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 칼스버그 양조장 정원에서 만난 인어공주 자매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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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읽은 미담을 양조장에서 직접 들으니 생생하게 다가왔다. 더 놀라운 건 양조장 정원에 있는 인어공주 동상이었다. 가이드의 ‘인어공주 자매 동상’이란 설명에 ‘그래, 인어공주에겐 언니 다섯이 있었지. 그중 한 명인가?’ 하고 짐작해봤다.
그런데 웬걸. 코펜하겐의 명물, 인어공주 동상을 만든 이가 칼스버그 창립자의 아들 카를 야콥센(Carl Jacobsen)이란다. 어릴 때부터 안데르센의 동화와 조각품을 사랑한 그는 1909년 조각가 에드바르드 에릭센(Edvard Eriksen)에게 의뢰해 인어공주 동상을 항구에 세웠다. 그러니까 양조장에 있는 인어공주 자매 동상은 인어공주 동상의 원형이었다. 카를 야콥센은 예술에 조예가 깊어 모네, 로댕, 밀레 등 쟁쟁한 작가의 미술품을 수집해 별채에 보관했는데, 그 별채가 지금의 코펜하겐 중앙역 근처의 칼스버그 박물관이 됐단다. 카를 야콥센은 당시 보기 드물게 맥주 조기유학 코스를 밟은 맥주 영재이기도 했다. 체코, 영국, 스코틀랜드 등에서 맥주 공부를 하고 돌아와 체코 필스너 스타일의 맥주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그렇게 과학을 사랑한 아버지와 예술을 사랑한 아들이 키운 브랜드가 칼스버그다. 술과 예술을 두루 사랑한 집에서 만든 맥주라니 더욱 호감이 갔다.
코펜하겐 칼스버그 양조장에서만 생맥주로 맛볼 수 있는 칼스 스페셜.
가이드 투어 후 2층 바에서 이 양조장에서만 만드는 ‘칼스 스페셜(Carls Special)’을 맛봤다. 1854년 J.C 야콥센이 만든 다크 라거의 맛을 그대로 재현한 맥주로 2005년부터 소량 생산하고 있다. 몰트의 고소하고 달콤한 풍미가 가득하면서도 목 넘김이 편했다. 약 170년 전 기필코 덴마크산 라거를 만들겠다는 창업자의 굳은 신념처럼 진한 색도 매력적이었다.
어쩌면 술을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여서 더 맛있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먼 길 마다치 않고 양조장까지 와준 친구와 잔을 부딪치며 덴마크어 건배 ‘스콜(skål)’을 외쳤다. 무척이나 청량한 여름날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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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 [우지경의 Shall We drink] <25>과학으로 빚은 맥주, 코펜하겐 칼스버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