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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 /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WoO 23 - (vn & cond) 토마스 체헤트마이어 & 피니쉬 라디오 심포니

淸山에 2015. 7. 1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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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 /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WoO 23 -

(vn & cond) 토마스 체헤트마이어 & 피니쉬 라디오 심포니



 

 

 

 

Robert Schumann (1810 - 1856)

Violin Concerto in D minor, WoO 23

 

슈만 -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Finnish Radio Symphony
Thomas Zehetmair, conductor and soloist

 


1. In kräftigem, nicht zu schnellem Tempo (00:39)
2. Langsam (17:29)
3. Lebhaft, doch nicht schnell (24:10)

 

 

 

뒤셀도르프에서 지낸 1853년은 슈만에게 있어서 최후의 창작기라고 말할 수 있다.

그 해 10월 15일부터 18일 사이에 작곡한 [아침의 노래 Op.133]는 그의 생전에 출판된 마지막 작품이다.

오랜만에 피아노를 위한 음악으로 돌아온 슈만은 이내 불멸의 세계를 향한 현실 도피로 치닫게 된다.

그해 5월 슈만은 젊고 영감에 넘치는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하임을 만나 깊은 감동을 받았다.


요하임이 연주한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찬탄을 아끼지 않은 슈만은 일기장에

그 감격을 적어놓기도 했다. “요하임은 너무 마력적이고 너무 놀라울 따름이다.

아침부터 밤 늦도록 그와 연주했다.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다.”

 

 

요하임을 위한, 요하임에 의한 숨겨진 보석

 

한편 요하임의 소개로 브람스를 만난 슈만은 다시금 창조적 열기에 휩싸인 채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곧바로 그는 요하임을 위해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환상곡 Op.131]을 작곡했고, 뒤이어 1853년 9월에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했다. 한편 10월에는 새로 알게 된 젊은 브람스와 자신의 제자였던 알베르트 디트리히

(Albert Dietrich)와 함께 요하임을 위해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F-A-E 소나타]를 작곡하여 헌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요하임은 환상곡, 소나타는 기꺼이 헌정받아 자주 연주했지만 협주곡은 그렇지 않았다.

 

1853년 10월 요하임은 자신이 콘서트마스터로 재직하던 하노버 궁정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이후 평생동안 이

작품을 연주하지 않았다. 1854년 2월, 슈만은 자살을 시도한 뒤 엔데니히의 요양원으로 실려갔고, 그때 슈만의

모습을 지켜본 요하임은 슈만이 미쳐있는 상태에서 이 곡을 작곡했음을 확신했다. 그리고 더욱 이 곡을 기피했다고

한다. 요하임의 전기작가인 안드레아스 모저(Andreas Moser)는 요하임이 보낸 편지에서 “정신적 에너지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서 작곡한 듯한 일종의 극심한 피로감이 느껴진다”라고 쓴 내용을 밝히며 “몇몇 개성적인 패시지

에서는 창조적 예술가의 심오한 감수성을 목격할 수 있다”라고 언급했다.

 

 

 

 


 

정신적 문제를 극복하려 했던 자아도취적 작품

 

이 바이올린 협주곡은 슈만이 자신의 정신적 문제를 음악적 창작열로 극복하고자 했던 시기의 작품인 만큼 실제

완성도는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시기에 작곡된 다른 작품들 또한 사이사이 내비치는 천재성, 독창적인

음악어법 외에는 젊은 시절의 곡만큼 눈여겨 볼 만한 특징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다시 말하자면, 슈만은 자신이

평생토록 열망했던 문학적 상상력, 자아도취적 경향을 이 음악을 통해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요하임의 부정적 평가는 슈만의 미망인 클라라 슈만과 브람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특히 클라라 슈만은 이 협주곡의 연약한 성질에 많이 놀랐다.

이 작품이 남편의 명성에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이올린 협주곡은

슈만의 작품 전집에서 포함되지 않은 채 19세기 내내 비밀의 작품으로 잊혀져 갔다.

그러나 브람스는 ‘슈만의 마지막 음악적 생각’이라는 표현을 달아 슈만이 이 협주곡에서

사용한 주제로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23](1854)을 작곡하기도 했다.

 

 

사후 80여년 만에 세상의 빛을본 협주곡

 

별 다른 이야기가 들리지 않다가 4년 뒤인 1937년, 마인츠에 있는 쇼트 출판사는 이 작품의 카피를 당시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각광받던 젊은 예후디 메뉴힌(Yehudi Menuhin)에게 보여주었다. 메뉴힌은 지휘자 블라디미르

골쉬만(Vladimir Golschmann)과 함께 그해 10월 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이 작품을 초연하고자 계획했다.

