인 숭산 선사가 1982년
미국에 머물면서 당시 전두환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 있다. 그 편지 내용은 '자기 자신도 모르면서 어떻게 국민을
다스린다는 말인가!'하는 것이었다. 살벌한 권력을 쥐고 있던 독재자에게 이런 편지를 쓴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였다.

선승들이 지닌 검객 기질의 발로였다고 보인다. 그 편지 대가는 혹독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귀국길에 숭산 선사는 남산 지하실에 끌려가 심한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권력은 우상화되고
도그마가 낀다. 선의 본질은 반권력(反權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