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마음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을 맞춘 날의 떨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 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개업 날의 첫 마음으로 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손님을 언제나 기쁨으로 맞는다면.
세례 성사를 받던 날의 빈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여행을 떠나는 날, 차표를 끊던 가슴 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 <나, 내가 잊고 있던 단 한 사람> 중에서 -
만남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과 같은 만남입니다.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 오니까요.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 같은 만남입니다.
피어있을 때는 환호하다가
시들면 버리니까요.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 같은 만남입니다.
금방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니까요.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 같은 만남입니다.
힘이 들때는 땀을 닦아주고
슬플때는 눈물을 닦아주니까요.
나는 비린내 나는 생선처럼
나의 욕심을 채워 달라고
조르지 않겠습니다.
나는 꽃송이처럼 내 기분에 따라
호들갑 떨지도 않겠습니다.
나는 지우개처럼 당신과의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리지 않겠습니다.
나는 손수건처럼 당신이 힘이 들 때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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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위하여
사랑에도
암균이 있다
그것은
의심이다
사랑에도
항암제가 있다
그것은 오직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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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습니다
우선 특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산을 산이라 하고 물을 물이라 합니다.
몸을 옷으로 감추지도 드러내 보이려 하지도 않습니다.
물음표도 많고 느낌표도 많습니다.
곧잘 시선이 머뭅니다.
마른 풀잎 하나가 기우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옹달샘에 번지는 메아리결 한 금도 헛보지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오늘은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그 기대로 가슴이 늘 두근거립니다.
이것을 지나온 세월 속에서 잃었습니다.
찾아주시는 분은 제 행복의 은인으로 모시겠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고요? 흔히 이렇게들 부릅니다.
'동심'
- 정채봉의 시《찾습니다》중에서 -
옷걸이의 교만
세탁소에 갓 들어온 새 옷걸이한테
헌 옷걸이가 한마디하였다.
“너는 옷걸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길 바란다.”
“왜 옷걸이라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시는지요?”
“잠깐씩 입혀지는 옷이 자기의 신분인 양 교만해지는
옷걸이들을 그동안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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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샘물
나는 문득 우리들
가슴속의 사랑샘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마다
제각각 사랑의 샘이 있다고 믿는다.
어떤 사람은
특별하여 사랑의 샘이 특별히 크고,
어떤 사람은
특별하지 못하여 사람의 샘이
유별나게 작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처음 내려
보낼 적에 신이 주신 사랑샘은
같은 크기의 같은 원천이었을 것이다.
다만 쓰고 안 쓰고에 따라
사랑의 샘이 말라 버린 사람도 있고,
사랑의 샘물이
철철 넘쳐흐르는 사람도 있다.
나는 믿는다.
이는 우리가 어린 날에 보았던 고향의 샘을
돌이켜 보면 된다.
샘이 크다고 해서
샘물이 많이 나오는 것도
샘이 작다고 해서
샘물이 적게 나오는 것도
아니지 않았던가...
- 정채봉 '눈을 감고 보는 길' 중에서 -