그러나 갑자기 옐리 다라니가 등장하여 초연에 대한 권리는 영적 계시를 받은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며

메뉴힌의 연주회에 제동을 걸었다.

 

한편 미국 초연은 1937년 12월 뉴욕의 카네기 홀에서 메뉴힌의 연주로 이루어졌다. 1938년에는 존 바비롤리

뉴욕 필하모닉의 협연으로 녹음되었고, 영국 초연은 당연히 다라니가 맡았다. 이후 1988년 독일의 바이올리니스트

토마스 체헤트마이어(Thomas Zehetmair)는 이 작품의 1937년 출판본에 가미된 편곡과 수정을 말끔히 걷어내고

오리지널 스코어를 토대로 녹음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악장 ‘강건하면서도 너무 빠르지 않게(In kräftigen, nicht zu schnellem Tempo)’는 아름다운 주제 선율들이

극적인 대조를 이루며 이전보다 한층 강화된 소나타 형식을 이루고 있다.


정신적 혼란을 겪던 슈만에게 소나타 형식은 현실적 삶을 지탱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아니었을까 싶다.

어두운 D단조 도입부를 거치며 저주받은 듯한 분위기가 지속되고, 슬픔에 잠긴 2주제가 제시되면서

슈만의 남다른 감수성이 극대화된다. 이후 오케스트라의 강박증적인 도발과 솔로 바이올린의 회한어린

체념이 서로 충돌을 일으키며 비관적인 분위기로 코다를 맺는다.


2악장 ‘느리게(Langsam)’는 천사가 불러주었다는 주제가 사용된 악장이다.

 따사로운 분위기 속에서 사색에 잠긴 영혼이 확신에 찬 어조로 노래를 부른다. 마지막 3악장 ‘활기있게,

그러나 빠르지 않게(Lebhaft, doch nicht schnell)’는 폴로네이즈 형식의 품위있는 악장이다.


바이올린의 랩소디풍 에피소드들이 오케스트라와 정교하게 조화를 이루며 비상하는

듯한 화려한 결말로 끝을 맺는다.

 

 토마스 체헤트마이어의 연주(AVIE)는 오리지널 스코어를 복원해

원작 역시 훌륭한 작품임을 역설한 연주로 손꼽힌다.

 

 

 

 

 
Schumann, Violin Concerto in D minor, WoO 23
 
WDR Sinfonieorchester - Kölner Philharmonie
Frank Peter Zimmermann, violin
conducted by: Jukka Pekka Saraste (Chefdirigent)










혼령이 되살린 狂人의 음악
[중앙선데이] 입력 2015.07.19 03:00 / 수정 2015.07.19 04:41
[an die Musik] 슈만 바이올린 협주곡
    


 

헝가리 출신의 요제프 요아힘 은 19세기 후반 독일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다.  


  


 
무심코 문을 열었는데 시야 가득 급류가 흐른다. 거센 물살은 수평선까지 펼쳐져 바라만 봐도 정신이 아득하다. 느닷없이 빠르게 흐르는 풍경을 마주한 느낌. 슈만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그렇게 시작된다. 베토벤은 둥둥둥 팀파니 연타로 바이올린 협주곡을 시작하고, 멘델스존도 아주 잠깐이나마 현악 합주로 시작을 알린다. 그러나 슈만은 아무런 예고 없이 굵은 다발의 관현악 합주로 바이올린 협주곡을 출발시킨다. 총주로 일관하는 그의 교향곡 4번의 LP 레코드 중간쯤에 바늘을 내려놓은 느낌이라고 할까.


오래도록 클래식 음악을 들어왔지만 이 곡은 최근에야 알게 됐다. 나를 ‘싸부’로 부르는 음악 친구가 어느 날 물었다. “슈만의 바이올린 협주곡 들어 봤어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슈만과 바이올린 협주곡이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라고요? 슈만의 바이올린 협주곡? 첼로, 피아노 협주곡이 아니고?” 나한테 클래식의 ABC를 배우던 그는 아름다우니 들어보라는 말과 함께 LP를 한 장 건넸다. 제자가 선생을 능가하는 것은 기쁜 일이니 이런 때는 당황하지 않고 음악사전을 펼쳐놓고 공부하면 된다.


슈만은 나에게는 오랫동안 거리가 먼 작곡가였다. 음악을 듣기 시작한 초기에 읽은 정관호 선생의 칼럼 때문이었다. 선생은 슈만을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고 규정했다. 들을 만한 것이 별로 없는데 아예 무시하기는 또 그렇다는 말이다. 고수의 교시가 그랬으니 신참도 슈만에게 무심할 수밖에. 그런데 스비아토슬라브 리흐테르가 연주하는 피아노 독주곡 ‘나비(Papillons, Op.2)’를 듣고 참 묘한 곡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뒤로 슈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바이올린 협주곡 이야기를 들은 것은 그 즈음이었다.


급류와도 같은 관현악 도입부가 잦아들자 독주 바이올린이 등장한다. 첫 소리는 날카로운 외침이다. 이어지는 선율은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는 사내의 뒷모습이다. 따안~ 따따 반복되는 하강음이 불안을 가중시킨다. 비틀거리지만 걸음은 집요하게 이어진다. 이따금씩 마음 한 귀퉁이가 허물어져 내리는 듯 숨죽인 흐느낌이 터져 나온다. 격렬한 감정의 파동이 덮쳐 와 편안히 듣기는 힘든 음악이다.


쿨렌캄프의 1937년 녹음이 수록된 음반.   


 
슈만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이른바 4대 천왕이 아니다. 냉면집에 4대 천왕이 있듯이 바이올린 협주곡에도 명예의 전당에 오른 작품들이 있다. 베토벤·브람스·멘델스존·차이콥스키가 그들이다. 이 외에도 멋진 곡들이 많다. 브루흐·생상·버르토크…. 그러니 슈만을 모른다고 이상할 것도 없다. 30년간 7000장의 LP를 모으며 음악을 들어온 친구도 슈만은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역사를 살펴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처음부터 평가가 별로 좋지 않았고, 1930년대에 와서야 초연이 이루어졌으며, 들을만한 음반도 별로 없다. 그런데 곡의 역사가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가득 품고 있다.


슈만은 1853년에 곡을 완성했다. 정신착란으로 라인강에 투신하기 몇 개월 전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의 부탁을 받고 곡을 썼다. 그러나 요아힘은 슈만 면전에서는 말을 아꼈으나 그의 아내 클라라에게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고 한다. 바이올린 연주자로서는 끔직한 악절이 많다고 했는데, 자기 기술로는 연주하기 힘들다는 뜻이었다. 결국 곡은 작곡가 생전에 빛을 보지 못했고 클라라와 제자 브람스의 합의하에 슈만의 악보집 편집에서도 빠지게 되었다. 악보는 요아힘이 베를린의 프로이센 국립도서관에 넘겼는데 슈만 사후 100년, 즉 1956년 이전에는 연주도 출판도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붙였다고 한다. 슈만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그렇게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는 듯 했다.


피는 속이지 못하는지 요아힘의 두 조카손녀 아딜라와 옐리는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로 성장했다. 1933년, 이들에게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큰할아버지 요아힘의 혼령이 나타나 슈만의 바이올린 협주곡 악보를 찾아서 연주해 달라고 했다는 것. 이런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어쨌든 도서관 서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슈만의 악보는 80여년 만에 다시 햇빛을 보게 되었다. 초연은 자매의 ‘의도’와는 달리 나치독일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게오르크 쿨렌캄프의 몫이 되었다. 1937년 11월 쿨렌캄프는 한스 슈미트 이세르슈테트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과 이 곡을 초연하고 한 달 뒤에는 텔덱 레이블의 전신인 텔레풍켄에서 녹음도 했다. 나치는 유대인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 금지시키고 ‘게르만 혈통의 적자’ 슈만의 곡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생전에 절친했던 두 사람은 백년 뒤 나치 정권에 의해 적이 되었다.


현악합주로 시작하는 2악장은 꿈결처럼 아름답다. 슬며시 올라타는 바이올린 독주는 자장가다. 불면에 시달린 작곡가가 스스로를 잠재우는 듯하다. 천사가 들려주는 멜로디를 받아 쓴 음악이라고 슈만이 이야기한 선율이다. 2악장에서 쉬지 않고 이어지는 3악장은 희망을 노래한다. 활은 현을 바삐 미끌어지며 약동하는 선율을 빚어낸다. 작곡 전 해인 1852년의 일기에는 ‘나의 힘의 슬픈 고갈’ ‘단념’같은 체념의 어휘가 등장한다. 자아분열에 시달리던 천재가 잠시 자신감을 회복하고 작곡에 몰두한 결과가 이 협주곡인 셈이다.


오디오 고수의 일갈 탓에 무관심의 장막 뒤편에 있던 슈만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바이올린 협주곡은 들을수록 좋고 ‘나비’에서 시작한 피아노곡 탐사는 ‘판타지 Op. 17’, ‘카니발 Op. 9’로 이어졌다. 슈만은 ‘불가원’이 되었다.




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